[생명운동연구모임] 3차 모임이 있었습니다.

• 일시: 2010년 5월 19일(수) 오전 11시 - 2시
• 장소: 장충동 한살림 4층 중회의실
• 참석: 김용우, 유정길, 주요섭, 정규호, 이근행, 임수진

* 아래는 맛보기입니다.^^ PDF 파일로 첨부합니다!




* 토론 내용 맛보기!


‘생명평화’라는 말의 기원에 대해

<김용우>
새만금 생명평화선언은 2003년부터 시작되어 2006년 마무리 할 때 나왔음. 그때부터 ‘생명평화’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
2000년 초반에 ‘생명평화’라는 말을 처음 쓸 당시 ‘생명 and 평화’냐 ‘생명의 평화’냐, ‘생명평화’냐는 논쟁거리 였음. 당시 생명세상은 꼭 평화롭진 않다는 의견도 있었음. ‘생명의 평화’인지 ‘생명과 평화’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음.
생명의 평화라면, 그것은 생명운동 내에서 해석해 내야 함.

<주요섭>
생명평화는 지리산 생명평화기원제를 통해서 퍼진 것으로 알고 있음. 생명과평화의길에서도 2004년에 생명평화선언을 냈지만, 그 전 해인 기원제 논의에 참여한 적 있음.

공식적으로 생명평화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2001년 지리산 위령제를 통해서 였음. 이것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3년도에 지리산 평화결사 추진위가 만들어지고, 이후에 창립을 하면서 퍼지기 시작했음.

<김용우>
2000년 전에는 평화라는 말을 쓰지 않았음. 우리 사회에 평화라는 문제가 크게 대두된 것은 9.11이후임. 9.11이후에 요한 갈퉁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강좌가 생겼음. 평화학도 소개되고. 박성준 선생이 만나서 평화운동 이야기도 나옴.

박성준 선생을 2000년에 성공회대에서 만났을 때 ‘평화운동’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음. 박경서, 박성준 등이 ‘평화학’이라는 강좌도 개설했었음.
그 즈음만 해도 생명과 평화는 붙어있지 않았는데,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난 다음에 생명평화라는 말이 나왔음.

당시 한국사회에서는 전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10만 양병설, 이라크전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새롭게 운동을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옴.
2000년 10월 즈음 지리산에서 비공식적인 모임이 있었으며, 2001년 1월부터 생명평화라는 말이 나왔음. 2000년 모임에서는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학살당한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었음. 4.3사건, 노근리 사건 등이 화제가 되면서 위령제 등의 이야기가 퍼지던 시기였음.


2010/05/22 16:26 2010/05/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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