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새로운 길을 찾아서 ⑥] 고령화 시대, 나이 들고 아프면 누가 나를 돌봐줄까?

<살림의 새로운 길을 찾아서 >

 

“나의 건강을 지키며,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돌봄 공동체의 실험

 

대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나준식 이사장 · 김성훈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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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고 아프면 누가 나를 돌봐줄까? 가족돌봄의 약화와 함께 국가와 시장의 돌봄서비스가 부상하고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지고 서비스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말 온전한 돌봄이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추세를 고려할 때 양질의 노인돌봄 서비스 준비는 절실한 상황이다. 한살림도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이 같은 사회적 흐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조합원 평균 연령이 계속 증가하면서 조만간 나의 돌봄을 대비해야 하는 조합원들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몇년 전부터 조합원 간의 돌봄시스템을 만드는 노력이 일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웃과 협동하며 먹거리 운동을 펼쳐온 경험이 돌봄 공동체 준비에 큰 힘이 될 것이란 기대도 높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마침 대전에서 이와 유사한 노력이 진행 중에 있다.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국가와 시장의 틈새에서 지역사회 주도형 상호돌봄 모델을 실험하고자 한다. 지역의 민관 복지자원의 협력을 통해 소외된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 우정과 연민, 협동과 나눔을 통해 건강한 노년의 삶을 만들어가자는 취지다. 한살림의 돌봄 방향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곳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나준식 이사장과 김성훈 부이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돌봄공동체의 미래를 상상해 보자.

 

건강과 생활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모델

 

모심: 현재 정부는 물론 민간에서도 여러 가지 노인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왜 의료사협에서 이 노인돌봄 사업에 참여하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나준식: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저희가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 있는 것 같아요. 우선 어르신들의 여러 이슈 중에 생활과 관련해서 복지 문제가 크지만 건강 관련한 문제도 있죠. 그 생활을 지원하는 복지와 건강은 서로 결합된 거잖아요. 근데 동사무소나 구청 등 복지 자원들이 뭔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의료와 관련해서는 뚜렷하게 어떤 제도나 노력이 별로 없다고 봐요.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생활뿐만 아니라 건강의 문제까지 함께 연계된 지원이 있어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거든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런걸 생각했을텐데 아직까지 실현하려는 노력은 별로 없었어요. 복지와 의료, 그리고 지역사회를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인 것 같고 그러다보니 저희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죠.

 

모심: 이런 시도는 여기가 처음인가요?

 

나준식: 의료사협은 다들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죠. 우리가 환자들을 접하다 보면 그런 게 느껴져요. 아마 노인 요양 쪽도 마찬가지일텐데, 이렇게 조각조각 되어 있는 형태는 아니라는 거죠.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 생애주기별 필요에 맞게 서비스를 통합 지원하면서 스스로가 자신을 꾸려가도록 서로가 돕는 그런 어떤 자조와 협동의 모습 이런 거를 상상하는 거죠.

개인이 좋은 의도로 이런 사업을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저희는 이걸 시스템화 시키는 걸 시도해보려고 해요.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노인돌봄을 만들어가야 되느냐 뭐 이런걸 고민하게 하는 기회는 없었는데 우리가 그 일종의 모델이 될 수도 있다고 봐요. 중요하지만 발굴하지 못한 문제를 찾아서 의제로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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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나준식 이사장 _ 사진 김이경

 

모심: 새로운 시도인데 여러 모로 어려움도 겪으실 것 같아요.

 

나준식: 저희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을 받아서 하는 거지만 실제로는 제한이 많죠. 예를 들면 지자체나 공공부문에서 지원을 받는 분들은 저희가 지원을 할 수 없어요. 돈을 움직이는 입장에서는 명분이 필요하고 나름의 기준도 있어서 중복이냐 아니냐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죠. 근데 개인 삶을 놓고 보면 그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분이 한 군데 지원을 받아도 또 지원이 필요할 수 있거든요. 그런 제한 속에서 저희가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한 3년 정도 그 모델을 만드는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때 쯤에는 성과와 관계없이 노인들의 현재 삶의 현장이 이렇다. 그래서 이렇게 재조직되어야 한다 혹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 혹은 어떤게 필요하다 뭐 그런 것들이 좀 드러날 거고, 그 경험을 자산으로 해서 우리나 다른 곳에서도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노인돌봄의 네 가지 키워드

 

모심: 네. 그러면 현재 진행하고 계신 사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세요.

