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어린배움터의 밥모심 영성
김상숙 (사랑어린배움터 학부모, 사랑어린배움터 ‘밥살림모임’ 꼭두쇠)
삶의 뿌리, 영성
사랑어린 배움터는 ‘영성’을 모든 존재의 바탕이자 뿌리로 바라봅니다. ‘나는 어쩌다가 영을 경험하게 된 사람이 아니라, 어쩌다가 사람을 경험하게 된 영임을 깨우칩니다.’라는 사랑어린배움터의 100대 기도문 중 한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의 깊고 깊은 중심은 눈으로 보이는 물질, 형태를 초월하여 세상만물의 한 뿌리인 영이라는 거지요.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 ‘영성’이라는 말조차 낯설어하고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치부하는 것이 대세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존재의 진실이 없어질 수는 없습니다.
‘영성’을 무시하고 잊어버린 결과는 참혹합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과 돈에 눈이 어두워 어머니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고 밀어붙이기만 한 인류에 의해, 어머니 자연은 당연히 고통 받고 있습니다. 사람 또한 자연이기에 스스로 초래한 자연과의 소외, 같은 인간끼리의 소외와 분리의식으로 가장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줄 모르고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랑어린배움터는 그렇게 배제하고 망각하고 결국 잃어버린 우리의 본질, 뿌리, 영성을 삶과 배움의 곳곳에서 되찾아가며 진실로 기쁘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밥모심’과 영성
우리는 걷고, 기도하고, 사랑합니다. / 우리는 하루 세 번 마음을 모읍니다.
우리는 밥을 모십니다. 사랑어린배움터의 구체적 일상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입니다. 모두 ‘영성’에 바탕에 둔 몸짓들입니다. ‘영성’은 깨어있을 때에만 드러나 보이는 것이기에, ‘깨어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몸짓이기도 합니다. 그중 ‘밥모심’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묻는다.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깨달음을 행동으로 나타내시는지요?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깨달음을 실천하십니까?”
스승이 제자에게 대답한다.
“밥 먹고 잠자는 것으로 그렇게 한다.”
“하지만 스승님, 밥은 누구나 먹고 잠도 누구나 자지 않습니까?”
“그러나 잠잘 때 잠자고 밥 먹을 때 밥 먹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이 아니지.”
여기서 “먹을 때 먹고, 잘 때 잔다”는 유명한 말이 있게 된 것이다.
먹을 때 먹고 잘 때 잔다는 말은, 지금 여기서 자기가 하고 있는 행위에, 그것을 훼방하는 에고의 장난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깨어 있음을 뜻한다. 이것이 깨달음의 완성integration이다.
(소걀 린포체 <매일 묵상> 중에서)
에고의 장난- 나에 대한 애착 -에 지배되어 이루어지는 것은 깨어있는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일상을 보면, 대부분 나에 대한 애착이나 욕구에 의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밥을 먹는 행위’가 특히 그렇지요. 먹지 않고서야 살 수 없으니 본능과 관계된 부분이기는 하나, 똑같이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행위이지만 어떻게 먹는냐에 따라 그 순간이 깨달음의 시간이 될지, 본능에 지배되어버리는 허망한 시간이 될지가 결정됩니다.
‘먹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요. 생존에 관계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평생 죽을 때까지 하는 행위이니까요. 그렇게 중요한 ‘먹는 행위’를 하는 시공간이 깨달음의 장이 된다면, 영적인 삶의 바탕의 하나가 이루어지는 것이겠지요. 그러한 중요성을 인식한 한원식 선생님은 ‘밥모심’이라고 표현하셨고, 우리 사랑어린배움터도 그 영향을 받아 ‘밥모심’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밥모심’은 어떻게?
① 농사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먹는 모든 것에 우주의 원리가 담겨있습니다. 오로지 수익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먹거리는 그 정신이 그 속에 배어있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의 삶에서 준비하고 먹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패스트푸드에는 오로지 빠른 게 좋다는 의식이 들어있습니다. 반대로 수익창출이 아닌 자연에 순응한 먹거리는 자연의 생명력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머위나물, 달래나물, 냉이, 쑥 같은 야생 봄나물을 먹으면 기운이 나고 춘곤증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자연의 생명력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 정신을 받아,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자연친화적인 농사를 지어 그 수확물로 밥상을 이루려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다할 수 없는 것은 되도록 생태농사를 하려는 주변 지역의 소농들과 관계를 맺으며 먹거리를 받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으로 다 이루어지지는 못해서 불가피하게 다른 먹거리도 이용합니다만 될 수 있는 한 자제합니다.
