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새로운 길을 찾아서 ③>
공개하고 공유하면 새로운 것이 열린다
– 메이커 운동의 가치를 알리는 이지선 숙명여대 교수
최근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은 인공지능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었다. 발 빠른 대학은 이미 신입생들에게 코딩을 필수로 가르치고 있고, 2017년부터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소프트웨어 교육이 들어갈 예정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통방식으로 나무를 깎아 수저를 만드는 워크숍이 인기를 끄는 등 인간이 할 수 있는 기술과 속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처럼 서로 달리 보이는 첨단 기술의 발전과 인간적인 기술 사이에 공통적인 하나의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기술을 공개하고 공유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것이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이다.
2005년 미국의 데일 도허티Dale Dougherty가 <메이크>라는 잡지를 통해 대중화시킨 ‘메이커’라는 개념은 DIY(Do It Yourself)와 비슷하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 공유하고 협력한다는 의미가 더 강조된다. 숙명여대 시각‧영상 디자인학과 교수 이지선 님은 2007년 미국에서 학업 중 메이커들의 축제(메이커 페어Maker Faire)에 처음 참여한 이후로 만들고 나누는 메이커운동을 국내에 소개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메이커 운동의 핵심은 기술 보다는 ‘나눔’, ‘공유’, ‘커뮤니티’, ‘협업’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이지선 님에게 메이커 운동에 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 숙명여대 시각‧영상 디자인학과 교수 이지선 (사진_이지선)
메이커 운동, 오해와 본질
– “메이커 운동의 핵심은 기술이 아닌 공유와 협업”
모심: 사실 한국에서는 아직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은 생소한 개념이에요. 무엇인가 만든다는 뜻으로 DIY, 핸드메이드와 같은 용어도 있는데요, 이 두 가지 개념과 다른 건가요? 검색을 해보니 메이커 운동과 DIY의 차이는 IT분야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이지선: 메이커 운동은 소프트웨어 중심이 아니에요. 한국에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미국에서는 인구의 1/3인 1억 명을 메이커(만드는 사람들)로 산정해요. 흔히 자기 집 차고에서 수리하거나 뭔가 만드는 사람들을 모두 메이커라고 생각하면 돼요. 집에서 뜨개질 하고 요리하는 사람도 모두 메이커죠.
올해 제 딸과 함께 미국에서 열리는 메이커 페어(Maker Faire, 축제) 10주년에 참여했어요. 58개국에서 1,800명가량의 메이커가 왔고, 한국에서는 저와 제 딸, 성균관대 학생 한 팀이 참여했어요. 학생들이 “이런 곳인지 몰랐어요.”라고 하더라구요. 엄청 멋진 것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바느질하는 할머니, 수공예 하는 할아버지 등등 도떼기시장 같았거든요. (웃음)
@ 2016년 미국 메이커페어 10주년 행사에 딸과 함께 직접 참여한 이지선님 (左)과 메이커 운동을 이끌고 있는 데일 도허티(右)
(사진_이지선 님)
모심: 메이커 페어는 한국의 DIY나 핸드메이드 행사와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이지선: 서양과 동양의 차이인지 메이커 운동의 차이인지 모르겠는데요, 초등학생 제 딸도 전시자로, 참여자로 대접을 해줘요. ‘전국 미국 바느질협회’에도 참여했는데요, 대부분이 할머니들이에요. 털실, 뜨개질, 울 등등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드는 과정을 가르쳐줘요. 하루 종일 앉아서 뜨개질 하는 아이도 있어요. 한국 같은 경우에는 잠깐 돌면서 부스를 보면 되는데 여긴 3일 동안 돌아다녀도 다 못 봐요. 제 딸은 뜨개질 하는 할머니와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됐는데, 이런 게 가능한 곳이에요. 주최자가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게 차이점인 것 같아요. 한살림도 조합원들이 할 수 있는 무언가로 행사를 만들면 더 재밌을 거예요.
모심: ‘만드는 사람’은 모두 메이커라고 보는 건가요? 한국에서는 IT분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인데요.
이지선: 제가 늘 이야기하는 게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의『메이커스(Makers)』개념을 버려라”에요. 크리스 앤더슨은 디지털과 경제 분야를 더 강조해요. 하지만 메이커는 ‘만드는 사람 모두’를 지칭하는 거예요. 디지털 시대에 메이커스가 붐업이 된 건 혼자 무언가를 만들던 것과 달리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방법을 공유하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죠. 지금은 혼자 사는 사람도 많고, 남는 시간도 많아졌어요. 이런 시간을 활용해서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삶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 늘었어요. 메이커 운동은 혼자 하는 게 아닌 ‘공유와 협업’하는 활동이에요. 나의 방법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데 운동의 의의가 있어요.