 

김성훈: 첫째는 노인 주치의 사업이에요. 주치의가 뭐냐부터 해서 몇 번 가야 되느니 하는 이런 저런 이슈들이 많은데 저희가 중요하게 보는 거는, 이 제도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책임지는 구조 하에 놓이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통합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거죠. 그렇다고 밤마다 콜을 한다 이런건 아니고요. 어쨌든 건강 관련된 문제가 생겼을 때 주치의에게 가면 그 동안의 건강이력, 진료내역을 볼 수 있게 되겠죠. 주치의가 환자를 알아보게 되는 거고요. 물론 여기서는 1차의 기능이니까 모든 걸 다 해결해줄 수는 없고 필요하면 2, 3차로 연계를 해주는 거죠.

그런 체계에서는 궁극적으로 단지 치료를 받는 행위만을 가지고 주치의가 필요한 게 아니니까, 그 사람의 생활 건강이나 예방까지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봐요. 인두제 개념으로 보건의료 비용이 책정 돼서 그거에 따라 의료와 생활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거죠. 필요하면 치료하고 필요하면 놀러가고 필요하면 야채 많이 먹도록 촉진하는 활동에 돈을 쓰도록 하는 거죠.

이게 현실화 가능성이 없지 않아요. 의료사협연합회가 한 2년 노력해서 장애인주치의 사업을 했고 ‘장애인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의 제정과정에 개입하게 되었거든요. 우리는 저소득 어르신을 중심으로 해서 주치의 사업들을 모델링 하고 실험해 나가면서 보건의료정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고 해요. 궁극적으로는 주치의 제도가 전국민의 보건의료체계로 전환됐으면 좋겠다는 꿈도 있고요.

 

모심: 방문 주치의 사업 취지는 좋지만 현재 경쟁체제 속에서는 어려움이 크지 않나요?

 

나준식: 아마 전체 의사들이 참여하고 동참하지 않으면 쉽지는 않을 텐데 그나마 우선은 재가방문에 대한 급여를 만들어 내는 거는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 있어요. 그거는 다른 의료기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메리트가 있고, 그러면 환자들도 훨씬 더 낫죠. 방문이라고 해서 딱 치료만 하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병원에서라면 그럴 수 있죠. 근데 방문하는 순간 이미 이거는 삶의 만남이 돼서 행위별 수가 어쩌고 해도 아이고, 뭐라도 하나, 청소라도 해주고 오게 되거나 뭐 다른 얘기를 더 들어주게 되거나 이렇게 되는 것처럼 방문사업 그 자체가 의미가 꽤 있어요.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뭔가 성과를 어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겠나 싶어요.

 

김성훈: 두 번째는 선배시민 리더 양성이에요, 어르신들을 영어로 시니어라고 우리 식으로는 선배시민이라고 하거든요. 원래 노인이나 늙은이라는 표현도 나쁜 말은 아닌데 사회적인 맥락에서 의미가 변했죠. 어쨌든 사회 선배로서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참여하고 활동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살아가는 그 일을 하려면 어르신들이 단지 돌봄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조직화되어서 이분들이 스스로 자기 발언들을 하시고 지역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 해서 어르신들 스스로의 자주적인 노인회 같은 걸 만드는 일이에요.

 

모심: 홈페이지에 '자아통합'이라는 표현이 있던데 그게 연관된 것인가요?

