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사회를 혼란이 빠트렸던 메르스 사태가 다행히 진정세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확인한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과 우리 사회 의료체계의 현실은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분노와 절망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우리 사회에 '돈보다 생명'이라는 가치를 뿌리 내리는 데 대한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지난 7월 1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는 생명운동 단체와 시민사회 영역 활동가 분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지혜를 모으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모심과살림연구소와 생명평화결사, 천도교한울연대,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에서 함께 마련한 집담회는 이번 메르스 사태로부터 드러난 문제점들을 성찰하고, 나아가 개인과 사회적 성숙을 위한 계기로 삼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진행 순서에 앞서 여는 인사말에서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임종한 회장은 “메르스 사태가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며, 우선은 이 문제를 이전에 있었던 사스, 조류독감, 구제역의 연장선상에서 생태계 파괴와 공장식 축산에 대한 필연적 귀결로서 나타난 신종 전염병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의료 공공성 문제도 중요한 한 축으로 돌아봐야 하며, 대안으로서 사회적경제와 지역공동체에 근간을 둔 돌봄과 의료체계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사회를 맡은 모심과살림연구소 박맹수 이사장 역시, 책임을 묻고 분노해야 하지만 근원적 문제를 직시하고 성찰적 관점에서 들여다봐야 할 것이라며 오늘 논의 자리가 생활자 각자가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발제문에서도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에서 나타나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었습니다. 김정수 환경안전건강연구소 소장은 구제역과 AI 문제 당시 정부의 태도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이번 사태에서도 다르지 않았다며, 여전히 위기관리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선은 위험에 대한 예측, 예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 정보전달체계가 구축되지 않고 관련 교육 및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 등이 사전 단계에서의 문제점으로 나타났으며, 준비와 대응 단계에서도 각각 응급대응계획이 부재했고 협조체계 구축과 의사소통, 조직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국가방역체계 개선과 관련하여서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자본을 튼튼히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며, 더 이상 반복적인 재난을 겪지 않기 위한 학습과 정책결정과정에서의 투명성 향상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김용우 생명평화결사 정책위원장은 건강과 질병에 대한 국가 중심의 대응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건강 문제에 대한 의료․국가의존적 태도가 사태를 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통 사회에서 민(民)이 지니고 있던 공동체적 요소들을 국가와 전문가에게 맡겨버린 속에서 발생한 의료 문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일견 상식적인 대응 수준조차도 지침으로 전달되는 상황들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 정책을 바꾸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고, 공동체적 보건, 건강관리체계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나아가 새로운 민(民)의 개념으로 영적인 각성과 함께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사는 자율적 존재로서의 탈근대적 공민(共民) 개념을 제안하며, 건강의 주체로서 공민이라는 존재를 상정하고 논의해갔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진 토론에서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임종한 회장은 공공의료 영역이 무너지고 있는 데 대한 우려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며, 공동체에 근거한 지역의료체계가 강화되어 예방 중심의 의료로 가야 한다는 방향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현재 예산 범위 내에서 효율적이고 지역사회 중심의 체계로 전환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의료사협연합회 부설 교육연구센터 박봉희 소장은 이번 메르스 사태와 관련하여 안성의료사협에서 긴급대책반을 꾸리고 소식지 등을 통해 주민들에게 정보를 알리는 작업을 했다며, 앞으로도 국가 전체 시스템을 바꾸는 역할과 더불어 예방 중심의 공동체의료로 전환하는 데 있어서 지역 내에서 조합원이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활동 내용들을 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밖에도 행정이 아닌 마을,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공공’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데 대한 고민, 스스로 우리의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힘을 모아나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통으로 제기되었습니다.
메르스와 가장 깊게 연관된 단어로 ‘각자도생’이 언급되는 씁쓸한 현실 속에서, ‘공공’과 ‘공민’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는 자리였습니다. 분노하고 낙담하지만 거기에서 멈추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또한 꾸준히 말을 걸고 같이 가고자 하는 노력을 지치지 않고 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있었습니다. 지속적인 공론과 공감의 장을 마련해나가야 하겠습니다.
함께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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