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운동’이란 단적으로 말해서, 새로운 선택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 행위를 말합니다. 즉, 지금까지 인간이 살아온 세상, 우리 사회를 떠받쳐온 기본가정(선택의 기준)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새로운 가치체계, 선택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움직여온 기본적인 동력은 경제적 이익 혹은 편리함이었습니다. 그 기준을 ‘생명’의 기본원리에 맞춰 바꿔가는 것이 생명문화운동입니다. 지금까지 돈(화폐가치)이 세상을 움직였다면, 앞으로는 ‘생명가치’에 따라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돈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해로운 농약과 화학비료를 써왔던 관행농법에서 돈이 안 될지 모르나 생명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문화운동인 셈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선택 기준이었던 돈이 아니라 생명의 원리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수도권 용수 공급과 홍수 조절이라는 개발 이익을 넘어서 동강의 아름다움, 동강의 자연생태를 지키겠다는 ‘동강 살리기 운동’도 생명문화운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말, 언어의 문제입니다.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거나 대안 제시의 차원에서 제기된 “영월댐 반대 운동”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자연생태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자는 “동강 살리기”는 똑같은 행동을 요구하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영월댐 반대 운동은 일회적으로 이미 끝났습니다. 하지만 동강 살리기는 우리에게는 영원한 과제인 셈입니다. 최근 탐사나 래프팅 등으로 망가져 가는 동강의 소식을 접하면, 영월댐 반대 운동은 성공한지 모르나 생명문화운동으로서의 동강 살리기는 실패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문화운동으로서의 동강 살리기 운동을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처럼 생명문화운동에서는 생명의 원리에 기초한, 적확한 말을 찾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런 이유로 생명학사전난도 마련된 것입니다.
생명문화운동 이야기로 돌아가서, 생명의 원리에 기초한 선택의 기준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로 떠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두해 전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열린 한 모임에서 생명민회 주요섭 님은 이런 말을 합니다. “달을 가리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손가락으로는 고개를 돌리게 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발길을 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보름달 아래서 함께 춤추며 노래할 강강수월래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야만 지역에 뿌려진 풀뿌리 생명운동의 씨앗이 자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를 이어 원불교를 이끄셨던 정산종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풍류로서 세상을 건지리라”고. 최근 세계적인 신학자인 (정)현경 님은 “결국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하면서 동명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지요. 이 아름다움이라는 선택의 기준, 잣대를 세상에 널리 펴는 일이 바로 생명문화운동입니다.
생명문화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여 그 사람의 발걸음을 떼게 하는 거룩하고 아름답고 정의로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