 

김성훈: 자아통합이라는 말을 대중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거예요. 노사연이 ‘바램’이라는 노래에서 그렇게 표현했어요.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라고요. 비록 나이가 들어가지만 살아가는 그 동안에도 계속해서 우리가 어떤 것을 함께 기대하고 그 가능성과 희망을 가지고 서로 얘기하고 만날 것인가 이런 거죠.

세 번째는 네트워크 체계를 갖추는 거예요. 지역사회가 있다는 것은 한편에 어떤 리더십이 있다는 거죠. 현재 시점의 지역사회 리더십은 구청장이나 시장 밖에 없어요. 옛날에는 그런 거랑 상관없이 동네에 어른이 있었잖아요. 지금은 그런 게 없단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뭔가 갈등이나 이해를 조정하기 되게 어렵죠. 그래도 모여서 협의하는 민관협력네트워크 체계는 지금 굉장히 많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동까지 그게 내려갔어요. 그런 네트워크를 통해서 같이 논의하다 보면 복지의 중복과 누락의 문제, 사각지대 문제는 비교적 잘 밝혀져요.

네 번째는 저출산 고령사회의 돌봄공동체를 만들자는 거예요. 일본의 그 잃어버린 20년 동안에 열심히 돈을 저축한 연금 생활자들이 그걸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을 거라고 봤지만 돌아가시기 5년에서 10년 전에 자기가 벌어놨던 돈을 다 까먹고 병원에 혼자 버려지는 ‘병원 난민’이 됐다고 하거든요. 또 고독사 문제나 다른 문제들도 등장하기 시작했고요.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더 탄탄하게 준비했던 나라들한테도 그런 문제가 발생 했는데 우리 사회는 어떨까요. 사회도 문제지만 당장 저도 대책이 없어요. 그렇다고 제가 돈을 벌어놓은 것도 아니고. 분명히 아파가지고 골골 하면서 병원 다녀야 되고 누구에게 돌봄을 받아야 될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가 우리한테 있는 거고 그래서 결국 이 지역사회에서 주민들 간의 상호돌봄체계를 구축한다고 하는 거예요.

 

 

노인돌봄의 핵심은 ‘죽음준비’

 

모심: 돌봄공동체를 만드는 작업은 이제 시작 단계인데 특히 이 노인 돌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신 방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준식: 우리 사업에서 일치된 의견은 아니지만 노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재정문제라든가 기타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는 ‘죽음 문제’라고 생각해요. 예를들면 의료에서 어떤 치료를 해주냐, 노인 요양을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지원해주냐 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게 바로 ‘삶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죽음은 어떻게 맞이해야 할 것인가’라고 봐요. 그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지금보다 일상화되고 더 많이 이야기 되면 현재 고통으로부터 많이 벗어날 거라 봐요. 내가 내 고통 문제를 수용할 수 있으면 남을 돌볼 수도 있는 거예요.

근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럴 여지가 없죠. 어떻게라도 뭔가 더 주는 거 받아야 내가 살아갈 수 있고 돌봄서비스를 어떻게든 받아야 되고 수급을 받아서 월세라도 내야 되고 빠듯한 삶이죠. 제 생각은 그래요. 그러니까 기존 방식으로는 아무리 해도 비슷하지 않을까? 좀 더 준다고 해도 결국 큰 흐름은 변화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걸 뛰어넘는 방법은 전면적인 변화라고 봐요. 노인돌봄의 핵심은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다. 물론 유럽처럼 복지 시스템이나 제도가 갖춰져서 노후생활의 여유를 만들 수도 있겠죠.

 

모심: 그런데 제도는 아닌 것 같다는 말씀이시군요.

 

나준식: 네. 제도가 아닌 문화가 필요하다고 봐요. 현재는 노인들이 자기 노후를 뭔가 책임지기 위해서 계속 이렇게 쫓아다녀야 되는 상황이잖아요. 우린 또 거기 반응해서 계속 돈도 대야 하고 프로그램도 해야 하는데, 뭔가 이런 흐름에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날 수는 없을까. 예를 들면 무슨 질병이 있다면 적절히 도움을 받고 그것이 자기 삶에서 최고의 고통이 아니라 어차피 그거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니까 그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쉽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전반적인 관점이 다 변화가 일어나는 거죠. 이 초고령 사회를 돈이나 기존 방식 말고는 뭐가 없을까. 아무튼 그런 고민이 있는 거죠.

