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들이 처음 인디언 마을에 들어왔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백인들은 ‘미개한’ 인디언들을 계몽하겠다고 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한 달쯤 지난 뒤 백인 선생님은 그 동안 배운 것을 아이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시험을 칩니다. 책상 가운데 가방도 올려놓게 하고 시험지를 나눠주고 문제를 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인디언 아이들이 느닷없이 한 군데로 모이더니 함께 떠드는 것 아니겠어요. 놀란 백인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시험을 봐야지 왜 함께 모여 떠드느냐고 야단을 쳤답니다. 그랬더니 인디언 아이들이 그러는 겁니다. “우리는 어른들에게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모여 의논하라고 배웠다”고.
이 이야기처럼 서구 사회를 이상적 모델로 삼은 현대 사회는 인간들을 철저하게 개별화시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개체화시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대상은 인간뿐이 아닙니다. 모든 사물과 물건을 자르고 잘라 개체로 환원해 버립니다. 자르고 자르다 보면, 가장 기본적인 어떤 요소에 도달하고, 이 요소들의 집합으로 세계가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의 기초 위에 서구 문명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원자론 또는 요소론이라고 부릅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복합적인 현상을 고정된 입자나 단위의 집합체로 설명하는 철학 학설을 말합니다. 부분을 전체가 드러내는 성질로 설명하는 전체론적 이론과 달리 원자론은 전체의 성질을 그 구성부분들로 설명합니다. 쉽게 얘기해서, 부분들의 합이 전체라는 것이지요. 사회적으로는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를 개인으로 보고, 개인들에게만 권리와 의무를 부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만을 중시하고, 개인의 능력을 키우는 것만을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 생각합니다. 공동체적으로 힘을 합하거나 지혜를 모으는 것보다 뛰어난 개인의 능력이 문제해결에 가깝다는 가정 위에 서 있습니다.
이 원자론이나 요소론은 개체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햇빛 따로, 바람 따로, 물 따로, 땅 따로, 벌레 따로, 사람 따로 생각하지, 그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기나 물, 땅의 오염이 뭇 생명들의 존재를 위협한다는 관계성에 대한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생태 환경 문제가 등장하였고, 사람들을 개인으로 개별화시키기 때문에 공동체의 해체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생명세계가 가지고 있는 통합적 기능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무시하고, 전일적인 생명체를 환원할 수 있는 낱개의 요소로만 분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지하,『삶의 새로운 이해와 협동적 삶의 실천』, <남녁땅 뱃노래>, 두레,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