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 '경제 성장', '생협의 성장', '인류의 성장'을 생각하며
글 주요섭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
하나. 경제 성장: “GDP 독재에서 벗어나자!”
"이제 'GDP(국내총생산) 독재 시대'를 끝내자. 수치로 계량화되는 양적 성장만으로는 안 된다. 사회적 약자를 얼마나 껴안을 수 있는지, 지구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함께 따져봐야 한다."
지난 3월 국내 유수의 한 신문사가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전(前) 핀란드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성장’이란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해 더 많이 파는 것을 의미합니다. 필요에 의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팔기 위해 생산합니다. 그것의 총량을 이름 하여 ‘국내총생산(GDP)’이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총생산이 정체되고 있습니다. 물가상승률을 생각하면 사실상 ‘제로(0)’성장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경제성장이 높다 싶은 경우에도 극단적인 양극화로 삼성이나 LG와 같은 1% 대기업과 이를 지탱하는 금융·법률·기술 전문가들만이 부(富)를 축적할 뿐 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신문기사를 보면 대기업 사이에서도 양극화가 극심해 499개 상장사의 순이익 중 51%가 삼성과 현대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또한 상위 20개 사가 순이익의 90% 이상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1대 99’는 아닐망정 ‘10대 90’는 분명합니다.
일본의 경우 최근 아베 정권이 등장하여 자국의 통화가치를 마구 떨어뜨리더니, 최근엔 통화량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공언을 하고 있습니다. 돈의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고 돈을 마구 찍어내 생산과 소비를 늘리겠다는 속셈입니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 동안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일본경제를 다시 부풀리겠다는 뜻입니다. 과연 풍선 부풀리기는 가능할까요?
답은 분명합니다. ‘불가능’합니다. 더 이상 경제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우리나라의 GDP성장률을 2.3%로 하향 조정했습니다만,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이미 저성장 체제로 들어섰습니다. 과거의 일시적인 경기침체, 혹은 경기순환과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한마디로 ‘시장포화’ 때문입니다. 지구촌 전체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인 소위 ‘지구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만, 역설적으로 그 이유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시장을 찾을 수 없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소비시장을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생산을 늘려도 팔 데가 없다는 말입니다. 초대형빌딩과 4대강이 아니면 한국의 GDP경제를 지탱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최근 용산개발이 좌초된 데서 보이듯이 이제는 그것조차도 어렵게 된 게 한국이 당면한 경제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정말 ‘GDP 독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생산총량을 척도로 하는 경제성장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실 진즉부터 GDP를 대체한 새로운 지표들이 개발되어 왔습니다. 부탄의 ‘행복지수’나 세계은행에서 사용하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와 함께 ‘진정한 진보지수’(Genuine Progress Indicator), ‘녹색국민총생산’(Green Net National Product) 등 적지 않은 대안적 경제사회지표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웰빙 GDP’도 있습니다. 웰빙(Well-being) GDP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제안으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와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가 주축이 되어 구성한 ‘경제성과와 사회진보 측정을 위한 위원회’
(일명 스티글리츠 위원회)에서 연구를 통해 제시한 대안지표입니다. 이 위원회는 GDP, 삶의 질, 지속가능한 발전과 환경 등 세 가지 주제로 기존의 GDP 개념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대안지표 개발의 필요성을 제시합니다.
GDP 독재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대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지표라는 것도 전문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부탄의 행복지수도 사실상 부탄 국민들 스스로 만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꿈꾸는 행복한 삶, 행복한 사회는 무엇일까? 아래로부터 공감하고 합의하여 함께 만들면 그것이 곧 우리의 대안적 ‘경제사회지표’가 됩니다.(한살림 지표를 만들어 보는 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둘. 생협의 성장: “진화와 확산을 기대하며”
‘성장’ 이야기는 최근 생협계에서도 화두가 되었습니다. “한국 생협, 성장신화를 버려라” 라는 제목으로 녹색평론에 기고한 박승옥 씨의 글과 논박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생협들은 최근 수년 사이 높은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조합원 수와 공급액 외에 조합원 1인당 연간 이용액을 보면, 2012년 기준으로 한 살림이 739,685원, 아이쿱은 2,027,315원, 두레는 655,356원, 여성민우회 614,235원입니다. 아이쿱생협이 월등히 높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이는 아이쿱생협이 채택하고 있는 조합비 제도 때문인데, 이용률과 참여율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매장 수는 2012년 말 현재 한살림 152개소, 아이쿱 129개소, 두레 88개소, 여성민우회 20개소입니다.
