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기, 우리를 위한 구명정
이병철 (지리산생태영성학교 교장)
우리는 지금 난파선을 타고 있다.
저 캄캄한 바다 밑 세월호 속에서 비명에 죽어간 이들의 모습은 바로 내일 우리의 모습이다. 지금 우리가 탄 배 또한 그렇게 침몰하고 있다. 가라앉고 있는 배, 이 난파선에서 우리는 세월호의 침몰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때로는 비통해하면서 선장과 선원들의 행위에 분노하고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는 구조 활동에 대해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며 책임 추궁하기에 급급하다. 세월호 침몰에 대해, 그렇게 억울하게 죽임당한 그 목숨들에게 우리 자신의 책임은 없는 것인지를 묻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나는, 우리는 이 참사의 책임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비난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나에게, 그리고 지금 다른 누군가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바로 당신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나와 당신이, 그렇게 우리가 세월호를 캄캄한 바다 속으로 가라앉히고 수많은 목숨들을 수장시킨 자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의 가치관과 그 삶의 방식이, 생명보다, 존재보다 돈과 물질과 그 소유를 더 중요시한, 함께 도우며 살기보다는 경쟁에서 남보다 앞서려고 한 우리의 탐욕과 그 어리석음이 급기야 이런 참사를 일으킨 까닭이다. 생명의 근원인 자연생태계를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생명을 돈과 바꾸며 사람보다 물질과 그 소유를 더 중시해온 우리의 가치관과 그 삶의 방식이 빚어낸 참사가 세월호 비극의 외면당한 진상이다.
지금 우리가 비난하고 지탄하는 선장과 선주와 고장난 재난 관리 시스템과 그 운용체계 이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가려워진 다른 모습들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스스로 무덤을 파온 것이다. 이제 그것이 우리 눈앞에 드려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미 예견된 참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제2, 제3의 세월호가 가라앉고 무너질 것이다.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대형 참사는 줄을 이어 일어날 것이다. 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비극 또한 다른 나라, 남의 불행과 고통일 수 없다.
그러나 세월호 비극에서 더욱 심각하고 절망적인 것은 세월호의 참사를 바라보면서 다른 것들에게 원인과 책임을 돌리고 있는 우리 자신들이 탄 배가 지금 가라앉고 있다는 그 사실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월호의 저 비명은, 저 절규는 바로 우리가 탄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경고음이다. 세월호의 조난신호는 그러므로 우리들의 조난신호이다.
우리의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이제 누가 와서 우리를 구조해줄 것인가.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국지적으로는 우리 사회, 한국호라는 이 나라의 배이긴 하지만 동시에 인류문명 전체의 배이기도 하다. 인류가, 인류문명의 배가 모두 함께 침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지상에 우리 밖에 다른 누구는 없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우리를 구조해줄 수 없는 것이다. 가라앉는 배, 이 난파선을 가라앉지 않게 하는 다른 방법은 없다. 침몰하는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진 몰라도 결국은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길은 하나이다. 가라앉는 속도를 최대한 늦추면서 모든 힘을 다해 구명정을 가능한 많이 마련하는 일이다. 오직 이 길뿐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 여기에 모두 매달려야한다. 이것이 유일한 살길이다. 이를 위해선 먼저 우리가 탄 배가 지금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 난파선에서 최대한 살아남기 위해선 다른 모든 것들을 멈추고 구명정을 마련하는 것뿐임을 알려야 한다.
이 소식에 충격을 받거나 동요하는 이들을 자제시키고 안정시키기 위해선 우리 자신이 먼저 고요한 중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그 마지막 순간에, 그 마지막 구명정에 사랑하는 우리의 가족과 형제자매들이 무사히 타도록 할 수 있고 그렇게 살아남아서 다시 새로운 세상을, 그 세상을 안전하게 항해할 새로운 배 그 문명을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난파선에서 우리의 기도는 저 후쿠시마 참사 때의 어머니들의 절규 그 애절한 기도를 다시 기억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 우리에게 숨 쉴 공기, 마실 물, 그리고 믿고 디딜 수 있는 땅을 허락하소서. 그밖에 다른 모든 것들은 다만 사치일 뿐입니다.’
그렇다. 이 절박한 사태 앞에서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가. 우선 살아남고 제대로 살아가야하는 것 그것보다 더 우선하거나 중요한 것은 없다. 그 밖의 모든 것은 한갓 사치일 뿐이다.
지금 여기, 세월호의 저 참사 앞에서 우리의 구명정은 그렇게 숨 쉴 공기와 마실 물과 안심하고 딛고 서서 생명을 보듬고 가꿀 땅을 일구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손을 마주 잡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손길도 내칠 수 없는 것이다.그렇게 가슴을 열어 서로를 먼저 품어 안는 것이다. 상처 입은 가슴으로 상처받은 가슴을 보듬어 안아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는 것이다.
내 아이가 저 세월호에 타고 있었다면 지금 오직 하나의 바람은 다만 살아 돌아오는 것이다. 그 밖에 따로 무슨 요구가 있겠는가. 살아있기만 한다면 그 어떤 대가로 치르는 것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생명의 가치, 생명의 무게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우리 아이가 세월호에서 간절히 살아남아 있어만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 없던 바로 그 아이이고 그 생명, 그 존재이다. 그런데 지금 내 곁에 있는 그 아이, 그 사람, 그 생명, 그 존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렇다. 돈보다 생명이, 물질적 가치보다 사람의 존재가치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아니 그 무엇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이 생명, 이 존재와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뼈에 깊게 새기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부터, 그 목숨붙이들부터 먼저 품어 안아야한다. 그것이 저 세월호의 참사로 비명에 죽어간 영혼들이 우리에게 죽음으로써 전하는 메시지이고 그것이 난파선에서 우리가 마련해야하는 구명정이다.
깨어나야 한다. 제 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모든 생명이, 모든 존재가 서로 모시고 서로 돌보며 함께 사는 것이 바른 길이며 제대로 사는 길임을 일깨워야 한다.
깨어나는 것, 우리가 한 목숨 줄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태워 보낼 목숨 줄인 그 구명정을 마련하는 것이다. 생명가치가, 존재가치가 그 어떤 가치보다 더 우선하는 세상 그 사회와 문명을 일구어가는 것이 그 구명정이다.
다시 기도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회피하거나 외면할 수 없다.
다음은 없다.
지금 바로 이 일에 매달려야 한다. 서로 감싸고 돌보며 마음 모아 함께 나서야 한다.
지금 우리들의 배가 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