 

김성훈: 그런 맥락에서 저희가 죽음준비학교라고 하는 사업을 계획했어요. 우리가 죽음을 성찰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삶에 대해서 어떤 뭐 집착이라고 해야 될까 뭐라고 해야 될까. 자기만 생각하면서 어리석게 살지 않고 인생의 마지막에는 좀 깨달은 존재로 살다가 돌아가시게 되면 제일 좋으니까. 자기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과정이 죽음 준비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이 인생의 마무리에 굉장히 좋겠다 이렇게 생각했죠. 근데 저희 내부에 노인의료복지연구회라고 있는데 거기서 토론하면서 제가 어르신들은 노화하다가 돌아가시는 과정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어차피 돌아가실 분이라는 그런 표현에 대해서 관점의 문제를 지적하시는 분이 계셨어요. 그분 주장은 살아있는 동안에는 늘 살 것이라고 하는 희망과 기대를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은 채 어르신과 관계하고 만나야 한다는 거였어요.

 

모심: 조금 더 설명을 해주신다면…

 

김성훈: 죽음이라는 것을 딱 상정해놓고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한다는 그 발상을 벗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앞서 그분이 죽어 가시는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을 많이 해오면서 보니까, 죽음에 임박하게 되면 자기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일어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그 의도는 같은데 표현을 어떻게 쓰느냐 문젠데. 자기 삶의 전과정을 잘 되돌아보면서 깨달음을 얻으시면서 돌아가시는 어르신들이 많다는 거예요. 우리가 노인의료복지를 한다는 것은 결국 그것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의 문제이죠. 그거를 어떤 면에서는 죽음 준비라는 말로 할 수도 있지만 그분은 이제 죽음준비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어쨌든 큰 맥락은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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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김성훈 부이사장 _ 사진 김이경

 

모심: 앞서서 건강과 생활에 더해 지역사회를 통틀어서 통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부분도 설명을 더 해주세요.

 

김성훈: 하나는 노인 건강이나 노인의 삶을 시장 원리에만 맡기거나 국가가 다 책임져 줄 수 없다는 게 있어요. 요양 등급 받은 어르신들을 업체들이 서로 쟁탈전하는 문제가 있고 국가 지원은 관료제의 문제와 막대한 자원 투입 대비 효과가 적은 문제가 있거든요. 그리고 사람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만들어가는 측면도 있고요. 결국 사회적경제 얘기하는 맥락하고 비슷한데 지역사회 공동체가 그런 문제에 대해서 같이 논의하고 대안을 만들고 또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해나가려고 할 때 돌봄 문제가 잘 풀릴 수 있다고 봐요. 크게 봐서 시장 실패, 정부 실패가 우리로 하여금 이런 꿈을 꾸게 만들도록 한 측면도 있죠.

 

모심: 지역사회의 실체가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조금 더 설명해 주신다면…

 

김성훈: 마을공동체가 어디 있냐. 어떤 모습이냐 하는 문제는 있죠. 왜냐하면 사람들이 느끼고 보는 거는 시장이랑 국가 밖에 없으니까요. 돌봄이 필요하면 동사무소 가거나 시장 가서 돈을 주고 해결하려고 하죠. 그래서 결국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노후를 대비해야지 라거나 국가가 돌봄 관련 예산을 많이 써야한다는 논리가 주를 이루죠. 지역사회라는 거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 했기 때문에 막연한 거예요. 옛날에는 국가나 시장 도움 없이도 어떻게든 됐잖아요. 근데 지금은 그걸 기대할 수가 없고 그렇게 돌아갈 수도 없고 그런 기억이나 상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별로 많지 않은데 이 일을 풀어가려고 하는 중이잖아요. 아무튼 고민 중에 하나에요.

