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새로운 길을 찾아서 ④] 소비자만 안전한 사회는 없다.

<살림의 새로운 길을 찾아서 >

소비자만 안전한 사회는 없다

일터와 삶터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김신범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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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네이버 트렌드 조사 결과를 보면 2007년부터 최근까지 ‘안전’을 검색한 비중이 크게 높아져 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2014년 초부터는 ‘안전’이라는 단어가 2007년 대비 최소 1.6배에서 최대 5.9배까지 많이 언급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은 삶의 질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수준이 높아진 것, 그리고 안전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서 사고발생 이후 제대로 된 처방과 대응책이 마련되지 못하고 반복 된다는 점도 안전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일어난 경주 지진에 이르기까지 잦은 안전사고를 경험하면서 많은 국민들은 국가가 국민을 지켜준다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스스로 재난상황을 극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체감하고 있다. 그러나 나 홀로 안전하기란 불가능하다. 함께 안전을 만들어 가는 길은 무엇일까? 노동, 환경, 건강이라는 세 가지 화두를 놓고서 17년째 안전을 고민해온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화학물질센터 김신범 실장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 실마리를 찾아본다.

 

 

 

네이버 트랜드 download.gif검색 결과 (2007년 1월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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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업장에 뭐가 위험한 건지는 알고 일하자

 

모심: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주로 무엇을 연구하는 곳인가요?

김신범: 1988년도에 신문을 통해서 원진레이온의 직업병 문제가 알려졌어요. 그 다음부터 10여 년간 직업병 환자들이 싸움을 했죠. 처음에는 직업병 인정 싸움, 두 번째로는 대책 없는 공장 폐업 반대 싸움. 그리고 세 번째로 산재전문병원 설립 싸움. 그 마지막 싸움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게 녹색병원이고 우리 연구소죠.
그래서 우리 연구소는 처음부터 직업병에 무게를 두고 있었고 특히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작업환경 내에 적어도 뭐가 위험한 건지는 알고 일할 수 있는 권리들을 되찾는 일이 중심에 있어요. 연구소에 ‘일과 건강’이라고, 노동조합의 안전보건 활동 전략을 개발하고 교육을 하는 영역에서 주로 그런 일을 맡고 있어요. 그리고 저처럼 화학물질을 다루는 사람들이 있는 화학물질센터가 있고 여기 분석실에서는 환경호르몬이나 유해물질이 얼마나 들어있나 이런 걸 분석도 하고 있고요. 그 다음에 근골격계 질환을 다루는 센터가 따로 있고, 직업환경 의학을 하는 의사들 그룹이 따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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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김신범 실장

모심: 연구소 이름이 인상적인데요 노동, 환경, 건강 세 가지는 어떻게 연결이 되나요?

김신범: 노동, 환경, 건강 이 세 가지는 우리 연구소가 출발할 때부터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게 각각 독립적인 이념인데 직업병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모든 문제의 뿌리니까요. 그래서 그 세 가지를 다 해보자고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결국 그렇게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직업성 암을 중심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근데 공장 안에서 발암물질 쓰는 걸 막으려다 보니까 공장에서 나온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그걸 막는 제일 큰 동력이 되는 걸 느꼈어요. 노사관계에서 바꾸지 못한 것을 소비자들이 바꿀 때가 있구나. 이렇게 다 연결되어 있구나 라는 걸 깨닫고 있죠.

모심: 노동, 환경, 건강은 모든 문제의 뿌리라고 하셨는데 조금 더 설명을 해주세요.

김신범: 우리가 화학물질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지는 건 노동에 대한 관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에요. 요즘 화장실 가면 소변 냄새 잡는 방향제가 굉장히 많이 쓰이고 있죠. 그건 건물 디자인 때문에 환기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청소인력을 줄이거나 구조조정 하는 것들도 중요하게 작용을 하죠. 사람을 비용으로 보고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사람 손이 가야될 것들을 화학물질이나 다른 것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해지게 되죠. 사실 노동자들을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환경문제나 건강문제가 덜 발생해요.
거꾸로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을 지키려고 한다면 소비자도 보호할 수 있어요. 이를테면 예전에 석면 베이비파우더 파동 같은 거 있었죠. 베이비파우더를 만드는 공장의 노동자들은 괜찮았을까요? 어쩌면 공장의 노동자들이 석면에 노출되면서도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까지 문제가 이어진 것일지 몰라요. 그래서 환경과 건강과 노동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영역들이고 이 영역의 어디 한 가지만 독자적으로 망가지진 않는 것 같아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노동이라면 이런 방식에 자본이 개입해서 이런 것들을 변형시켜가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노동이 아닌 형태를 만들고 그러면서 환경과 건강 문제들도 발생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 요새 더 많이 하게 되죠.

