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로 살펴보는 지역화폐 (1)
지역화폐는 단어 그대로 지역에서 사용이 가능한 돈이다. 특정 지역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범위가 포함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지정된 상가에서만 이용할 수 있는 상품권이나 쿠폰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수월하다. 다만 기존 상품권이나 포인트 등과 차이점은 프랜차이즈보다 지역경제와 관계망을 한층 더 고민하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한 지역에 백화점, 대형마트 등이 있어 소비가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지역경제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지역으로 자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 기업으로 고스란히 자본이 이동되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지역화폐는 그보다 소상공인, 동네상점, 동네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소비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물론 지역화폐 현황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탄력성, 회복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로 지역화폐 운동은 주목할 만하다. 앞으로 현물기반형, 자원봉사형, 지역금융형, 쿠폰형, 네트워크형 등으로 나누어 지역화폐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자원봉사형 지역화폐 (1) – 일본 후쿠오카 이와라 키톤 (ぎとん券)
키톤(ぎとん券)은 일본 후쿠오카 이토시마에서 공동 주말농장을 이용하는 회원들의 참여 독려를 위해 발행되는 지역화폐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경우도 농촌 인구 고령화로 인해 농사지을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처음 발령 받은 곳이 이곳, 농촌마을이었어요. 이후 다른 곳으로 발령 나서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부임했는데 황폐화된 걸 보고 너무 안타까웠어요.”
지역화폐를 시작한 가와구치 씨는 30년 전 이토시마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첫 발령지였기에 더욱 애착이 간 지역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방문한 마을은 더 이상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논과 밭이 버려지고 있었다. 그는 이곳을 회복시키기 위해 지역주민이자 공무원인 이노우에 씨의 도움을 받아 12년 전부터 쌀농사를 짓는 주말농장을 시작했다.
매년 3월마다 농사지을 100~150가구를 모집한다. 대부분 후쿠오카 시내에 거주하며 주말 농장을 체험하고 싶어 하는 가족들이 대부분이다. 1년 단위 회원제(참가비 5000엔)로 무농약 쌀농사를 함께 짓는다. 보통 주말농장은 구획이 정해져 있는데 이곳은 쌀농사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구획을 나누지 않고 함께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후쿠시마 이후 먹거리에 관심이 높아져 대기자가 있을 만큼 인기 있는 주말농장이다.
상근 인건비를 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농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과 시간 이용이 수월한 퇴직자들이 스텝이 되어 조직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1년에 약 8톤가량의 쌀이 생산되며 회원만 구입 가능하다. 쌀 가격은 무농약쌀 시중가격에 맞춘다.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높이고 주말농장 방문 빈도를 높이기 위해서 9년 전부터 지역화폐를 발행했다. 2013년에는 1500매를 발행했다.
“주말농장이 처음에는 자주 오다가 시간이 지나면 방문자가 줄어들어요. 나중에는 소수의 사람만이 남게 되죠.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지역화폐를 적용해봤어요. 아주 단순해요. 회원들이 농장을 방문하면 1회당 500엔 가치의 지역화폐를 지급해요. 또 아주 열성적으로 농사에 참여하는 분들이 열세 분가량 있어요. 이 분들에게는 두 배로 지역화폐를 지급해요.”
지역화폐로는 주말농장에서 생산되는 쌀은 물론이며 이토시마 곳곳에 있는 카페, 레스토랑, 우유 상점 등에서 이용할 수 있다. 아직 이용 가능한 수는 많지 않지만 회원들은 만족도는 높다고 한다. 회원들이 사용한 지역화폐는 유효기간이 끝나면 엔화로 교환한 뒤 정산을 마무리한다.
“이제서야 동네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어요. 4년 전부터 동네 신사 축제에 초대 받았거든요. 그동안 갈등도 많았어요. 대부분 도시에서 오니까 차를 갖고 오잖아요. 길에 차가 죽 늘어서 있는 걸 보고 어르신들이 화를 내기도 했어요. 또 제초제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짓는 걸로도 갈등이 있었죠. 처음에는 모두 어렵잖아요. 하지만 휑했던 동네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지역사람들은 동네가 살아나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또 몇 년 해본 뒤 농사도 곧잘 되니까 여기저기서 땅을 빌려주려고 해요.”
그는 후쿠오카의 한 교수에게 지역화폐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고 한다. 그 이후 관심이 생겨 유럽에서 시도되는 지역화폐 사례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찾아서 보고, 이런저런 정보를 혼자서 찾아 다녔다고 한다. 10년 동안 지역화폐에 대해서 조금씩 찾아보면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가와구치 씨가 개인적인 시간과 품을 팔아 쌀농사를 짓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단지 마을을 지키고 싶다고 한다. 1년만 농사를 짓지 않으면 땅은 금방 무너진다. 그래서 그는 땅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학생, 퇴직자, 공무원, 마을사람들 모두 땅에 귀를 기울이고 땅을 매개로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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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 김이경 (모심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