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운동과 새로운 사회운동의 패러다임
– 2013년 한국형 문명전환운동의 원년을 꿈꾸며
“근본적인 변혁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는 위기를 맞아 낡은 옛 것을 떼어내는 과정이며, 세 번째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두 번째 그 사이의 국면, 즉 ‘이행의 시간’은 따라서 매우 긴장감이 넘친다. 이런 한계 영역에서는 낡은 것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며, 새것은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어느 것도 작동하지 않는 불확실성의 국면이며 통제불능의 국면이다. 또 우리가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낡은 세계상과 정체성이 해소되어버리는 국면이기도 하다. 우리는 낡은 것에 대해서는 호스피스 역할을,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산파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비록 슬픔과 불안 그리고 고통이 동반된다고 하더라도 우주적 시간에서 보면 그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생태철학자이자 불교 지도자이며 평화운동가인 조안나 메이시라는 분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전환기’라는 인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제 직접적인 역할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낡은 것을 모조리 파괴하고 그 폐허 위에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수명을 다한 질서와 제도는 그 몫을 다했으므로 잘 갈무리해야 합니다. 더불어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야 합니다. 그것은 높은 빌딩을 짓는 토목건설이 아닙니다. 나비가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펴듯, 새로운 차원으로의 도약입니다. 2013년 오늘 생명운동은 새로운 문명의 출산을 돕는 ‘산파’가 되어야 합니다.
대선의 충격, 길을 잃은 한국의 사회운동
“전환의 시대, 생태순환사회로” 2013년 2월 1일 열린 부산환경운동연합 창립 20주년 정기총회장에 내걸린 슬로건입니다. 오랫동안 한국 환경운동을 이끌어왔던 (전국)환경운동연합이 ‘20주년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길을 탐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산총회에서 ‘전환’과 ‘생태순환사회’라는 화두가 내걸린 것도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는 그들의 시대인식과 깊은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운동의 현실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계사년 새해를 맞은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은 대선 패배의 깊은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할 ‘대선평가회’조차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 2013년 시민사회단체 신년하례회는 ‘멘붕’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단지 무거운 분위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작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신년사에서는 ‘문명의 전환’을 이야기할 정도로 희망과 미래가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대선 패배를 반성하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싸우자고 하지만, 울림이 없이 공허할 따름입니다. ‘2013년 체제론’도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론도 김빠진 맥주가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자명합니다. 미래가 보이기 않기 때문입니다. 일회적 전투에서의 패배가 아니라 전선 자체가 무너진 셈입니다.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선거는 진보와 보수, 혹은 좌파와 우파가 1대1 구도로 첨예하게 맞붙은 마지막 전투가 될지도 모릅니다. 구도 자체가 이미 낡은 것이 되었다는 말입니다.(물론 앞으로도 오랫동안 전투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대안적 담론과 실천의 비약적 성장과 함께 다자 구도, 복합 구도가 형성될 것입니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짧게 보아도 광주항쟁 이후 30년이 넘었습니다. 민주화와 산업화는 근대화의 두 수레바퀴입니다. 서로 적대적인 듯 보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공존관계였습니다. 서유럽에서 산업혁명과 민주주의혁명이 그러했던 것처럼 근대국가의 형성과정에서 때론 싸우고 협력하며 성장해왔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87년 6월 민주항쟁과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10년 집권을 거치면서 큰 틀에서는 이미 한국형 근대국가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좌/진보도 우/보수와의 공존을 선선히 인정하든지, 전혀 새로운 진보의 길(정확히 말하면 진화와 성숙의 길)을 제시하든지 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진보의 권력 획득을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라고 강변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근대체제는 이미 완성되었고 진보와 보수는 체제 내 권력투쟁을 해온 것입니다.
복지국가 주도권 싸움만으로는 새로운 체제를 말할 수 없습니다. 서구형 복지국가도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이미 대부분 이루어진 셈입니다. ‘진보적 복지국가’와 ‘보수적 복지국가’ 사이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그것을 체제전환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2013년 체제론’ 역시 한반도적 관점에서는 의미가 있으나 그 이상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낡고 오래된 안경을 벗어야 합니다. 안경을 벗어야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다른 관점으로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검정색 선글라스로 보는 세상은 흑백 두 개의 세계뿐입니다. 울긋불긋한 봄꽃들의 향연을 만끽할 수 없습니다. 총천연색의 전일적 생명세계를 볼 수가 없습니다.
개벽에 버금가는 지구적 전환기에 즈음하여 국가 중심의 ‘역사’라는 근대의 발명품마저도 낡은 것이 됩니다. 문명 전환의 관점에서는 ‘역사적 구조와 체계(historical structures and systems)’마저도 좁디좁은 관견(管見)이 됩니다. 지구생태계의 관점, 생명의 시선, 우주적 공공성으로 오늘 우리의 삶과 사회를 볼 때입니다.