위험을 받아들이는 건 불편하지만…

모심: 조금 추상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런 문제가 생기는 어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면 그게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김신범: 다른 사람을 도구로 쓰는 것,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 차별하는 것 뭐 이런 것들이 안전을 해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하는 것에 동의를 해요. 그래서 그걸 막기 위해 어떤 공공의 기준을 만들고 관련된 곳에 예산을 쓰고 하면서 사회를 유지될 수 있게 하죠. 우리 사회는 그런 정책과 제도가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나라에 없는 법은 없어요. 근데 작동이 안 돼요. 이게 진짜 문제인 거죠. 그래서 저는 헷갈리는 것도 있어요. 우리가 문제를 덜 겪은 건 아닌데 오히려 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반복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걸까. 또 정부나 기업이 함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은 왜 안 생기는 걸까.

모심: 안전 문제가 발생하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 국민들은 그 원인과 대책이 무엇인지 스스로 학습하는 과정도 여러 번 있었죠. 최근 옥시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랬고, 그러면서 일종의 집단적인 성숙도 일어났고요.

김신범: 다른 여러 이유도 있겠지만, 안전 쪽으로만 국한시켜서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위험을 받아들이는 걸 불편해하는 그런 심리적인 어떤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왜냐하면 위험을 받아들이게 되면 진짜 불편한 게 맞거든요. ‘위험하면 뭘 해야 되지?’ 라는 고민을 해야 돼요. 그게 싫은 거예요. 저도 그래요. 모두의 속성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나에게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설마’ 라는 마음이 있었던 거죠.

모심: 그러니까 ‘정부가 설마 아무 것도 안 하겠어?’ ‘유명한 기업인데 설마 이렇게까지 할까?’ 라는 생각을 한다는 말씀이시죠.

김신범: 그게 안전이나 위험을 바라보는데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요. ‘그래도 최소한은 하겠지’ ‘그렇게까지 위험한 건 아닐거야’ ‘어떻게 하겠지’ 이러면서 도망가고 싶은데 근데 이제 보니 아무 것도 안 해왔고 할 생각도 없는 게 확인될 때, 사람들이 함께 분노하는 거죠. 광우병 다음에 세월호, 이번에 옥시도 보면 검찰조사를 하고나서 보니까 그 결과도 조작하고 순 거짓말만 했잖아요. 설마 했던 심리적 저지선을 돌파 당한 거죠.
그런데 이런 경험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다 했더라고요. 어떤 제도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정비하는 것은 모두 이런 계기들을 통해서 하는 거예요. 그러니 이런 경험들을 잘 학습하는 것이 필요해요.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정부와 기업이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우리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감시하면 정부와 기업이 일을 한다는 생각까지 해야 해요. 내 역할을 인정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사회가 안전해지는 거죠. 공공성이 강화되는 것이구요.

모심: 그런 문제를 느끼더라도 행동으로 나서는 건 쉽지 않아 보이는데.

김신범: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얘기를 해야 되는데 사람들은 끝까지 우리가 어떻게 좀 안 할 수 있을까 라는 식의 생각을 하는 거예요. 저는 이건 쉽게 바뀌는 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우리 사회가 집약적으로 발전해오면서 경험하지 않고 답을 찾지 않았던 부분들이 있죠. 그러니까 ‘내가 나의 것을 내놓아야 공공성이 생겨’ 라는 경험을 우리 사회는 하고 있는 중이고 더 해야 된다고 저는 그렇게 봐요.