한살림의 18%대 성장률도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적은 것이 아닙니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를 겪으면서 생협의 성장률이 정체되었습니다. 잃어버린 20년으로 일컬어지는 장기 저성장 흐름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생협 시장 자체가 포화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생협도 시장이 포화되기 전까지는 성장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기까지는 성장을 지속할 것입니다. 한국 생협은 지금 청소년기를 막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 구조적인 성장 정체 상황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거의 생협의 독무대였던 유기농시장에 대기업을 비롯한 유통자본이 본격으로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협동조합, 마을기업, 로컬푸드 등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심과 지원이 확대되면서, 앞으로 생협은 먹거리와 생활용품 시장에서 행정 지원을 받는 여타의 사회경제 부문과의 경쟁도 피할 수 없습니다. 유통자본 및 지방자치단체 등 외부와의 경쟁과 생협 간 경쟁이라는 이중 경쟁시스템 속에서 조만간 시장포화에 봉착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의 생협들도 고도 성장기에서 저성장 체제로의 연착륙을 준비해야 합니다. 확대전략에서 확산전략으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질적 성장과 확산 전략이란 무엇일까?
첫째. 질적 성장이란 성숙을 의미합니다. 창조적 진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협동조합을 이야기하고 경제부총리도 직거래를 강조하는 가운데 기존의 관성만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청년의 면모를 보여줄 수 없습니다. 직거래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의 차원변화가 필요합니다. 산업사회 이후의 대안적 협동조합의 길을 탐색하고, 인격과 영혼이 있는 직거래를 복원・발전시켜야 합니다. 한살림 안에는 이미 창조적 진화의 씨앗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둘째. 확대에서 확산으로 성장과 발전의 개념이 바뀌어야 합니다. 확산(擴散)은 넓게 흩뿌리는 것을 말합니다. 밭에다 씨앗을 뿌리듯 말입니다. 사업의 규모를 키우고 활동/사업 영역을 넓혀가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큰집 분가하듯 한살림의 정신과 활동을 전국의 골목골목 마을 마을에 흩뿌리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셋. 인류의 성장: “한국의 ‘깨달음 세대’를 기다리며!”
“제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데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요…” 정말 가슴이 아리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유명 자립형 사립학교에서 전교 1등을 다툰다는 남학생이 또 목숨을 던졌습니다. 소년의 애달픈 목소리가 귀청을 떠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고통은 또 얼마나 클지 가슴이 아픕니다. 아이의 죄도, 엄마의 잘못도 아닐 터인데 말입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 사회의 경쟁의 논리를 따져 탓할 일도 아닙니다.
구조적인 경제적 저성장 체제에 들어서 있는 일본에선 이른 ‘사토리(悟り) 세대’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사토리’라는 말은 깨달음, 득도, 자각의 뜻을 가지고 있어 ‘깨달음세대’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사토리 세대의 특징은 자가용, 고급 브랜드 옷, 음주, 여행을 금하고, 연애, 소비, 출세에도 소극적입니다. 이런 ‘초식(草食)계’ 젊은이가 늘어 하나의 세대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제위기를 걱정하는 성장주의 언론은 이들의 소비 기피를 걱정합니다. 디플레이션, 즉 풍선 쪼그라뜨리기를 고착시킨다는 말입니다. 소비가 가장 왕성해야 할 젊은 층의 소비 절제가 내수 시장을 위축해 불황을 심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30대 미만 독신 회사원의 자동차 보유율은 1999년 63.1%에서 2009년 49.6%로, 20대 해외여행자 수는 2000년 417만 명에서 지난해 294만 명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인식과 진단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경제적 풍선 부풀리기가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지구의 총생산과 총소비, 즉 물질적 부는 사춘기를 거치며 이제 다 커버린 청년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인류의 경제는 이미 성인의 몸꼴을 갖추었습니다. 더 이상 클 수가 없습니다. 몸집을 키우기 위해(경제학자들은 이를 ‘경기부양’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저것 먹여봤자 배탈 아니면 비만일 뿐입니다. 이제 몸집을 키울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청소년기를 지난 20세 청년에게 ‘제로성장’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지금 청년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이성의 힘을 키우고, 생태적 감수성을 고양하며, 사회적 관계를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깨달음 세대는 어쩌면 진정한 신인류의 조상일지도 모릅니다. 깨달음이라는 말도 그러하거니와 산업주의 이후, 자본주의 이후의 삶의 양식의 원형이 될지도 모릅니다. 나비가 날개를 퍼득이며 비상하기 직전, 잠자는 듯 성찰하는 번데기 시절인지도 모릅니다.
‘한살림의 성장’을 생각해봅니다. 25살이 넘은 한살림이 듬직한 청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역에 따라 사업과 활동을 확대·확장할 곳도 적지 않습니다. 활력이 필요한 곳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살림의 사업 및 활동과 더불어 ‘한살림 사람’을 성찰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한살림 사람들의 ‘몸’, 한살림 사람들의 ‘생활’, 그리고 한살림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한살림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한살림 마음’은 무엇일까? 한살림 안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전일적인 ‘한국형 깨달음 세대’가 태어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