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그릇의 영성을 살리는 생명밥상운동
유미호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기독교환경운동이 20년의 역사를 맞던 2002년, 생명밥상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단체가 성년의 나이가 되어 생명의 먹을거리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 것은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성년이 되어 철들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밥이 우리의 몸 상태뿐 아니라 정신과 신앙의 양태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밥 한 그릇의 의미를 아는 자는 하나님을 안다 / 밥 한 그릇을 아무 깊은 뜻 없이 먹는 자는 / 하나님도 그렇게 아무 뜻 없이 게걸스럽게 먹게 되어 / 하나님의 거룩을 범하고 자기 생명을 상하게 한다 / 밥 한 그릇 앞에서 감사할 줄 모르고 옷깃을 여밀 줄 모르면 / 지존자 하나님 앞에서도 / 감사할 줄 모르고 경외하는 마음을 익히지 못한다.”
당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밥상은 생명을 위한 기본을 운동으로 펼쳐야 할 만큼 생명을 살리는 ‘생명의 밥상’이 아닌 생명을 해하는 ‘죽임의 밥상’이었습니다. 오염된 먹을거리가 올려지고 폭식하거나 남겨버림으로 몸을 더럽히고 자연과 이웃이 굶주리고 신음하게 하였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먹는 엄마 젖부터 노년의 식사에 이르기까지 풍성하게 허락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참 먹을거리를 찾기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때론 찾지도 않은 채 에덴동산에서 저질렀던 죄를 반복하곤 하였습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한’ 것만 고르기도 하였습니다. 주신 그대로의 자연이 아닌 한 번 이상 가공된 것을 선택하는 데 익숙하였습니다. 게다가 밥상 위에 올라가는 음식만이 아니라 먹는 이의 마음과 영혼도 깊이 병들었습니다.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언제 어디서 난 것인지 모르는 이들이 다수였습니다. 육식을 즐겨 다소 폭력적이 되었고,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지며 평정심을 잃고 정신분열증을 앓는 이도 늘었습니다. 잘못된 음식이 몸은 물론 마음의 병을 일으켰고 또 밥을 가벼이 여기게 해서 남겨 버리는 음식도 늘어나게 했습니다. 죽임의 밥상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없이 거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운동이 생명밥상운동입니다.
처음엔 음식물쓰레기 직 매립 금지에 따라 그 배출량을 줄이려는 의도가 컸습니다. 그러다 오염되지 않은 국내산 유기농을 필요만큼 먹는 것, 지구를 살리고 영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발전하였습니다. 하루 세 끼 식사만 잘해도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주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걸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밥 먹는 자식에게’란 노래로 풀어 놓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켜라 봄부터 여름 지나 가을까지 그 여러 날들을 비바람 땡볕 속에 익어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먹어서야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운 줄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 거여 / 주님을 모시듯 밥을 먹어라 햇빛과 물과 바람 농부까지 그 많은 생명 신령하게 깃들어 있는 밥인데 그렇게 남기고 버려 버리면 생명이신 주님을 버리는 것이니라 사람이 소중히 밥을 대하면 그게 예수 잘 믿는 거여/ 밥 되신 예수처럼 밥 되어 살거라 쌀 보리 밀 옥수수 물고기에 온 만물들은 자신을 제단 위에 밥으로 드리는데 그렇게 사람들만 밥되지 않으면 어느 누가 생명세상을 열겠느냐 사람이 생명의 밥을 먹고 밥이 되어 사는 거여.
여기엔 ‘신앙’, ‘건강’, ‘살림’, ‘경제’, ‘나눔’을 주제로 한 다섯 가지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첫째는 생명의 양식인 주님을 섬기는 ‘신앙’에 대한 고백입니다. 한 톨의 낱알에도 햇빛과 바람, 비와 흙, 농부의 땀과 수고가 들어 있고 하나님의 은총이 담겨있다는 고백입니다. 감사와 기쁨의 마음으로 밥을 먹음으로 생명에 대한 경외를 표하게 하는 고백입니다. 둘째는 안전한 먹을거리로 몸과 마음을 지키고 돌보게 하는, ‘건강’에 대한 고백입니다. 화학비료와 농약, 유전자조작식품과 인스턴트식품으로부터 병든 몸과 마음을 지킬 뿐 아니라 적당량을 만들어 먹어 비만 등 생활습관병을 예방하고 마음에 평안도 깃들게 하는 고백입니다. 셋째는 창조세계를 살리는 ‘살림’에 대한 고백입니다. 남은 음식물은 음식물의 특성상 수질과 토양오염을 유발하며 소각할 경우 불완전연소로 유해물질을 다량 발생시킵니다. 생명밥상을 차리는 것은 오염으로 인해 고통 받는 많은 생명들의 고통을 덜어줄 뿐 아니라 화학비료와 농약으로부터 땅을 지켜 창조세계를 회복하게 합니다. 넷째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청빈을 실천하는 ‘경제’에 대한 고백입니다. 다섯째는 굶주림에 고통 받는 이들과 사랑을 나누는 ‘나눔’ 실천입니다. 자신이 누리는 풍요가 다른 이들의 생명을 빼앗는 폭력일 수 있음을 고백하고, 단순 소박한 밥상을 차려 남김없이 먹습니다. 이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신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기본실천들로 생명밥상운동이 어떠한 유혹에도 휘둘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실천하게 해준 힘이기도 합니다.