모심: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연구소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껴지네요. 관련된 문제를 사회적으로 발언하고 하는 곳은 조금 있는 것 같은데 과학적으로 실험하거나 분석하는 곳은 여기 말고 없는 것 같아요.

김신범: 직업병 문제는 원진레이온이라고 하는 사건이 알려지면서 본격화 됐으니까요. 그 이전에도 구로의원이라고 작게는 있었죠. 그런데 본격적으로 연구소를 만든 건 여기가 처음이에요. 그리고 이건 민간에서 설립하기가 힘들죠. 돈도 많이 들고요. 우리도 처음 만들 때 원진레이온 피해자들이 보상 대책 중에 하나로 이걸 요구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100억 정도의 기금이 조성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병원과 연구소를 만들었겠어요. 물론 그 뒤에 운영은 우리가 하고 있지만 초기 자금은 그 공장 터를 판 그 값에서 보상이 일부 나온 거죠. 그 피해자들이 훌륭했던 거예요. 개별 보상에 그치지 않았고.

모심: 직업병 보상으로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그 보상금이 생명과도 같은 것일텐데 정말 훌륭한 일을 하셨네요. 선생님은 연구소 창립부터 근무하셨는데, 그동안 우리 사회의 노동, 환경, 건강 문제가 전반적으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보시나요?

김신범: 그렇죠.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고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죠. 그러니까 사회가 큰 흐름에서 노동을 덜 존중하는 방향으로, 더 무시하는 방향으로, 더 돈만 따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그런 것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은 그만큼 커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가 상대하고 있는 문제들을 보면 문제의 깊이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 수준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를테면 2000년대 이전에는 정부도 퀵서비스 노동자들을 특수고용직노동자라고 불러서 이들에게 당연히 산재보험을 적용해야 된다는 관점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이 사람들을 완전히 자영업자로 보는 시각이 확고해졌죠. 그러니까 노동을 자본이 운영하는데 훨씬 유리한 형태로 활용하는 게 더 심해졌다는 그런 느낌이에요. 환경미화원들의 경우도 직영으로 하던 것을 위탁으로 바꾼 게 벌써 수십 년 된 일이에요. 서울시에서 일부는 개선했다고 하지만 이미 손을 못 댈 정도로 규모가 커져버린 상황이죠.
그러면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냐 하면, 한 30년 이상 환경미화원 하셨던 분들은 옛날에는 구청직원하고 형, 동생 하던 같은 직원이었는데 지금은 김 씨가 돼버렸고 저분은 뭐 높은 공무원 나리가 된 거죠. 관계들이 이렇게 달라졌죠. 이런 식으로 문제가 더 깊어졌고 더 심해지고 더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부와 제도가 풀지 못하는 공공성의 문제에 대해 시민들도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고 봐요.

모심: 시민단체가 시민사회를 대리해서 한동안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역할을 많이 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정치적 공격이나 단체 자체의 문제 등 여러 요인에 의해 도덕성과 신뢰도가 이전보다 약해진 측면도 있지 않나요.

김신범: 시민단체의 역량이 부족한 부분은 있을 수 있겠지만 시민들로부터 신뢰가 떨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여전히 정부보다 신뢰도가 훨씬 높죠.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내가 절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믿을 수 있는 건 지역의 시민단체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새로운 주제들이 발굴되고 또 새로운 운동이 만들어지는 거라고 봐요. 근데 시민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서 긴가민가하고 덜 긴박하게 느낀다면 그래서 내가 안하고 누가 좀 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도 그 영역은 활성화되지 않아요. 물론 시민들이나 그 대리자로 일하는 시민단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고 명확한 한계도 있어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는 시민들을 상대로 뭘 해주려고 하는 식으로 다가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ㅇㅇ 좀 해주세요’ 로는 안된다

모심: 말씀대로 자발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2014년에 ‘PVC(폴리염화비닐) 없는 세상’ 활동을 하셨는데요 그때 학부모들이 많이 참여하신 걸로 들었어요. 그 얘기도 좀 해주세요.