그리고 이 지역사회주도형이라는 관점에서 국가와 시장의 문제를 생각볼 때 우리가 큰 문제로 봤던 거는 노인들은 돌봄의 대상이라는 관점이에요. 노인 하면 몸 아프고 힘이 약하고 그러니까 우리가 잘 돌봐드릴게요, 잘 모실게요 이렇게 접근을 하거든요. 근데 그보다는 어르신들이 스스로 자기 생각을 하고 아직도 자기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더 잘 살기 위해서 애를 쓰고 지역사회에서도 뭔가 역할을 하거나 보람이 좀 있는 일을 하면 좋겠고 이런 분들이라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사실 의료사협을 만든 취지가 지역 주민들은 돌봄의 대상이고 나는 전문가라서 저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 처치를 하고 애써주면 그게 좋은 의사라는 관점을 바꾸려고 하는 거잖아요. 의료인과 지역 주민이 서로 협동해서 서로 주체로서 나도 내 건강에 대해서 스스로 주인공이 되고 의료 전문가들 만나서 조언도 얻고 상의도 해가면서 내가 좀 더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 애쓰는 일을 하자고 하는 거거든요. 노인돌봄 사업도 그런 관점과 패러다임을 갖고서 접근해보려고 해요.

 

모심: 민들레의료생협에서 생각하는 돌봄의 의미가 그냥 단순히 수혜자가 아니고, 그러니까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그리고 어떤 깨달음의 존재가 돼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그걸 도와주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걸로 돌봄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 죽음이라는 것이 극단적인 경우, 그러니까 거의 죽다 살게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일상적으로 인지하기가 어렵지 않나요? 앞서서 죽음준비학교를 운영한다고 하셨는데 그 외에 다른 활동은 없으신가요?

 

김성훈: 저희도 서툴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잘 안되죠. 일본에 가서 보니까 의료생협이 반조직이 잘 되어 있어요. 그분들이 소모임 활동도 되게 열심히 하고요. 건강이 대개 주된 이슈니까요. 근데 거기에 여러 건강과 관련된 그런 활동들을 다 모아놓은 걸 건강메뉴라고 부르는데 그 메뉴 중에 꼭 반드시 하는 게 그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쓰기가 있어요. 내가 정신이 없거나 상황이 급박해지기 전에 미리 준비해두는 거죠.

 

나준식: 우리가 나는 지금 죽을 거라고 생각 안 하고 살지만 우리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이렇게 계신데, 어쩌면 죽음을 앞두고 있거나 우리 가족으로 범위를 조금만 넓혀보면 죽음을 앞두고 여러 가지로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죠. 사실 이 문제는 모두에게 다 해당되는 문제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사실 젊은 사람들도 준비하는 게 가능하죠. 예를 들어서 우리가 흔히 하는 명상이나 자기 통찰을 키워가는 훈련 프로그램을 하고 그런 거죠. 아니면 종교가 잘 맞아서 종교생활 열심히 하고 뭐 이런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해서 그 노인 세대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회 분위기나 우리 정신세계에 변화가 좀 있어야 이런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다고 봐요.

 

김성훈: 죽음 얘기가 결국은 사람의 성장이나 깨달음의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 같고 많은 경우에 돌아가실 때까지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해나 이것에 뭔가 새로운 차원이 열리지 않으면 되게 비극적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죽음이라는 계기를 가지고 그 동안에 나를 나라고 여겼던 거, 내가 바라봤던 세계에 대한 상, 이해 방식에 어떤 전환이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이런 부분들을 좀 더 만들어 보고 계속 그렇게 어르신들과 만나면서 배워보고 이렇게 해야 될 거 같아요.

 

나준식: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일명 재가호스피스 같은 것도 준비할 수 있다고 봐요. 예를 들면 종교인도 있고 의료인도 있고 혹은 그런 분들이 아니더라도 호스피스에 필요한 사람들로 팀을 구성해서 그런 일을 해보는 거예요.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그분들도 삶을 통찰하는 끊임없는 자기 훈련이 필요하겠죠.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그런 문제에 직면한 사람에게 솔루션을 줘야 해요. 가족 상담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같이 상의하고 현재 갖고 있는 자원들이 뭐고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하면 좋겠고 사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이런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해요.