모심: 메이커 운동을 오해하고 있었네요.
이지선: 4차 산업의 새로운 비즈니스 형태라고 이해하고 계신 분들이 있는데, 사실 그건 아니에요. 작은집 만들기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적정기술, 공예, 이 모든 것이 메이커예요.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메이커 페어에 가면 패션, 공예가 꽤 많아요. 메이커 페어를 이끌고 있는 데일 도허티(Dale Dougherty)*도 공예 분야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어요. 오히려 소프트웨어를 안 쓰는 곳도 많아요.
디지털 부분으로 한정해서 본다면 풀뿌리 기술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있어요. 기술에 대해 유토피아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개념이죠. 디지털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각자가 가진 기술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을까, 어떻게 협업해서 이상적인 삶을 꾸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운동인 거죠. 그래서 메이커 운동에서 가장 강조하는 건 기술이 아닌 커뮤니티에요.
(*데일 도허티는 미국 IT출판사 오라일리 공동창업자이며 웹 2.0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만들었다. 2005년, 잡지 <Make>를 만들고 만드는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축제인 ‘메이커 페어'를 시작했다.)
모심: 그렇다면 메이커 운동은 구경하는 게 아닌 스스로 참여해서 뭔가를 하는 거잖아요. 자작문화, 스스로의 시대, 자립 등 많은 용어가 있는데, 이런 것과의 차이는 또 무엇인가요?
이지선: 스스로 하되 협동해서 하는 거죠. 협력과 공유. 이걸 놓치면 안돼요. 스스로 하기 위해 혼자 하는 것이 아닌 남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하는 거죠. 이게 과거와 달라진 개념인 것 같아요. 메이커 운동에는 자기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있는 것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있어요. 서로 존중하고 배우고,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메이커 운동이 붐업이 된 거구요. 여기에 메이커 운동의 핵심이 있어요. 뭔가 끊임없이 배우고 만든다는 거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로 만든다는 것이 중요해요.
만들기, 공유하기, 주기 … 메이커 운동 정신에 ‘팔기’는 없다
모심: 커뮤니티, 공유를 중시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정보 공유나 협업에 대해서는 아직은 조금 막혀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그 이유는 뭘까요?
이지선: 맞아요, 공개적으로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죠. 그 이유는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미국은 글쓰기 교육이 체계적으로 되어 있고 글쓰기 문화가 있어요. 모든 과목에는 기록하고 정리하는 교육 방법이 들어가 있어요. 반면에 한국은 평가 위주의 교육이라 기록과 공유하는 문화가 잘 안 되어 있죠.
모심: 대학교에서도 신입생들에게 코딩 교육을 필수로 가르치는 곳이 늘고 있고, 2017년부터 소프트웨어 교육이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정식으로 들어간다고 해요. 이를 공유, 협업, 커뮤니티 관점에서 보면 어떤가요?
이지선: 일정 부분은 들어가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코딩 교육에 맞춰져 있죠. 컴퓨터 교육에 너무 집중이 되어 있긴 해요. 가정, 미술, 체육, 음악, 정보과학 등 많은 교과를 융합해서 교과과정을 개편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중요한 건 본인이 만든 것과 그 방법을 얼마나 공유하고 있고, 다른 사람과 협업을 어느 정도 하는가 예요.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과 같아요.
@ 마크 해치의 ‘메이커 운동 선언’을 이미지화 한 그림
(이미지_www.imagethink.net)
모심: 교육도 문제지만 모든 것을 상업화로 생각하는 경향, 솔직히 말하면 ‘돈’만을 염두에 둬서 공유가 잘 안 되는 건 아닐까요?
이지선: 마크 해치(Mark Hatch)가 쓴 『메이커 운동 선언(The Maker Movement Manifesto)』이라는 책이 있어요. 마크 해치가 강조하는 건 첫째가 만들기이고 두 번째는 공유예요. 그리고 세 번째는 ‘주기’예요. 다른 사람과 공유함으로써 이타적 행위와 실천하는 것이 강조돼요. 여기에는 만든 사람의 영혼이 담긴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줘서 그 영혼이 확산되도록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어요. 하지만 메이커 운동 선언에 ‘팔기’는 없어요.