김신범: 전체 흐름에서 보면 그 전 얘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2008년도쯤에 왜 사업장에 발암물질들이 없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왜 우리나라는 발암물질을 발암물질로 인정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했어요. 사업장에 나가서 ‘이거는 발암물질이다’ 라고 얘기를 하면 회사에서 ‘우리나라 노동부가 인정하는 발암물질이냐’ ‘아닙니다’ ‘그럼 어디냐’ ‘세계보건기구에서…’ ‘그런 건 난 알바 없고, 너 선동질하러 온 거잖아’ 이렇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멱살도 잡히고 지하에 갇혀본 적도 있어요.
그래서 정부에다 발암물질 목록을 개정하라고 요구 했는데 안 만들더라구요. 그럼 우리가 하자 해서 2009년에 전국에서 24명이 모여서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라고 하는 조직을 만들고 2010년도에 국회에서 우리가 목록을 공표했어요. 정부가 만들지 않으니 우리가 만들었고 작업환경을 측정할 때 이 목록을 쓰십시오라고 했죠. 그랬더니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인정을 하더라고요. 그때 정부를 상대하는 방법을 배웠죠. ‘뭐 해주세요’가 아니라 ‘니네가 안 하니까 우리가 할께’라고.

모심: 그때 네트워크 만들고 목록 발표한 뒤로 정부도 인정하고 하면서 변화가 좀 있었겠네요?

김신범: 발암물질 표시도 확대되고 많은 문제들이 개선됐죠. 근데 거기서 멈추진 않았고요 그때 금속노조에서 정말 적극적으로 고민해서 조합비 1억 원을 내놨어요. 사업장에 들어와서 발암물질 조사하고 결과를 공개하자고 한 거죠. 조사해보니 전체 제품의 50%에 발암물질이나 생식독성물질이 들어있었어요. 어마어마한 거죠. 그때 해외에서 금지한 것들까지 들어와 있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유럽은 이미 금지나 제한조치가 강화됐고 우리나라는 법률이 약한데 제조업이 발달돼 있으니까 일종의 독성물질 재고처리 시장이 된 거죠.

모심: 그러면 그런 걸 수입하는 업체들을 불매하는 활동 같은 것도 하셨나요?

김신범: 불매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한 기업을 혼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산업 자체가 바뀌는 것도 중요하죠. 산업의 생산을 바꾸려면 불매 말고 다른 방법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금속가공유라는 제품에 대해 유해물질 협약을 마련했어요. 제조사와 금속노조와 시민단체가 2012년에 금속가공유에 유해화학물질 기준을 제정하고 안전한 제품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협약을 체결했죠. 그때 1년간 줄인 유해물질이 1,000톤이에요. 200리터짜리 드럼통 5000개. 작년엔가 우리 연구소에 환경부에서 찾아와서 스톡홀름 협약 때문에 잔류성 물질에 대한 추적을 하고 없앨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어떤 물질이 갑자기 한국에서 사라졌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그게 우리가 만든 협약에 있었던 물질이었죠. 어쨌든 그 가이드라인 만든 이후로 몇 군데 기업이나 금속노조 지부들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독성물질을 저감하겠다는 노사공동선언 같은걸 했어요. 지금도 현장에서 발암물질을 없애나가는 일들이 한창 추진되고 있는 중이죠.

모심: 기업들이 유해물질을 쓰는 이유는 경제적인 측면 때문이 아닌가요? 그렇게 해도 운영이 괜찮은 건가요?

김신범: 돈이 들죠. 그런데 어떤 기업으로 살고 싶으냐를 우리는 질문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집에 가서는 좋은 아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죠. 그런데 남의 자식들한테는 유해물질이 잔뜩 들어가 있는 거 팔면서 그렇게 살거냐고 묻는 거죠. 기업주도 인간이잖아요. 당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면 우리랑 이런 문제를 같이 의논해보자라고 얘길 하는 거예요. 그리고 비용이 투자되어도 기업 생존은 가능해요. 할 수 있는 거니까 하는 거죠. 내일 망하겠다 싶은데 하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유해물질이 없는 제품이라고 해서 항상 비싼 건 아니에요. 어린이집 같은데 가보면 벽지, 장판, 장난감으로 PVC나 환경호르몬이 포함된 제품을 쓰는 걸 봐요. 근데 그게 포함되지 않은 제품하고 가격이 별 차이가 없거든요. 아까 PVC 없애는 캠페인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게 바로 이렇게 시작된 거예요. 결국 누가 알아야 하냐. 학교 교장 선생님,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알아야 하고, 소비자들도 알아서 우리가 선택하자. 그런 취지로 운동을 시작했어요.