이제 한국의 사회운동은 글로벌 생태위기와 자본주의 체제위기를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속불가능한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당과 노동조합, 학교와 종교기관 등등, 근대적 구조물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중국 주(周)나라 말기에 무너지는 옛 질서를 보며 공자가 정명(正名)을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한 시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학교가 학교답지 못하고 정당은 정당답지 못하며 교회가 교회답지 않습니다. 탈학교, 탈정당, 탈도시, 탈종교… 기존의 질서로부터 탈출과 전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문명의 출산을 준비하는 글로벌 전환운동
탈출과 전환의 중심에 ‘새로운’ 시민사회운동이 오롯이 서있습니다. 문명전환의 파동과 에너지는 돈(기업)과 권력(국가)으로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본원적 생명에너지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사회운동 자체가 먼저 전환되어야 합니다. 이미 시민사회운동의 목표 이동 혹은 새로운 차원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권력감시와 기업감시와 환경보호는 여전히 중요합니다만, 동시에 재인간화(신인간)과 새 문명을 모색하는 새로운 차원의 사회운동이 절실합니다. ‘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사람의 변화’, ‘문명의 전환’을 목표로 하는 사회운동이 필요합니다. 쓰나미가 몰려오는 게 분명하다면 오늘 아침 한 끼의 식사와 마당청소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근본적인 대책도 세워야 할 때입니다.
글로벌 전환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GTI라는 단체는 문명전환기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먼저 사회운동의 전환을 제안합니다.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도 중요합니다만, 근본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전망 속에서 그것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속불가능한 세계에서 지속가능세계로의 전환, 물신숭배를 넘어 새로운 공동체로의 전환 말입니다. 변화의 과정을 위한 '전일적인 틀(holistic framework)'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6가지 지렛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①새로운 비전 ②시스템적 사고 ③새로운 담론의 발전 ④새로운 체제의 파종과 육성 ⑤새로운 지구시민운동의 지원 ⑥시스템적 시민사회조직 전략을 위한 물적 토대의 확보가 그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우선순위의 첫 번째는 물론 비전입니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를 향해 갈 것인가? 비전 찾기는 우리 안의 북극성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GTI와 서유럽 전환운동의 비전은 ‘인류사적 성숙’과 ‘지속가능한 세계’입니다. 이를테면 인류는 지금 사춘기 청소년의 질풍노도의 시대를 거쳐 어른이 되어가는 때라고 봅니다. 몸집은 커졌으나 정신은 아직 성숙치 않은 과도기 혹은 ‘이행기(transition/전환기)’인 것입니다.
영어의 trans는 통과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단절이 아닙니다. 과거를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통과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애벌레와 번데기를 통과해야 하듯이 말입니다.
영국의 작은 도시 토트네스의 녹색 전환운동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전환’은 시대적 화두를 넘어 실천적 목표가 되었습니다. 글로벌 전환네트워크의 새로운 키워드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예컨대 이런 것들입니다.
-새로운 검소함과 큰 사회적 관계(The New Austerity and the Big Society)
-집단적 힐링과 사회변화(collective healing and social change)
-생태적 문화적 재지역화(relocalization)
-지역재생 혹은 지역공동체의 생명력 복원(resilient communities)
-탈성장, 혹은 성장 없는 번영
-정상계의 경제(steady state economy)
-거룩한 경제(sacred economy)
-영성적 사회운동(subtle activism, Spiritual practice)
-약탈적 소유에서 생성적 소유로의 전환 등
2011년 가을 전 세계를 강타한 뉴욕의 점령운동은 권력투쟁이 아니었습니다. 정부를 장악하고 기업을 빼앗아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자본과 권력의 식민지가 된 공동체와 삶의 공간을 시민의 것으로 되찾아 오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점령하라2.0’은 진정 삶의 전환운동입니다. 사회전환 운동입니다. 월스트리트에서 도시농업을 일구고 예산 삭감으로 사라진 공무원 대신 마을도서관을 되살리는 상호부조와 돌봄의 생활공동체 만들기입니다.
깊고 넓어진 한국의 생명평화운동 : 2012년을 돌아보고 2013년을 내다보며
2012년은 운동의 전환을 천명한 팜플렛 ‘원주보고서’를 통해 ‘생명운동’이란 말이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한 세대가 지난 셈입니다. 이제 ‘생명’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되었고, 생명운동이란 말은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보통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명평화운동으로 더욱 깊고 넓어졌습니다.
