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회(民會) 운동

 “1893년 3월 보은 장내리에 2만여 명의 동학교도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교조(敎祖) 최제우의 신원(伸寃)을 요구하며 임금의 하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선무사로 파견된 어윤중이 보은취회를 보고 ‘민회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독립협회는 1898년 3월 10일 종로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국민의 힘으로 제정 러시아의 침략정책을 배제하고 자주독립을 공고히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1만여 명의 민중들이 참가하여 러시아의 군사교관과 재정고문의 철환을 결의하였습니다. 3월 11일 정부는 만민공동회의 결의에 따르기로 결정하고 러시아공사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하였습니다. 3월 12일에는 독립협회와 직접 관계없는 서울 남촌(南村)에 거주하는 평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습니다.”

“11월 5일 독립협회를 해산시키라는 고종의 조칙에 불만을 품은 수천 명의 민중들이 경무청 앞에 집결하여 자발적으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들은 6일간이나 철야시위를 벌였습니다”

민회운동이 시민사회운동 영역에서 보통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4년 10월 발족된 ‘생명가치를 찾는 민초들의 모임’의 약칭으로 ‘생명민회’가 사용되고, 주민자치운동의 새로운 조직형식으로 ‘민회’가 제시되면서 부터였습니다. 

그 민회론을 제기하고 공론화를 주도한 분이 ‘신촌민회’라는 이름으로 신촌지역에서 주민자치운동, 지역문화운동을 펼쳐온 연세대 이신행 교수입니다. 이신행 교수님의 문제의식은 시민사회운동의 활성화와 더불어, 지역에서 민에 의해 뒷받침되는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여 궁극적으로 시민자치를 실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교수님은 ‘민회를 통한 사회적 정당성의 현현’으로 개념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민회론은 1995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생명민회가 주최한 몇 차례의 포럼을 통해서 의미있는 문제제기로 받아들여졌고, 김지하 시인이 동학의 포접(包接)을 원용한 생명운동적 민회론을 전개하고 문순홍 님이 ‘생명운동의 정치형식으로서 생명민회’를 제안하면서 그 내용이 심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민회운동은, 일정한 지역 안에서 제도권력을 대신할 사회적 정당성과 권위를 가진 시민의회, 시민회의(이름이 중요하지는 않다)의 형식틀은 어디에서도 시도되지 못했습니다. 김지하 시인이 제안한 생활조직으로서의 접(接)과 그것을 기초로 한 포(包)적 조직도 전형화된 틀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생명을 중심가치로 하는 민회의 형성이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요컨대 이상형의 민회운동의 구체적인 실험과 성과, 경험은 평가자료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빈곤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생명민회도 스스로 메시지 네트워크라고 규정한 데서 볼 수 있듯 민회의 이름을 빌리기는 했지만, 전형적인 민회상을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민회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과천 생명민회, 생명회의, 교육민회 등이 있으나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지역시민단체나 이슈네트워크와 다르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역사적으로 전형적인 민회상은 폴리스의 시민총회입니다. 시민들은 아고라에 모여 폴리스의 주요 정책을 토론하고 합의를 도출해냈습니다. 권한은 미약했지만, 매년 10회에 걸쳐 정기적인 민회를 개최했고 민중들에 의해 선출된 평의회와 민간인 배심원제도가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모든 법령은 평의회(the council)와 인민(the people)의 양자 명의로 가결되었습니다. 또한 민회는 혁명기에 민중의 자발성에 기대어 평의회로 조직되거나, 민중집회의 형식으로 형성되었습니다. 프랑스혁명, 파리코뮨, 러시아혁명 등 모두 그러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앞서 소개한 만민공동회나 동학의 취회, 해방 후 인민위원회에서 민회적 측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폴리스의 경우를 제외하고 민회는 혁명기, 혹은 혁명적 상황에서만 형성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일상적으로 구조화된 민회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민회가 구조화되는 순간 민의 역동성은 사라지고 지배의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지하 시인이 일상적인 생활조직으로서 접과 접들의 네트워크로서 포라는 포접의 이중조직론, 이른바 포접의 멧돌론에 주목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신행 님의 경우에도 만민공동회 외에, 향약이나 두레, 배심원 제도, 원로회의 등에서 민회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힌 점을 생각하면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상시적인 구조로서의 민회를 접어두고, 또 혁명적 상황에서의 민회는 나중 문제로 돌린다면, 민회는 원론적인 의미에서 모든 사회문화적 지배력에 대한 민의 자발적 결사와 저항이며, 보다 적극적으로는 지배 권력의 시혜에 대해 민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려는 과정이며, 그 조직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시민사회단체들과 그들 사이의 연대가 모두 민회입니다. 지역의 다양한 자구적 주민조직, 조합 등등도 민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분명하게 개념을 규정하자면, 지역민회는 민의 주체형성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민회운동은 무엇보다 지역상생체의 주체형성 과정입니다. 이때 주체로서의 민이란 ‘깨우친 민(民)’, 천지인(天地人)적 존재로서의 ‘나’, 생명세계의 그물코로서의 ‘나’를 자각한 민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의식화, 혹은 각성만을 의미하는 계급주체, 인민주체와 다릅니다. 

민회운동은 자치의 조직화과정, 확장과정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구적 생활·문화조합, 계모임으로부터 기왕의 주민조직, 시민단체까지 생활의 각 영역에서 다양한 형식의 자치조직을 꾸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민회라는 이름을 쓰건, 안 쓰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다양한 생활자치운동의 기반 위에서 ‘생명’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종파와 계급계층을 망라한, 지역의 사회적 정당성과 권위를 대표하는 지역 네트워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아직 요원해 보이기는 합니다. 

당장 이런 실험은 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는 새로운 유형의 지역시민단체(지역민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치, 대안적 삶을 모색하고 대안문화운동을 펼치는 시민단체입니다. 문화, 영성, 생활, 사회참여의 공동체, 혹은 문화, 영성, 지역이 강조된 생활협동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창조적 영성을 살리는 시민단체(민회)가 되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요컨대 영성 문화운동, 환경 생태운동, 생활 자치운동을 동시에 펼쳐 지역적 삶이 온전히 실현되게끔 도와주는 시민단체 말입니다. 

다음으로 이벤트(상징/이미지)로서의 지역 만민공동회 혹은 시민의회(대안의회)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1년에 한번 지역에 있는 모든 민간단체(이른바 봉사단체를 포함하여)들이 행정과 기업에 대항하여, 혹은 그들까지를 포함하여 시민들의 민의를 모으고 힘을 과시하는 민회를 개최하는 것입니다.(○○聚會, ○○지역 만민공동회) 또한 조금 다른 형식으로 지방의회에 대응하는 대안의회로서 시민의회를 소집하여 별도의 시민적 의사소통의 장, 공론화의 장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강조되어야 할 것은 자율, 연대와 더불어 ‘창조’가 다양한 민회운동의 원리이자 지향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창조적 활동의 꽃인 문화, 그리고 그러한 시각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운동으로서의 시민운동’, ‘문화운동으로서의 민회운동’, ‘문화운동으로서의 생명운동’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 이 글은 주요섭의 지역적 삶을 위한 생명운동의 정치적 상상력(녹색운동의 길찾기, 환경과 생명, 2002)을 이 소책자의 취지에 맞춰 필요한 부분을 편집한 것입니다. 

– 이신행, 주민이 주체가 된 시민의회의 역할과 가능성 모색, 생명민회자료집, 1995 

– 이신행, 사회적 권력의 형성과 민회조직, 주민자치, 삶의 정치, 대화출판사, 1995 

– 김지하, 생명학1, 2, 실천문학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