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세계는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 또 한편에서는 중층적, 복합적인 여러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령 하나의 독자적 체계를 이루고 있는 세포, 세포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기관, 기관들이 모인 몸, 개체의 몸들이 집합되어 구성되는 공동체, 대지와 강 그리고 다양한 생물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지역, 하나의 생명체로서 자기를 조절해 가는 가이아 지구 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다차원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규모가 크든 작든 생명체는 하나의 온전한 전체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전체의 부분으로 기능합니다.
이들 다차원적인 생명체가 각각의 차원에서 자기 밖의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공진화해 나가는 것이 바로 생명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은 ‘자기 조직화’입니다. 생명은 환경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화시키면서 자라왔습니다. 즉,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창조적 진화’를 해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자기 조직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사회도 자기조직화나 창조적 진화의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명운동이 기존 시스템에 대항하거나 대응하는 시민운동의 성격과 달리 부분적이라도 새로운 사회질서, 사회 시스템을 창조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이유도 ‘자기 조직화’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운동보다도 경제적 살림의 운동을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한 것도 이런 맥락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에 일반화되지 않았지만, 비영리조직(NPO), 협동조합 섹터, 제3섹터의 확장은 매우 필요한 일이고, 앞으로 사회운동에서 중요한 운동의 영역으로 부각되어야 할 것입니다.
월드컵 이후로 촛불집회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미군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효순이, 미선이 추모집회에서 시작된 촛불집회는 월드컵, 탄핵 정국을 거쳐 이제는 한국사회의 독창적인 집회방식으로 정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촛불집회는 이전에 이루어지던 집회와는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집회 주최 측이 무대를 만들고 순서를 정해 참가자들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던 기존의 집회와 달리, 참가자들이 여러 무리로 나뉘어져 그 무리들마다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토론을 하면서 집회를 진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나의 중심이 아니라 여러 핵을 가진 다중심의 집회 방식이 정착되었던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을 분리하고, 하나의 중심에 줄을 세우던 획일화에서 벗어나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자기 조직화’를 통해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 다중심의 세계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의 보편화를 통해 이전에는 독점되던 정보가 원활하게 소통되기 시작하면서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참여를 통한 ‘자기조직화’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추모집회나 탄핵 반대 집회 모두 집회의 주최 측이 중앙집중식의 기존의 집회방식을 고집하는 바람에 둘로 쪼개지거나 활력을 잃어버립니다.)
‘자기조직화’는 앞으로 집회만이 아니라 수많은 영역에서 사회현상으로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조직화의 논리를 체화시키는 다양한 차원의 공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기조직화’를 생명의 특성으로 여기는 생명운동에서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조직화의 원리에 맞게 생명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생명의 세계를 다른 차원의 말로 풀어보면, ‘다차원적인 자기 조직화의 그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다차원적인 생명체들의 자기 조직화가 종으로 횡으로 짜여지는 세계인 것이지요. 자기 조직화는 자율적이며 능동적 주체의 창조성을, 그물은 천지만물의 유기적 관계를 나타냅니다. 주요섭 님은 이런 생명세계의 원리를 인간 사회에 적용하면, ‘자율, 연대, 창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모토가 ‘자유, 평등, 박애(연대)’였다면, 생명운동의 모토는 ‘자율, 연대, 창조’가 아닐까 하고요.
– 에리히 얀치, <자기 조직하는 우주>, 범양사, 1989
– 김지하, <화두>, 화남출판사, 2003
– 주요섭, 지역적 삶을 위한 생명운동의 정치적 상상력, <녹색운동의 길찾기>, 환경과생명,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