모심: ‘영혼이 퍼지게 한다’라는 표현이 독특하네요. 그런데 보통은 팔지 않을 걸 왜 만들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지선: ‘파는 것’ 좀 빼면 좋겠어요. 메이커 운동에는 만들기, 공유하기, 주기, 배우기는 있지만 ‘팔기’는 없거든요. 특허, 라이선스 개념도 미국에서는 많이 바뀌고 있어요. 오픈 소프트웨어에는 ‘자유 라이센스’ 같은 것이 있어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Creative Commons license 같은 거죠. 메이커 운동에서 많이 회자 되는 분야가 아두이노**Arduino인데, 오픈소스이고 누구나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요. 민간 드론 시장을 이끌고 있는 3D로보틱스 3D Robitic라는 드론 회사가 히트 친 건 오픈소스를 알려주기 때문이에요. 다른 회사도 있지만 사람들은 고가의 장비는 이 회사를 이용해요. 왜냐하면 드론이 고장나면 스스로 고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중요한 정보를 공개해도 오픈소스의 세계를 거치면 더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어요.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Creative Commons license(CCL)은 창작물에 대해 일정한 조건 하에 다른 사람의 자유로운 이용을 허락하는 내용의 자유이용 라이선스이다. www.cckorea.org
** 아두이노Arduino는 기기를 제어하기 위한 제어용 기판으로 개인이 회로를 사용해 로봇을 만들거나 휴대폰과 사물의 원격조정을 만들 수 있다.)
모심: 한편에서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배운 지식으로 폭탄 제조나 유전자조작 식물을 키우기도 하던데요, 윤리성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요.
이지선: 모든 일에는 음양이 있어요. 그래도 저는 긍정의 힘이 더 크다고 믿어요. 문제를 자생적으로 정화할 수 있도록 문제제기 하는 사람도 나타날 거구요. 예전에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없었는데, 요즘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요. 이걸 인정하지 않는 플랫폼이나 회사라면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는 거예요. 대안의 선택이 너무 많거든요. 예를 들어 한살림이 제대로 못해서 조합원이 다른 시장을 선택할 수 있는 거고,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패러다임의 변화 … “공개할수록, 참여할수록 더 강해진다.”
모심: 말씀대로 이제는 많은 선택지가 생겼죠. 변화의 속도도 너무 빠르고요. 이 생태계에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이지선: 폐쇄적으로 하나만 보면 안 돼요. 가장 중요한 건 ‘내 안에서 모든 걸 해야 돼’라는 사고방식을 버리는 거예요. 이제는 무제한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지금 하나의 커뮤니티만 보거나 하나의 관점만 보는 것이 비생산적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자정능력도 굉장히 떨어졌던 거예요.
모심: 한 명의 전문가보다 다중·집단 지성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의미인가요?
이지선: 그렇게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요. 지금은 지킬수록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에요. 공개하면 할수록,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강해지죠. 사실 한국에서는 공유와 나눔이 잘 안 돼요. ‘팔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강해요. 하지만 최근에 한국에도 ‘난 이걸로 돈 벌 거 아닌데’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라즈베리 파이*Raspberry Pi 작업을 공유하는 산딸기마을www.rasplay.org 이에요.
(*라즈베리 파이Raspberry Pi는 영국 라즈베리 파이 재단에서 학교와 개발도상국의 기초 컴퓨터 과학 교육을 증진시키기 위해 개발한 신용카드 크기의 싱글 보드 컴퓨터이다. 아두이노와 다르게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만 연결하면 컴퓨터로 사용할 수 있다. – 네이버IT사전)
@ 오픈소스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리눅스 재단의 홈페이지
(이미지_www.linuxfoundation.org)
모심: 그런데 자유롭게 공유하던 기술이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 기업에 의해 독점되지는 않을까요? 공유 정신을 확대하려고 했지만 역행으로 독점의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요.
이지선: 전근대적인 사고인 것 같아요. 리눅스 재단(Linux Foundation)이 오픈소스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영향력도 엄청 나요. 그런데 이 재단이 이윤 추구나 사적인 부분을 추구했다면 이렇게 성장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이외에도 모질라 재단(Mozilla Foundation)이 있는데, 여기서 파이어폭스(Firefox)가 나왔어요. 모질라 재단에서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코딩도 가르쳐요. 이런 곳은 독점적으로 어딘가에 예속되는 생태계가 아니에요. 만약에 리눅스 재단을 이끌고 있는 리누스 토르발즈(Linus Benedict Torvalds)가 공익성을 버리고 삼성과 같은 대기업과 이윤추구를 하는 방향으로 바꾼다면 더 이상 팔로워들을 가질 수 없게 되죠. 고귀한 철학이 아닌 사적 이윤추구 일수록 이해관계가 상이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이런 흐름에서 생활협동조합 조합원도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바뀌어야 돼요. 계속 회원일 수는 없어요. 선택지가 너무 많아졌거든요.
