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GMO 재배를 우려한다
김훈기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기획위원)
마침내 ‘국산 GMO’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일이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달 8일 농촌진흥청 ‘GM작물 개발사업단’의 박수철 단장은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개최된 ‘16차 LMO 포럼 세미나’에서 현재 국내에서 개발 중인 GMO 가운데 벼와 고추의 재배를 승인받기 위한 절차에 들어선다고 밝혔다. 이들 작물에 대한 승인이 이뤄진다면 내년 7월경 국내에서 상업용 재배가 시작될 수 있다. 한국인의 식탁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농산물이 이제 국산 GMO로 서서히 바뀔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현재까지 한국은 GMO 수입국이다. 콩, 옥수수, 면화, 캐놀라(유채)로 대표되는 수입 농산물의 상당량이 GMO이다. 시기적으로 1996년부터 수입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한국인은 지난 20여 년간 GMO를 알게 모르게 섭취해온 셈이다. 이제 국산 GMO에 대한 승인 절차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 GMO의 수입국에서 재배국으로 변화될 전망이다. 당장은 우리 식탁에 오를 GMO의 양과 종류가 대폭 확대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한국 유기농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기에 국내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2년 농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개발되고 있는 GMO는 17개 작물 133종에 달했다. 식용이나 사료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품목 수로는 벼가 62종으로 가장 많고, 유채(18종), 배추(7종), 감자(6종), 콩(5종), 알팔파(3종), 고추(1종) 등이 뒤를 잇는다. 이들 가운데 개발의 마지막 관문에 해당하는 ‘안전성 평가’가 진행 중인 종류는 벼(4종), 고추(1종), 배추(1종)였다. 대부분 외국에서 이미 개발된 GMO를 피하면서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인 또는 아시아인의 주식을 겨냥한 품목들이다.
지난달 발표에서 소개된 벼와 고추는 이들 가운데 자체적인 안전성 평가를 마치고 공식적인 승인 절차에 돌입할 채비를 갖춘 후보들이다. GMO를 수입하거나 재배할 경우 정부가 조직한 심사위원회에서 270일간 서류검토가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GMO가 인간이나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판단하는 안전성 검사, 그리고 GMO에 새롭게 부여된 기능의 확인 등이 검토된다. 이번 가을에 신청이 이뤄질 경우 이르면 내년 7월에 승인판정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국산 GMO는 어떤 기능을 새롭게 갖춘 것일까. 최근까지 세계인이 먹고 있는 GMO는 크게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다.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게 만드는 기능(제초제저항성), 그리고 농산물에 침투하는 병해충을 없애는 기능(살충성)이 그것이다. 이 같은 기능을 발휘하는 유전자를 미생물에서 얻어 종자에 삽입해 만들어진 결과물이 지금까지의 GMO이다. 농업생산량을 증대시키는 일이 목표인 이들을 가리켜 ‘1세대 GMO’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제 흐름이 바뀌고 있다.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2세대 GMO’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2세대 GMO의 대표 사례가 ‘황금쌀’이다. 섭취했을 때 몸 안에서 비타민A 성분의 함량이 늘어날 수 있도록 외래 유전자를 벼에 삽입한 결과물이다. 과연 이 쌀을 섭취한다고 해서 얼마나 몸에 좋은 영향을 미칠지 또는 근본적인 안전성 문제가 없는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일단 기존의 쌀에 비타민A 성분이 포함된 것은 소비자가 실감할 수 있는 특성이다. 국내에서도 이미 황금쌀이 개발 막바지 단계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서 소개된 벼의 기능은 다소 엉뚱해 보인다. 식용이 아니라 미백 기능을 발휘하는 화장품 재료로 쓰겠다는 것이다. 레스베라트롤이라는 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유전자를 땅콩에서 추출해 벼에 삽입했다. 원래 레스베라트롤은 생체에서 항암 또는 항산화 작용을 일으켜 질병 예방과 수명 연장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귀한’ 물질이다. 그런데 농진청은 이를 화장품의 재료로 사용하겠다는 설명이다. 소비자의 기호를 겨냥한 2세대 GMO라 할지라도 주곡이 GMO로 바뀌는 일에 대해 국민적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의식한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장의 용도가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당초 국산 GMO 개발의 목표는 세계 식량 시장에서 GMO 종자만큼은 주도권을 확보해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화장품용 벼 외에 이번 발표에서 소개된 고추는 바이러스에 저항력을 갖는다고 한다. 당연히 식용으로 쓰일 것이다. 이 외에 농진청에서 승인 신청을 기다리는 갖가지 농산물 역시 식용 또는 사료용으로 쓰일 것이다. 벼가 화장품용에서 식용으로 바뀌는 일은 시간문제인 상황이다.
일단 국가의 승인이 이뤄지면 그 재배를 피할 수 없다. GMO 재배는 기존의 국산 농산물, 특히 유기농산물이 설 수 있는 자리가 더욱 좁아짐을 의미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계 어디에서도 GMO는 유기농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 GMO 종자의 지식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당연히 기존 국산 농산물 시장을 지배하려 할 것이다. 소비자에게 호감을 살 만한 새로운 기능을 앞세우고, GMO가 아닌 일반 농산물보다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고 홍보를 펼칠 것이다. GMO 개발 최강국인 미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주변 GMO 농가로부터 날아든 꽃가루가 유기농지를 ‘오염’시키는 사례도 국내에서 주요 현안으로 부각될 것이다. 국산 GMO가 한국의 농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심도 있는 인식과 논의가 필요하다.
1세대 GMO의 안전성 문제도 아직 과학계에서 논란중인 상황이다. 예를 들어 GMO를 실험쥐에게 3개월간 먹여보고 문제가 없으면 승인되는 기존 관행을 비판하며 2012년 프랑스 연구진은 쥐의 전 생애인 2년간 관찰한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면역계의 이상, 종양의 발생 등 각종 생체기능의 문제점이 세계인의 우려를 낳았다. 또한 올해 초 세계보건기구의 과학자들이 GMO 농가에서 대표적인 제초제로 사용되는 글리포세이트를 인체에 암을 일으키는 물질이라고 새롭게 주장해 미국 환경청이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글리포세이트에 내성이 생긴 슈퍼잡초 때문에 전체적으로 농약의 사용량이 증대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과학계에서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 모든 논란과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국산 GMO의 승인 과정은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