 

모심: 나준식 선생님이 저희 연구소에서 발간하는 <모심과살림> 7호에 쓰신 글을 보면 한국은 죽음의 질이 낮다고 평가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나준식: 현재는 병원을 중심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거잖아요. 저도 형제들하고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일단 병원 장례를 하지 말자. 그럼 우리 지금 조그만 집에서 사시는데 거기서 장례를 할 수 있나. 그런 문제 있죠. 염할 수 있나. 뭐 기타 등등. 그래도 가족들은 원할 테니까 가족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은 연락하고. 예를 들면 염하는 것도 배워서 할까 아니면 장의협동조합이 있으니까 장례지도사가 와서 염만 좀 도와달라고 해도 되고. 이렇게 우리 아버님 장례를 생각해보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병원에 모셔야 되고 병원에서 돌아가시면 그 다음부터 정해져 있거든요. 이렇게 장례 문화가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죽은 후에 과정들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젊은 사람들은 그런 거 보면 죽음이라는 건 저런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저희 어머니 돌아가실 때 여러 가지 경험이 있는데 어쩌면 정말 축제가 됐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죽음을 축제로 만드는 사례가 있잖아요. 우리 전 이사장님이 어머님 장례식장에 와서 부고봉투에다가 춤추고 노래하자고 쓰셨어요. 예를 들면 그런 거죠. 그런 문화가 될 수 있다면 죽음에 대해서도 좀 다르게 생각하게 되고 그게 결국 죽음의 질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거겠죠. 그러니까 죽는 건 모든 게 끝이고 완전한 상실이고 정말 계속 피하고 싶고 이런 게 아니라는 거죠. 우리에게 그런 전통이 분명히 있을 텐데 아무튼 지금은 그런 면에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거예요. 하지만 의료협동조합이 불가능하다 생각했지만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죽음에 관해서도 그런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그런 문화, 의식 이런 게 바탕이 되면요.

 

김성훈: 이청준의 ‘축제’라고 하는 소설, 영화도 있잖아요. 거기 보면 한 분의 죽음을 가지고 온 마을이 장례식 하는 내내 뭐가 일어나느냐 하면 실제 형식이나 제도가 그렇게 있지는 않지만 결국 그게 일종의 마을 총회가 이루어지는 거예요. 한 분의 죽음을 계기로 해서 다 모여 가지고 평소에 못 만났던 사람들이 자기들 얘기도 하고 그분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하고요. 물론 거기서는 막 술 먹고 싸우고 옆에 도박도 하고 가족들은 재산문제 얘기도 하고 그러죠. 그 과정이 꼭 아름답거나 고귀하거나 이러지만은 않지만 그게 또 사람 사는 모습이니까. 그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그 사람을 알거나 평소에 관계해왔던 사람들이 모인다는 거예요.

근데 지금 우리가 하는 장례는 그 상주를 보고서 가는 거지 그 어르신이 누군지를 알 수가 없죠. 어르신의 친구분들도 몇 명 없어요. 그런 상황인 거죠. 원래는 어르신이 되더라도 젊은 사람들이랑 다 관계하면서 살았던 공동체에서는 그 관계 속에서 오게 되는데. 나름대로 추억이 있고. 그리고 이런 것도 할 수 있겠죠. 그분들 생전 사진을 빔프로젝트 같은 걸로 띄워 가지고 아, 이분이 이렇게 사셨던 분이구나. 그게 다 공동체의 자산이고 경험이죠. 그 기억을 떠올려 보면서 자기 삶도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마련되고, 그걸 통해서 전체가 같이 죽음을 준비하게 되는 과정이 될 수가 있지 않을까.

 

모심: 그걸 준비하는 게 개인의 힘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고 협동조합 방식이 여러 장점이 있을 것 같아요.