생명평화운동은 유럽의 생태주의운동에 비견되는 한국적 대안담론과 실천을 축적해왔습니다. 무엇보다 생명평화운동은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관을 제시했습니다. 인권과 생태를 아우르며 또 더욱 깊게 하였습니다. 또한 생명평화운동은 사회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편익적 협동조합을 넘어서는 도농상생, 생산-소비 공동참여의 새로운 협동운동 모델을 만들어내었고, 탁발순례와 삼보일배 등을 통해 성찰과 영성의 사회운동을 창조해냈습니다. 이제 생명평화운동은 마을-지역을 기반으로 협동과 호혜의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2012년 생명평화는 노동운동을 비롯해 기존 사회운동과 한 몸이 되었습니다. 지난 10월 5일 제주 강정마을에서 출발한 ‘2012 생명평화대행진’ 행진단이 전국을 순례하고 “함께 살자”는 구호와 함께 29일 만인 11월 2일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참여연대와 생명평화결사가 함께 걷고 함께 노래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쌍용차 노동자들을 위해서 도법스님과 종교인들이 33인 회의를 조직하고 매주 토요일 오후 생명살림국민행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2012년 생명평화는 민주시민교육의 핵심가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준국가기관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시민교육의 교재로 ‘생명평화세상만들기’(가제)를 만들었고 시험용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생명평화운동이 사회적 시민권을 얻은 셈입니다.
2013년에도 여러 가지 새로운 일들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먼저 눈에 띠는 것은 성찰과 깨달음에 기반한 사회운동의 실천입니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가 1000일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평화의 등불, 당신이 밝힙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한 사람이 한 시간씩 매일 24시간을 1000일간 이어가는 릴레이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는 서유럽 대안운동에서 이야기하는 ‘서틀액티비즘’의 한국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3년은 특별한 해입니다. 한국전쟁을 중단시킨 정전협정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현대사에서도 그렇지만, 문명전환의 관점에서도 한 갑자(甲子) 60년은 의미심장합니다. 정전 60년이 지난 오늘 전쟁의 종식을 기념하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켜야 하겠습니다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체제대립과 이념대립을 넘어서 인간을 비롯한 온 생명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방에 선언하고 실천할 때입니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휴전선에서 지구적 문명전환운동의 또 다른 시발점이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DMZ평화생명동산과 생명평화결사를 비롯한 생명평화운동 단체들의 특별한 기획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이 민회운동입니다. 민회(民會)는 그리스 아테네의 아고라민주주의의 시민총회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만, 20여년 전 1994년에 출범한 생명민회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민회는 직접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에 기초해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열망을 모아가는 대안적 공론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초 및 광역자치단체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민회를 씨줄로, 각 영역의 의제를 담아내는 평화민회, 생명민회, 통일민회 등의 날줄을 교직하는 깊고 넓은 민회운동의 여정을 구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화문화아카데미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편 올해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한해 전 보은취회가 열린 지 두 갑자, 1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1893년 4월 충북 보은에 수만명의 동학도인이 모여 포덕천하와 보국안민, 제폭구민, 척양척왜의 깃발을 올렸습니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민중들 스스로가 자신의 정치 사회적 염원을 집단적으로 표출한 한국적 민회의 원형입니다. 120년이 지난 오늘 보국안민과 척양척왜를 넘어, 문명전환의 열망을 모으고 표현하는 마당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생명평화운동에 대한 사회의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협동조합과 대안경제에서의 생명운동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식량위기시대를 예비하는 생명운동의 몫은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쪽의 핵발전소와 북쪽의 핵무기 위협 속에서 핵없는 세상을 위해 생명평화운동이 더욱 앞장서야 합니다. 생명평화운동은 날로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회운동의 패러다임을 창조하는 생명평화운동
오늘 한국의 사회운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가치, 주체, 방법(전략) 등에서 전면적인 전환이 절실합니다. 지난 30여 년간의 생명평화운동의 전개과정과 2008년 촛불집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으나 아직은 생성 중입니다. 협동, 지역, 공동체, 성찰, 영성, 자치, 농업 등 대안적 키워드와 실천을 통해 새로운 사회운동을 촉매해온 생명평화운동이 이제 한국 사회운동의 새 길을 열어야 합니다. 전환의 기획을 구체화할 때가 왔습니다.
한국 사회운동은 이제 권익민주주의와 이익단체의 논리를 넘어서야 합니다. 사회적 공공성을 회복하고, 나아가 생태적 공공성과 우주적 공공성으로 깊고 넓어져야 합니다. 삶에 천착하되 동시에 삶을 초월해야 합니다. 깨달음과 영성의 사회운동에 주목해야 합니다. 문명전환의 전망을 통찰해야 합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사회운동은 몇 단계 변화의 흐름을 보여주었습니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를 ‘대항(저항)형 사회운동’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면, 1990년대와 2000년대 중반까지는 ‘대변형 사회운동’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 생명평화운동과 다양한 형태의 풀뿌리운동과 함께 ‘대안형 사회운동’이 비온 뒤 죽순처럼 성장하였습니다. 사회운동의 진화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일단 세 가지 차원에서 살펴봅니다.