유용하지 않은 게 더 가치 있는 시대
모심: 패러다임,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는 말씀을 계속 하셨는데요, 현재 시대 변화에 대해서 하신 말씀 중에 꼭 유용하지 않아도 좋다”라고 이야기한 강연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유용함’에 대한 사고방식이 어떻게 변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지선: 유용하지 않은 게 더 가치 있는 시대가 됐어요. 지금은 저성장 시대잖아요. 이제는 잘 살고 못 살고는 큰 의미가 없어요. 왜냐하면 변할 수 없으니까요. 예전에는 ‘내’가 더 노력하고 공부하면 분명히 뭐라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어요. 과도한 경쟁 속에서 어떤 것이라도 삶에 더 유용한 게 인기였죠.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죠. 그래서 다른 즐거움을 찾는 세대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일단 스스로 재밌어야 해요. 일본이 극단적으로 오타쿠 문화가 강한 것도 저성장이라는 배경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오타쿠 문화 같은 게 나쁜 건 아니라고 봐요.
모심: 알파고 같이 최첨단 인공지능 시대가 열리는 것과 동시에 숟가락 만들기 워크샵처럼 작은 거라도 직접 만들어 보려는 움직임이 함께 있어요. 양 극단의 시대를 어떻게 보시나요?
이지선: 아날로그에 대한 감성, 메이커 감성에 대한 욕구가 더 많이 생기고 있죠. 종이책 출판은 줄고 있지만 감각과 관련된 워크숍, 컬러링 북이 증가하는 걸 볼 수 있어요. 다윈이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다고 생각해요. 디지털 중심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욕구, 본능이 무의식적으로 많이 작용할 거라고 봐요. 이제는 공장에서 찍어낸 것보다는 자기 고유의 것이 더 의미를 가지는 시대가 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많으면 달라진다』라는 책에 ‘인지 잉여’ 라는 단어가 나와요. 이미 생필품, 제조업 분야는 생산성 포화 상태에요. 사람들은 ‘이제 어디서 생산성을 찾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기본적인 건 이미 채워졌고,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는 거죠.
모심: 하지만 현실에서는 학교, 직장에서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라는 요구가 있잖아요. 재미를 추구하면서 자신만의 것을 만들면 가장 좋겠지만 과연 현실에서 적용될 수 있을까 고민이 들어요.
이지선: 저는 성과주의를 굉장히 강조하는 삼성 그룹에서 일을 했어요. 혁신 컨설팅 같은 일도 맡아서 했는데, 이제는 생산성 중심의 패러다임은 아니에요. 패러다임이 바뀐 거죠. 예를 들어 한국에서 유기농산물을 많이 생산하고 있었는데, 중국이 갑자가 엄청 크게 유기농 농장을 만들어서 한국에 들어올 수도 있어요. 기존에 있던 시장이 갑자기 없어질 수도 있는 거죠. 생협도 도전을 많이 받을 거예요. 한국에서 생산하지 않아도 유기농이라고 판매하는 가게가 더 많이 생기고 있구요.
모심: 네, 다양한 욕구를 가진 조합원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지선: 그 다양성을 최대한 인정하는 게 중요한 시대가 된 거예요. 이 시점에서 단체에서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질문은 가치를 고민하는 거예요. 지금은 가치를 파는 시대가 되었거든요. 조합원들의 다른 의견과 다양성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그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모심: 메이커 운동에서 한살림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지선: 예를 들어 멜론 농사를 짓는데 날씨 때문에 고민하고 있으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모두 공개하는 거예요. 문제해결이 체계적으로 잡힐 때까지 배우고,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을 모두 공개하고 공유하는 거죠. 메이커 운동 별 거 없어요. (웃음) 그리고 아이디어를 던져보면 … 조합원들이 오미자, 복분자, 두부를 직접 만들면서 새로운 맛을 개발해 조합원이나 그룹 이름으로 내는 것들도 할 수 있죠. 한살림에서 남는 재료의 재활용이나 유효기한이 지난 것들로 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보는 거죠. 가족, 팀 단위 아이디어를 모두 모아서 같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임을 결성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전세계인의 지혜를 모아 지구온난화, 식량, 질병 문제를 해결하는 IDEO 플랫폼
(이미지_challenges.openideo.com/challenge)
모심: 솔직히 IT, 소프트웨어 쪽으로 이야기하실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네요. (웃음) 또 다른 아이디어나 참고할 수 있는 건 없을까요?