 

김성훈: 장점은 있죠. 어떤 특정한 개인이 하는 것보다는 조합이 낫겠죠. 그리고 협동조합이 지역사회가 함께 하는 일들을 하기에 좋은 구조에요. 물론 현실 운영의 문제가 항상 있지만 협동조합은 정말 미래형 기업인 거예요. 시장, 정부가 안 되면 지역사회에서 결국 사람들이 같이 의사소통하고 결정도 하고 이럴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이익을 공유하는 방식의 기업 형태는 지금 시대에 정말 필요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협동조합만 만들면 무조건 잘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구조를 잘 활용하면 좋겠어요.

 

모심: 현실 얘기도 하셨지만 참여를 독려한다거나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에서 걸림돌도 있을 것 같아요.

 

김성훈: 그렇죠. 의사결정의 복잡성이라든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는 있죠. 근데 핵심은 지역사회가 한다는 것이죠. 보편의 이익에 기여하는 활동들을 한다고 하면 그거는 정말 이해관계자가 다양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 일인 거죠. 그럼 당연히 시간도 걸리고 비용도 드는데 그걸 일반 시장경제의 교환논리로만 감당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일들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하지 말자가 아니라 이것은 우리의 고유한 일이기 때문에 하되, 필요한 비용이나 문제들은 상의해서 어떻게 그런 일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작전을 짜는 게 저희들이 하는 경영이죠.

그리고 목적사업을 하려면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조합원에게 요청하든 아니면 우리처럼 공동모금회의 돈으로 하거나 지자체의 재분배 돈을 가지고 올 수도 있고 또 어떤 단체들과 연대를 해서 그 자원을 모을 수도 있다고 봐요. 그렇지 않고 돈이냐 사회적 가치냐 이런 프레임을 설정하면 고민을 하다가 ‘아우, 이렇게 하려면 너무 복잡하고 사업도 안 되니까 다 치우고 돈 버는 방식으로 집중해서 가자’ 이런 식으로 머리가 발달하게 되어 있잖아요. 많은 데들이 그렇게 해왔고. 우리도 현재까지 그런 고민 속에 있고요. 이걸 방어할 수 있는, 어렵긴 하지만 돈벌이에만 몰두하지 않고 돈을 벌거나 활동의 여력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만들어야 된다고 봐요.

 

 

최악의 복지는 수치심을 주는 것

 

모심: 조합에 어르신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건강이나 복지 이슈도 중요하지만 노동 문제도 중요한 이슈일텐데 민들레에서 혹시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 같은 것은 없나요?

 

나준식: 조금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분들은 자원봉사 같은 활동을 많이 하잖아요. 그게 하나의 문화죠. 근데 우리는 오히려 그런 것들로부터 약간 배제된 분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고 또 건강도 그렇게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혹은 이웃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뭔가 기회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저희도 특별히 경험이 있거나 이런 건 아니고 이번에 지원받은 김에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김성훈: 이미 정책과 제도로서 시니어 클럽이라든가 해서 어르신 일자리 사업을 많이 하시죠. 경제적인 문제와도 연결되고 사회적인 보람과도 맞물려 있으니까요. 근데 우리 사회의 노동에 대한 관점 중에 극복해야 될 하나가 노동하면 임금노동만 상상한다는 거예요. 그 노동에는 지역사회나 누군가를 위해서 유익한 활동들을 하는 전반이 다 포함된다고 봐야 되는데, 그게 자기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한데, 지금은 임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은 노동이라고 보지 않는 거죠. 물론 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긴 한데 그런 쪽으로만 노동을 바라보는 건 문제라고 봐요. 또 사회를 돌보고 사람들을 기르는 이런 활동들을 더 촉진시키기 위해서 특정한 능력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일방적으로 주고 받는 관계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모심: 어른신들이 서로 돕는 상호돌봄 방식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김성훈: 그렇죠. 그런 방식으로 서로의 노력을 인정해줘야 된다는 거죠. 무조건 봉사만 해라 이렇게 해서도 좋은 게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원래 타임뱅크가 코프로덕션Co-production을 달성하는 장치라는 건데. 거기에 여섯 가지의 다른 가치가 있어요. 자산, 새로운 노동의 정의, 호혜성, 사회적자본, 존중 등이 있는데 나중에 찾아보시면 될 거예요. 그런 관점을 가지고 지역사회를 재구성해 나가자 라고 하는 게 타임뱅크 활동가들의 주장이에요. 우리가 지역사회공동체를 할 때도 그 개념들을 꼭 한번 검토해봐야 된다고 봐요. 우리 민들레의료사협은 지역화폐운동을 뿌리로 둬서 지금도 ‘두루’라고 하는 건강화폐를 쓰지만 이 타임뱅크는 유럽 등지에서 돌봄영역이나 의료보건 영역에서 특화된 지역화폐로 사용돼요.

