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뚱한 균형

중용(中庸)의 정신은 동양사상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중용의 중(中)을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가운데(middle)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중용의 의미는 균형(equilibrium)을 가리킵니다. 즉, 중용은 기하학적 중심이 아니라 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을 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양쪽의 무게가 같은 균형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항상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요동하며 균형을 잡아갑니다. 결국 문제는 변화하는 세계에서 기하학적 중심이 아닌, 동적 평형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라는 문제일 것입니다. 이것이 중용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신을 좀더 적확하게 표현한 것이, 사서(四書) 중 하나로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가 지었다는 <중용> 2장에 나오는 시중(時中)이라는 말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뜻이지요. 이 시중의 인간이 군자라고 합니다.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때와 상황에 맞게 판단하고 자기 행위를 조절해 나갈 줄 아는 사람을 말합니다. (仲尼曰 君子中庸 小人反中庸.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小人之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중용을 하고 소인은 중용을 거스른다. 군자가 중용을 함은 군자로서 때로 맞게 하는 것이요. 소인의 중용이란 소인으로서 거리낌이 없는 것일 뿐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 속의 동적 균형, 바로 기우뚱한 균형을 잡아가는 사례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내는 사람의 중심 이동을 들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물에 빠진 사람을 잡은 앞쪽 손에 힘을 주다가 점차 중심축이 되는 뒤쪽 발로 힘을 이동하게 됩니다. 힘을 이동하면서도 굳건히 무게중심, 균형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우뚱한 균형은 우리에게 이상(理想)과 현실, 원칙과 상황 사이의 균형에 대한 철학을 제시해 줍니다. 이상과 원칙은 지켜야 하되, 그것이 현실과 상황에 맞게 조절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킨다는 원칙을 가진 사람이 다리 위에서 애인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폭우가 쏟아져 다리가 떠내려가게 생겼는데, 원칙을 지킨다고 다리 위에 버티고 있다가 목숨을 잃는다면, 과연 그것이 바른 길일까요. 

 

김지하 시인은 이 기우뚱한 균형을 생명운동이 가야할 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현실적 균형은 기우뚱합니다. 건강 정도에 따라 사람마다 들숨과 날숨은 차이가 있습니다. 거의 죽어가는 사람은 날숨이 더 길어요. 아주 건강하거나 단전호흡을 해서 치료 과정에 들어가는 사람의 숨은 나가는 숨보다 들어가는 숨이 더 깁니다. 왜 그럴까요. 또 먹는 것과 싸는 것 사이의 균형관계도 항상 어느 쪽이 강하게 마련입니다. 생명은 항상 기우뚱한 균형관계입니다. 환경운동도 생태학에 중심이 있는가, 환경개량주의에 중심이 있는가에 따라 언제나 기우뚱하며 그 성격과 방향에는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요즘의 환경단체에 요구하는 것은 생태학적 근본주의에 중심을 두되 환경개량주의를 언제나 새로운 창조적 자세로 배합하는 태도입니다. 개발과 환경도 그렇습니다.”

새로운 사회시스템을 창조하려는 생명운동과 기존의 시스템 안에서 비판, 견제, 압박을 중심으로 공정한 규칙(rule)을 정착시켜 가려는 시민운동의 관계도 기우뚱한 균형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아니, 그 균형의 관계 자체가 생명운동의 지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민운동은 생명운동의 터전을 만들고 생명운동은 시민운동의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생명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위해서라도 시민운동의 공정한 규칙이 발휘되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또한 생명운동의 대안적 사회시스템의 창조가 궁극적으로 시민운동이 가야 할 길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사회시스템을 창조하려는 생명운동에 중심을 두면서도 현실의 개량적 시민운동을 창조적으로 배합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생명을 이해하는 데 역설·모순과 더불어 ‘기우뚱한 균형’의 철학은 더없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기우뚱한 균형’이란 말도 생명세계를 적확하게 표현해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즉, 상태를 표시하는 ‘기우뚱한’이란 형용사와 ‘균형’이라는 명사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세계의 역동성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세계는 안정된 균형보다는 끊임없이 출렁대며 기우뚱거립니다.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요동치는 생명의 세계를 표현하는 더 좋은 말이 없을지…… 

 

– 이 글의 앞부분 중용에 대해서는 <도올선생 중용강의>(통나무, 1995)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김지하, 기우뚱한 균형에 관하여, <김지하 전집 2권>, 실천문학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