이지선: 아이디오 IDEO(challenges.openideo.com/challenge)라는 회사를 참고해도 좋을 듯해요. 디자인 사고방법론(design thinking)을 이끌고 있는 회사에요. 이 곳에서는 애볼라, 지카, 사스와 같은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전세계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모으는 홈페이지를 운영해요. 문제점, 아이디어, 리서치, 해결 과정을 모두 공개하죠. 예를 들어 한살림에서 음식물이 남는다라는 문제가 있다면 이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사례를 전세계 사람들이 리서치 하는 거죠. 아이디어도 내구요. 그러면 이걸 보고 사람들이 참여를 하고, 그 결과물도 모두 공유되는데, 참고할 만해요.
문제는 코딩이 아닌, 생태계를 이해하는 것
모심: IT 기술의 발전과 응용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고 있네요. 그렇다고 기술에만 치우쳐진 게 아닌 소통과 개방을 중요하게 여기는 점도 인상적이네요.
이지선: 네, 시장에서 많은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데, 이걸 우리가 바꿀 수 없어요.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게 디지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일이에요. 그런데 이 일을 코딩으로 다 해결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문제는 코딩이 아니에요. 중요한 건 이 세계의 생태계를 이해하는 거예요.
모심: 좀 더 쉽게 변화하고 있는 생태계 이야기를 해주세요.
이지선: 예를 들면 언론사가 직면한 문제가 있어요. 얼마 전에 페이스북이 알고리즘을 바꿨어요. 언론사가 보내는 뉴스는 아래로 내려가는데, 친구들이 추천하거나 공유한 기사는 위로 올라가요. 요즘은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정보가 정말 진실한가?’라는 의문을 가져요. 그래서 언론사가 올리는 것보다 소속 기자가 개인적으로 기사를 올리는 게 더 노출이 잘 되는 거예요. 이 시스템이면 개인 기자가 얼마나 기사를 확산시킬 수 있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어요.
모심: 지금 일자리 부분은 여러 가지 전망이 있잖아요. 알파고,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원래 있던 일자리나 산업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많고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이지선: 예를 들어 제가 지금 있는 학과에서도 변화가 커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브로슈어, 책, 상품 패키지 디자인이 최고의 직업이었거든요. 그런데 작년부터 기업이나 단체에서 종이가 아닌 SNS 광고물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많이 찾아요. 지금은 단순하게 소셜미디어 광고 이미지 만드는 거지만 앞으로는 인터랙션(상호작용)으로 바뀔 거예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종이책만 고집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모심: 하지만 책과 같은 매체를 직접 만져보고 느끼는 건 중요하지 않나요? 인간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감각을 이용해서 경험하고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지선: 시장이 애매해지고 있어요. 책을 직접 만지고 보는 것이 중요한데, 종이책 시장은 계속 줄어들고 있죠. 그런데 이 와중에 소설 분야 책을 줄었는데 논픽션은 늘고 있고, 논픽션 동화책 수요는 증가하고 있어요. 논픽션 관련해서 일러스트를 그려야 하는데 사람이 없는 거예요. 이 분야를 하려면 자료 리서치, 분석, 기획, 통계도 알아야 하거든요. 일러스트레이터는 그림만 그리지 이 분야는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여러 가지를 다 할 줄 알아야 하는 시대가 된 거예요.
모심: 혹시 선생님께서는 딸에게 코딩이나 소프트웨어 교육을 따로 하시나요?
이지선: 저는 컴퓨터 교육은 별로 안 시켜요. 대신 운동을 많이 시키죠. 텔레비전도 일주일에 1번밖에 안 보여줘요. 그리고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 게 제 원칙이에요. 저녁은 온전히 아이와 함께 보내요. 그리고 바느질이든 요리든 목공예든 로봇이든 무엇이든지 다양하게 많이 직접 손으로 만들게 해요. 제 연구의 주된 분야가 메이커 교육(Maker Education)이에요. 오픈소스를 활용하여 스스로 만들면서 배워나가고 이를 반복하다보면 본인의 적성도 찾고 창의성도 높아지고 전문가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모심: 코딩 교육을 따로 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네요. (웃음)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인터뷰 일자(장소): 2016년 7월 11일 (서울 숙명여대 이지선 교수 연구실)
* 면담자: 김이경(모심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원), 하만조(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 구술자: 이지선(숙명여대 시각·영상디자인학과 교수)
* 정리: 김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