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지역이 살고, 그래야 또 우리가 살고 나라가 살고

내가 살고 지역이 살고, 그래야 또 우리가 살고 나라가 살고

글 하승우 (모심과살림연구소 초빙연구원)

 

한살림이 세상에 공표한 주요한 실천과제는 밥상살림, 농업살림, 생명살림, 지역살림이다. 이 과제들이 제각각인 것은 아니고 서로 연관된 것이지만, 넷 중에 가장 낯선 과제는 지역살림이다. 조합이 있는 지역의 살림살이를 관리하고 지역을 살리자는 뜻은 대충 이해되더라도 그래서 뭘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라고 자꾸 묻게 된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기 위해 많은 것이 필요하다지만 협동조합이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협동조합 7원칙의 마지막 원칙도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concern for community)’인데, 이 역시 좀 추상적이다. 그 뜻을 보면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동의하는 정책으로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라는 말도 좀 애매하고, 정책을 통해 노력해야 한다는 부분도 분명하지 않다. 차라리 협동조합이 거둔 수익의 일정 부분을 지역사회로 환원하자고 명확하게 정할 수도 있으나, 그럴 경우 요즘 유행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싶다. 협동조합은 일반 영리기업과는 다른 형태로 지역사회에 관심을 두고 관계를 맺어야 할 텐데, 어떤 관계가 가능할까?

 

모심과살림연구소가 2012년에 발간한 『지역살림운동 길잡이』를 보면, “지역살림운동은 한살림이 그동안 역점을 두고 노력해 온 먹거리에 기반한 직거래 사업과 생활실천 활동의 경험들을 살려서 다양한 생활 속 과제들(교육, 환경, 복지, 일자리 등)을 협동의 힘으로 해결해 나감으로써 ‘조합원의 참여로, 이웃과 함께, 지역사회와 더불어’ 지속가능한 생활양식과 삶의 터전을 만들어가려는 한살림의 뜻과 실천 의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한살림고양파주는 “조직이 주도하는 지역살림 혹은 시혜적 복지의 지역살림에서 나아가, 스스로 생활의 필요를 조직하여 시스템과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 정의를 받아들이면, 지역살림은 교육이나 환경 등 다양한 생활영역으로 한살림의 활동을 확장시키되 조합이 아니라 조합원 스스로 그런 필요를 조직하는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지역살림을 통해 사업영역이 넓어져야 하지만, 그 활동을 담당하는 것은 조합이 아니라 조합원이다. 그리고 때로는 사업이 아니라 조합원과 조합의 체계로 지역사회의 필요를 해결해야 한다.

이런 어려운 과제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왜 지역살림을 고민해야 할까? 가장 간단한 답은 홀로 사는 게 불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기득권층을 제외하면 홀로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고, 기득권층이라 하더라도 기후변화나 핵사고를 홀로 감당하긴 어렵다. 그리고 국가는 삶의 디딤돌은커녕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 결국 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먹을 것인가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을 살린다는 건 내가 지역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만 한다는 당위가 아니다. 지역을 살린다는 건 그곳에 사는 나를 살린다는 것이고 지역이 속한 나라를 살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관점을 넓히고 바꿔야 지역살림을 해야 할 이유도 생긴다. 그리고 지역살림은 조합원들끼리만 하는 게 아니라 지역주민과 함께 움직이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다른 활동과 다르다.

그럼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부분은 바로 지역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해이다. 눈에 보이고 머릿 속에 그려져야 감을 잡을 수 있을 텐데, 지역이란 말은 참 감을 잡기 어려운 단어이다. 그런 점에서 지역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은 내가 누구를 어디서 만나는지, 어디로 무엇을 하러 돌아다니는지를 지도에 표시하는 것이다. 여러 명이 그렇게 움직이는 선을 그리다보면 공간과 관계망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이것을 가지고 지역살림의 기본계획을 짤 수 있다.

그리고 도움을 받을 자료도 있다. 앞서 언급했던 『지역살림운동 길잡이』를 보면, 지역살림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계속 확인해야 한다고 한다.

첫째, 왜 하려고 하는가(목적) : 조합원과 지역사회의 필요, 조직 목표에 대한 확인

둘째, 누구와 함께 하려고 하는가(주체) : 함께 할 주체와 제안자, 파트너 찾기와 연결

셋째 , 언제 시작하려고 하는가, 목표시점을 어디까지로 잡을 것인가(시간계획)

넷째,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실천기반, 자원 확보 등)

다섯째, 예상되는 장애물은 무엇인가(이해관계 등)

여섯째, 어떤 단계와 과정을 밟아갈 것인가(전략과 비전)

일곱째,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가(비용 및 효과 등)

 

가지 않은 길이기에 가야할 가치가 있다. 지역살림은 함께 살기 위한 방법이다.

 

* 한살림고양파주 소식지 <햇살 한줌 바람 한줌> 9월호에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