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 공포와 의료
글 김용우 ((사)한알마을 이사장,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기획위원)
메르스(Mers) 공포가 한반도를 휩쓸고 있다. 메르스가 확산된 일부 지역은 아예 죽음의 도시가 된 듯하다. 인류 역사에서 전염병은 종족을 멸종시키기도 하고, 왕조를 멸망시키기도 하였으며, 문명을 바꾸기도 하였다. 전염병은 소리 없이 번지고 가까이 한 사람에게 옮기기 때문에 공동체에는 치명적이다.
서양문명의 확산에는 서구의학의 발견과 발전이 한몫해 왔다. 천연두나 소아마비 같은 수많은 질병과 전염병이 서구의학에 의해 정복(?)되어 왔으며 일부 의학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서양의학이 발전하면 장수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도 만들었다. 특히 서양의학과 근대국가의 결합은 국력의 확보를 위한 국가 중심의 방역체계의 구축을 촉진하였으며, 이제 인류는 자신의 생명이나 건강에 어떤 이상이 생기거나 그 징후가 있으면 병원과 국가체제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겨야만 한다. 근대화 이전에 각 민족과 공동체, 그리고 개인에게 전승되던 전통의학과 민간의학은 그 내용뿐만 아니라 기능도 대부분 상실되었고 이제 적절한 학습과정을 거친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그 내용을 알 수도 없고 그것을 시행할 수도 없다.
근대 서구의학의 발전과 전통의료를 포함한 의료 체계의 전문화 덕분에 일견 민초들의 삶이 편리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실상 민초들 개개인이 자기 몸마음(뫔)에 대한 자율적 관리와 통제권을 상실하였음을 뜻하며, 공동체 건강학의 멸실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우리 뫔에 대해 스스로 주인노릇을 하지 못하고 질병이 발생하거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전문화된 의료체계에 모든 것을 의탁한다. 이에 따라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이나 암과 같은 고치기 어려운 질병 앞에서 국가 중심의 건강관리체계와 병원 중심의 서양의학 외에는 별 대안 없이 무력한 공포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메르스의 전염과 확산에서도 드러난 것은 실제 병의 전파가 병원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국가의 방역체계는 적시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병의 확산 이전에 공포의 확산이 먼저 전국화되는 기이한 현상을 보고 있다.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일찍이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저술을 통하여 현대 의학과 체계가 질병의 극복과 인류의 성숙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비판하였다. 일리치는 특히 병원을 중심으로 한 건강관리체계는 의료를 병원이 독점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건강과 의료로부터 객체화시키며, 국가 보건의료예산을 증대시켜 예산의 의료화를 촉진하며 사회전체를 의료화 한다고 비판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면 일리치의 지적은 현실화되어 있다. 해마다 증가하는 보건복지 예산과 의료보험 예산,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찾는 병원이용의 급속한 증대,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병원이 관리하는 체계에 우리 삶은 깊숙이 포섭되어 있다. 보통사람은 의료와 건강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몸이 아프면 (겉으로만 비영리를 내세우며 의료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결국 우리의 삶은 국가 중심의 건강관리체계에 종속되어 국가보건기관의 끊임없는 캠페인과 관리 방침에 따라야 한다. 메르스 문제로 전 국민이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뒤늦게 국민안전처에서 보낸 긴급재난문자 내용은 우리를 허탈하게 한다. ‘자주 손 씻기’, ‘기침?재채기시 입과 코 가리기’, ‘발열?호흡기 증상자 접촉 피하기’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익히고 습관화해야 할 상식들이다. 이런 상식적인 내용을 재난 상황에서 국가가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얻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은 뫔에 대해 주인이면서도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식민화 되어 있는 우리 삶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은 근대적인 국가 중심의 건강관리체계와 병원 중심의 서양의료체계가 가진 문제점이고, 이로 인해 우리의 뫔에 대한 성찰과 자율적 관리의 지혜가 점점 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인류와 질병은 함께 있어 왔으며, 앞으로도 메르스 같은 신종 전염병이나 암과 같은 질병들이 끊임없이 새로이 등장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우리의 시선이 정책과 제도 개선, 예산 투입을 통한 시설 확충에만 머물지 말고 우리 뫔에 대한 자율적 통제를 높이고 공동체적 대응력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