첫째 주체의 전환. 계급 주체에서 보편적 인간으로, 나아가 인간주체에서 생태계를 포함하는 생명주체로 확장됩니다. 여성, 어린이, 청년, 노인 등 산업화와 민주화의 변방에 있던 생활인들이 새로운 사회운동의 중심이 됩니다.
둘째 가치의 전환. 중심가치와 지향이 바뀝니다. 예컨대 지금까지는 자유와 평등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박애(형제애/사랑)가 새롭게 조명됩니다. 경제가치에서 생명가치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가치의 중심이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세계관과 철학의 전환이 절실합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운동은 표면은 바뀐 듯 하지만 심층(잠재의식)은 80년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셋째 운동방식의 전환. 남을 바꾸어 세상을 바꾸는 운동에서 나를 변화시켜 나와 우리를 바꾸고 결국 세상을 바꾸는 운동이 그것입니다. 만들어놓고 짜맞추는 사회운동에서 함께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운동입니다. 이를테면 ‘구조기획’에서 ‘과정기획’으로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운동의 전환은 새로운 에너지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요컨대 생명운동의 힘은 바로 깨달음 혹은 통찰, 혹은 깊은 내면의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나옵니다. 자본주의는 경쟁과 기술혁신에서, 사회주의는 생산관계의 모순과 투쟁에서 변화의 동력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생명운동의 에너지원은 깨달음과 영성입니다. 기존 사회운동의 의식화가 사회·계급·역사적 의식화였다면, 새로운 사회운동의 의식화(정확히 말하면 ‘깨달음’)는 천지인과 영지체(靈知體, spirit-mind-body)를 관통하는 전일적 각성입니다. 보이지 않는 파동과 에너지와 관계성을 느끼고 알아차립니다. 몸에서 비롯되고 의식과 무의식을 망라하는 전체로써의 정신성이 생명운동의 힘입니다.
새로운 사회운동은 전복이 아니라 중심 이동입니다.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일입니다. 기존 질서의 전복과 새로운 권력의 창출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변화를 꿈꿉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행동이 변화하고,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겉으로는 반대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깊어지고 넓어지는 과정입니다. 삶이 바뀌고 뿌리가 깊어져야 ‘생명의 숲’입니다.
다시 생각해 봅니다. 새로운 사회운동은 새로운 공동체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딴 살림에서 한 살림으로, 함께 살기, 더불어 살기, 서로 살리기 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분리, 인간과 자연의 분리, 인간과 자기 내면의 분리를 넘어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비전은 새로운 공동체입니다. 상부상조의 ‘생활협동공동체’이고, 자연과 더불어 ‘생태공동체’이며, 깊은 정신적 ‘영성공동체’입니다. 즉 ‘한살림세상’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공동체는 전(前)분별, 미분화의 공동체가 아니라, 개체생명 하나하나가 오롯이 살아있는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전체인 공동체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새로운 약속을 해야 합니다. ‘사회협약’, ‘공동체협약’이 그것입니다. 경쟁의 룰이 아닌 호혜의 규칙에 합의해야 합니다. 나아가 새로운 공동체 협약은 근대적 계약을 넘어서, 마음속 깊은 내면에서 공감하고 공명하는 이심전심의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인간, 새로운 문명을 열어가는 새로운 시민사회운동입니다.
나비혁명: 2013년을 한국형 문명전환운동의 원년으로
다시금 떠올립니다. “내가 바뀌면 우리가 바뀌고 우리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나비혁명’이라고나 할까요? ‘허물을 벗고’라는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알의 시대와 애벌레의 시대와 번데기의 시대를 넘어, 나비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전환의 몸부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3년 새해, 생명운동을 선언하고 시작한 지 30년이 지나고 이제 새로운 30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30년을 맞이하며 이제 본격적인 전환운동을 펼쳐야 할 때입니다. 의식의 전환, 생활의 전환, 시스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먼 훗날 생명운동의 새로운 30년을 시작하는 2013년을 사람들은 한국형 문명전환운동의 원년으로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조안나 메이시가 말한 산파의 역할이 다시 생각납니다. 생명평화운동은 진정 죽임의 문명의 호스피스 역할과 더불어 살림의 문명의 산파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모심과살림연구소 격월간 정세와동향 <모심의 눈 살림의 길> 제6호에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