함께했던 실천사항들은 생명밥상 빈 그릇 서약실천, 도시농촌교회 간 생명의 쌀 나눔, 지구를 위한 식사(고기 없는 주일, 가까운 먹을거리). 주말농장 및 상자텃밭을 이용한 도시농업, 생명의 간식 먹기, 생명밥상 교육교재 발간 및 교육 등입니다. 이 일들의 기초가 되었던 건 1998년부터 시작된 녹색교회운동과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영성교육이었습니다. 특히 2000년 개신교 여성수도공동체인 동광원 땅에서 주말농장을 운영했던 것은 잃어버렸던 흙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 몸과 마음이 생태적 삶을 향하게 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밥상은 죽음의 밥상입니다. 아니 생명밥상운동이 시작될 때보다 더 심각해졌습니다. 수입농산물과 유전자조작(GMO)식품, 그리고 방사성물질이 밥상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두려움은 더 커집니다. 밥이 곧 ‘생명’일진대 전통 유대교처럼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아야 할 것인지 더욱 더 성찰해야 할 듯합니다. 기후붕괴는 물론 종의 멸종까지 염려하게 된 시대, 밥상의 변화를 통해 시대를 생태적으로 전환시켜 낼 책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밥상 운동을 하면서, 아쉬움이 남는 일이 있습니다. 생명살림을 농업살림으로 직접적으로 연결하지 못한 점입니다. 수십 년 이상 올곧게 농사를 지어온 기독인농부의 마음이 담긴 쌀을 도시 생활자들에게 전하는 ‘생명의 쌀 나눔’운동을 전개했었지만 도시교회의 벽이 높음을 절감한 바 있습니다. 가격과 신뢰의 벽은 도시교회 성도들이 건강한 삶을 위해 뜻 깊은 나눔을 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바라기는 그간의 생명밥상운동이 밑거름이 되어 도시교회가 앞장서는 밥상살림이 확산되어 생명살림은 물론 농업살림으로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도시교회가 앞장서 생명농업을 짓고 있는 농촌교회와 자매결연을 맺어 직접 교류한다면 믿음 안에서 서로의 생활과 생명을 책임져주는 건강한 공동체가 이 땅에 뿌리내릴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관심을 둘 것은 값싼 패스트푸드나 편의점의 가공식품으로 한 끼를 때울 수밖에 없는 이들입니다. 교회가 주변을 둘러보아 그런 사람들이 없는지 살피고 돌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의 한 마을의 예는 우리에게 좋은 길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흑인과 빈민층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서 행하고 있는 일인데, 옥상이나 유휴지를 활용해 농산물을 생산하고 거기서 생산된 신선한 채소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일, 도시농사에 열심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주변을 살펴 생명의 밥을 나누는 일을 하되, 특히 도시농사에서 나눔을 통한 희망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선은 교회 안에 ‘도시농사위원회’를 두고 잃어버린 창조 때의 ‘흙’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건강한 삶을 살아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혹 공간이 없고 마땅히 흙을 구하기 힘들다면 상자텃밭으로라도 출발할 일입니다. 작은 상자 안에도 생명의 비밀이 있고 그것을 살리는 가운데 삶의 기쁨도 가득해질 테니까 말입니다.
벼랑 끝에 선 지구에 희망을 주는 생명밥상 차림에도 열심을 내야 할 듯합니다. 채식이 갖는 의미가 큰데, 단순히 먹는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몸과 지구 그리고 삶 전체를 깊이 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문명이 극단적으로 발산하는 방향으로 치달아와 지금의 기후붕괴가 초래됐다고 볼 때, 채식은 덜 먹고 덜 소유하고 덜 집착함으로 근본가치를 지향하는 영성운동을 도울 것입니다. 교회가 ‘고기 없는 주일’ 등의 채식캠페인으로, 교회밥상은 물론 교우가정의 밥상에 채식의 비율을 높여가는 일이 계속되기를 희망합니다. 날마다 흙에서 난 것, 특별히 건강한 흙에서 난 것을 먹는다면, 사는 동안 생명 됨을 다하고 평화의 씨앗이 되어 하늘의 열매를 맺고 행복하게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식생활 교육훈련이 직접적으로 실시되기를 희망합니다. 교육은 생명밥상에 걸맞은 계절별 요리를 기본으로 하되, 식품첨가물, 환경호르몬, GMO식품 등 전통적인 식품안전에 대한 것에서부터 설탕과 소금의 섭취, 육식문화의 문제, 그리고 미각교육은 물론 농(農)의 가치와 생태적 삶, 생명농업과 그 일을 이루어가는 농촌에 대한 관심과 교류까지 담아내었으면 합니다. 텃밭 가꾸기와 함께,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은 ‘밥을 통한 생활영성수련’입니다. 일상에서의 생명에 대한 성찰은 물론 밥, 물, 공기를 제공해주는 지구에 대해 깊이 명상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생명밥상! 누구든 일상 속에서 반드시 차리고 나눠야 할 밥상입니다. ‘거룩한 성전’인 자신은 물론 자연과 이웃의 몸과 마음, 영혼을 위해서 말입니다.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의 미래가 부디 악화일로에서 벗어나 풍성해지는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실천한다면 우리의 밥상이 살아나고, 생명의 농업이 살아나고, 지구 생명도 반드시 되살아나게 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