 

소비자만 안전한 사회는 없다

모심: 생산과 소비가 모두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이신데, 다른 인터뷰에서도 ‘생산과 소비는 함께 안전해져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

김신범: 그러니까 노동자만 안전한 세상은 없어요. 소비자만 안전한 세상도 불가능해요. 석면 베이비파우더 또는 옥시 사건을 봐도 그렇고요. 그러면 손을 잡아야 되잖아요. 같이 문제를 해결하자 그럴 때 힘이 되게 세져요. 2008년부터 마트에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한테 의자 주는 캠페인을 만든다거나 환경미화원들에게 씻을 권리를 보장해라 이런 캠페인을 했어요. 이 캠페인의 목적은 뭐냐 하면 마트 노동자와 점장, 사장 이런 노사관계를 떠나서 둘의 관계에 고객이라고 하는 제 3자를 끼어들게 만든 거예요. 관계를 입체화시킨 거죠. 그래서 고객들한테 질문을 한 거예요. ‘직원들이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서 저렇게 서서 고생하는 게 고객 입장에서 마음에 드십니까?’
또 구청에서 환경미화원을 더 나은 청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적에서 민간위탁으로 전환을 했어요. 그러면서 임금을 반으로 자르고 복지시설도 다 없앴죠. 그거를 시민들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마음에 드시나요?’ 아니잖아요. 이렇게 관계를 만들어야 서로의 안전을 서로 책임지는 관계가 된다고 봐요. 자기가 지켜주는 거 없이 누리기만 하면 안 되지 않나요?

모심: 일반 시민들이 이런 활동에 모두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요즘엔 유해물질 정보를 알려주는 앱 같은 것도 나오고 해서 나름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그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고요.

김신범: 결국 나의 안전을 위임할 상대가 없네. 그냥 지켜주는 게 아니고 비용이 필요하구나 라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라고 봐요. 이건 거쳐 갈 수밖에 없는 과정이라고 봐요. 근데 불산 사고, 세월호, 가습기살균제까지 이게 2013년부터 짧은 시간 동안에 압축적으로 이 정도 규모의 대형 사고들이 터지는데 그게 너무 슬픈 일 아니냐는 거예요.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뚫려가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제는 뭔가 사회에 전환의 시점이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모심: 이대로는 더 이상 지탱가능하기 힘들다라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도 확대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 미래를 위해서 뭔가 준비가 필요할 것 같은데 혹시 어떤 계획 같은 건 없으세요?

김신범: 특별한 것은 없고, 지금까지는 저 혼자 이런 화학물질 쪽에서 일을 해왔는데 앞으로 저 같은 사람을 10명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발암물질국민행동 내부에서 공부모임을 운영을 하고 있어요. 저도 처음에 이 분야를 너무 몰라서 무기력한 나에 대해서 화가 많이 났어요. 그래서 죽어라 공부를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배운 것을 풀어놓으려고 해요. 정책 공유방을 만들어서 제가 어디 회의 다녀온 자료부터 차곡차곡 다 올려놔요. 누구라도 볼 수 있게요.

모심: 이렇게 책임감이 강한 스타일의 사람들은 대체로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거나 하는 일까지는 잘 못 챙기시던데 어떠신가요?

김신범: 어느 순간부터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고 일이 잘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오히려 예전보다 일하는 시간은 줄어들었죠. 그게 가능한 거는 제가 일을 하는 방법을 좀 깨닫게 된 것도 있고 나를 못 믿는 조바심도 많이 줄어들어서인 것 같아요. 아이와 노는 시간은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모심: 오늘 바쁘신데 귀한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일자 : 2016년 8월 12일
인터뷰 장소 : 여의도 소재 전통찻집
면담자 : 김이경(모심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원), 하만조(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구술자 : 김신범(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
정리 : 하만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