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론

케이지 닭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원료를 넣어주면 제품이 되어 나오는 공장처럼 오늘날의 세계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기계로 취급합니다. 닭은 자신 앞에 놓인 먹이통의 사료와 물을 쪼아 먹고 뒤로는 알을 낳는 기계일 뿐입니다. 어떻게든 계란만 낳으면 되지, 굳이 움직일 필요도 알을 낳기 위해 사랑을 나눌 필요도 없습니다. 이 세계에서는 닭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 땅과 모든 동식물은 그저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산해 주는 기계요, 도구일 뿐입니다. 심지어 인간조차도 상품화되어 이윤 창출의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땅이란 공장에서는 질소, 인산, 칼륨 등 3대 영양소만 원료로 공급하면 인간이 먹을 곡식과 채소는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땅 속 미생물의 상호작용은 별 의미도 없으며, 인간이 필요로 하지 않는 들풀 따위는 제초제로 씨조차 말려버리려 합니다. 

오늘의 세계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탐욕을 위한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것들에 고유한 삶이나 고유의 목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새만금의 백합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들은 그저 인간의 먹을 것일 뿐이지, 고유한 가치나 목적이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새만금 갯벌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매립하거나 개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인간이 세계를 보는 시각을 여실하게 드러내줍니다. 모든 것을 기계로 보는 것이지요. 이런 세계를 보는 눈을 기계론적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요소론적 세계관과 함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자를 포괄하는 산업문명이라는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탐욕을 위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을)를 기계로 보고 기계화하려 합니다. 생명을 생명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지요. 다소 이분법적인 구분이기는 하지만, <한살림선언>에서는 생명과 기계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습니다. 

1. 생명은 자라는 것이고 기계는 만들어지는 것이며, 2. 생명은 부분의 유기적 ‘전체’이고, 기계는 부품의 획일적 ‘집합’이다. 3. 생명은 유연한 질서이고 기계는 경직된 통제이며, 4. 생명은 ‘자율적’으로 진화하고 기계는 ‘타율적’으로 운동한다. 5. 생명은 ‘개방’된 체계이고 기계는 ‘폐쇄’된 체계이며, 6. 생명은 순환적인 ‘되먹임고리(feedback)’에 따라 활동하고 기계는 직선적인 ‘인과연쇄’에 따라 작동한다. 7. 마지막으로 생명은 정신이라고 선언하면서, 정신이 생명을 기계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고 말합니다. 정신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 창조성이기 때문에, 이 정신이 우주의 모든 실재에 내재하는 생명의 근원적 활동이라고 중장합니다. 

세계의 만물들이 기계로 취급받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생명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 바로 생명운동입니다. 

– 한살림모임 편, <한살림선언>, 1989 

– 윤노빈, <신생철학>, 학민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