② 밥모심 준비
학교가 2003년에 개교하고 2010년 1학기까지 7년 반 동안 학교 내 식당을 이용했습니다. 식당에는 주방을 맡은 직원분들이 계셔서 점심을 준비했었구요. 먹거리의 재료는 아이쿱생협을 이용했습니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믿음으로 부모들은 별 걱정도 생각도 없이 지냈었구요.
그러다가 2010년 2학기부터 식당 독립을 선언하고, 어머니들이 반찬을 준비하였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집에서 함께 먹을 반찬을 가지고 오고 밥은 교실에서 지어 먹었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은 대규모의 공장식 조리 시스템 속에서 영성과 정성이 사라진 밥을 아이들에게 계속 먹여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있어서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반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정성어린, 사랑어린 준비과정이 배어있는 밥을 먹이는 것이 어떤 교육, 수업보다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지금까지 이 흐름으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2012년 순천 상사에서 해룡으로 이사 오면서, 급식시설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름을 공양간이라 부르고 살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는 ‘말씀과 밥의 집’이라는 새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7학년부터 기숙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하루 세 끼를 학교에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2013년부터 한 사람이 하든 여러 사람이 하든 공양주가 중심을 갖고 밥모심 준비를 합니다. 보통 점심 한 끼를 공양주가 직접 준비하고, 아침과 저녁은 준비된 재료로 학생들이 준비를 합니다. 되도록 제철에 나오는 먹거리와 1식 3찬, 현미잡곡밥의 소박하고도 온전한 밥상을 차립니다. 온전함의 의미는 먹을 수 있는 것은 버리지 않고 우리 몸에 모시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현미밥과 과일이나 야채를 껍질째로 먹어보는 것입니다.
사랑어린배움터에서는 공양주가 사랑어린배움터의 교육철학에 공감하고 끊임없이 배움을 가져나가야 합니다. ‘감사하는 삶’, ‘단순 소박한 삶(가난한 삶)’, ‘할 수 있는 만큼 자립하는 삶’, ‘누구나 함께 어울리는 삶’이 배어있는 밥상을 준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매일 공부하고 수련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사랑어린배움터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배움의 장에 주인된 자세로 참여합니다.
③ ‘밥모심’
– 밥은 자기 그릇에 먹을 만큼 담습니다. 반찬을 앞에 사람이 너무 많이 담아서 뒷사람이 담을 게 부족하다면 십시일반을 합니다.
– 모두 자리에 정좌하면 밥모심 자리를 주재하는 사람이 밥모심 이야기를 합니다. 그날 밥상 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아직은 누가 어떤 것을 준비했다 정도의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의 내용을 더 풍성하게 하여 그 자리를 감사와 기쁨의 자리가 되도록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 습니다. 그리고 밥모심 기도를 합니다. 요즘은 관옥 이현주 선생님이 선물로 주신 밥모심 기도를 합니다.
오늘도 / 하늘과 땅과 / 착한 사람들을 시켜서 / 우리를 먹여주시니 고맙습니다.
우리도 이 밥 먹고 / 하늘처럼 / 땅처럼 / 착한 사람들처럼
심부름 잘하며 살게 해 주십시오.
넘치지도 않게 / 모자라지도 않게 … / 고맙습니다 / 잘 먹겠습니다.
한 술에 백 번 씹기가 기본입니다. 현미잡곡밥을 먹으므로 꼭꼭 음미해가며 씹어먹습니다. 꼭꼭 씹어먹으면 밥 자체의 단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백 번 씹는 것을 아직 많이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첫 세 술은 백 번씩 씹는 의식을 하고, 그 뒤에는 자율로 조용히 먹습니다. 음식 찌꺼기가 없도록 깨끗이 남기지 않고 먹습니다.
밥모심 후에는 미리 준비된 더운 물로 자신이 먹은 그릇에 담아 헹궈서 직접 먹는 발우공양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안 해본 학생들은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리 받아놓은 설거지 물에 그릇을 씻습니다. 이때에도 최대한 조용히, 얌전히 씻어봅니다.
ⓒ 사랑어린 학교 막내이모
‘말씀과 밥의 집’
2015년부터 사랑어린배움터의 밥모심 공간을 ‘말씀과 밥의 집’이라 이름 지어 부르고 있습니다. 그전에 불렀던 ‘공양간’의 의미를 넘어 ‘말씀과 밥의 집’이라 부르는 이유는 진리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 살아가며 정신을 성숙시켜나가고 밥모심을 잘하여 몸을 성장시켜나가는 균형 잡힌 건강한 삶을 지향한다는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진리가 네 안에 거하면, 너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복음 8장31,32절)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며, 진리의 다른 모습인 밥을 몸에 잘 모시는 연습을 통해서 온전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고자 하는 공간이 ‘말씀과 밥의 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