 

모심: 그 상호돌봄과 타임뱅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 거예요?

 

김성훈: 현재 우리는 타임뱅크 시스템을 모바일 환경에서 작동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얼마 전에 베타 버전이 나왔어요. 이건 지역사회 상호돌봄, 상호부조 협력플랫폼이에요. 이 안에서는 누가 일방적으로 하는 사람이 없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노동을 주고받고 그것이 전자적인 방식으로 공유되고 또 축적되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꼭 노인돌봄만이 아니라 다른 쪽에서도 많이 활용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자기가 봉사한 시간을 저금해서 돌봄이 필요할 때 받을 수도 있고 돌봄이 아닌 다른 서비스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레츠LETS가 비슷한 방식인데, 차이점은 가치체계가 다르다는 거예요. 레츠는 현행화폐랑 일대일 가치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회의 불평등한 가치체계가 그대로 이 안에서 반복된다는 문제가 있어요. 근데 타임뱅크를 하는 사람들의 슬로건은 ‘우리들의 모든 시간은 평등하다’에요. 변호사의 1시간이든 농부의 1시간이든 평등하다고 보는 관점이죠.

또 하나는 이거를 재화가 거래되는 영역에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큰 어려움이 있어요. 가치를 매기는 것도 어렵고 현행 화폐 가치를 무시하면 참여할 사람도 적을 것이구요. 그래서 자기 일은 따로 하되 가끔 번외로 할 때 이걸 적용할 수 있죠. 과외시간이라든가 여가 시간에 운영할 수 있다고 봐요. 근데 어르신들이 실제 하려고 보니까 모바일 환경에 익숙하시지 않고 그거를 다 대행해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서 우선은 수첩에다가 하고 있습니다.

 

모심: 이와 관련해서 생기는 다른 문제는 없나요?

 

김성훈: 이것도 되게 중요한 이슈 중에 하난데. 노노케어에서 많이 벌어지는 문젠데 실제로 있었던 일이에요. 약간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괜찮은 노인이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방문해서 그 사람 돌봐주고 그러면 그게 노노케어지만, 그럴 때 돌봄을 받는 사람이 그 자체로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들을 우리가 어떻게 할 거냐 하는 문제가 있어요. 때로는 이분들이 가서 자기 자식 자랑하고 자기가 얼마나 잘 나갔는지 거기서 말벗을 해드리는 과정에서 그렇게 해갖고 사람의 염장을 질러 놓거나 어떤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상실감을 느끼게 하거나 하는 일들이 생기는 거예요. 근데 복지의 핵심은 사람에게 자존심과 자긍심을 키워주는 거고 최악의 복지는 사람에게 수치심을 주는 거래요. 김신양 선생이 파리에서 공부할 때 자기 은사님 알랭 까이에 스승한테 배웠던 이야기란 말이에요. 저는 그 말에 굉장히 중요한 관점이 있다고 봐요. 이 과정이, 만남이 한 사람의 자긍심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어떻게 만들 것이냐. 이런 질문들이 있는 거죠. 이 질문을 갖고 또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다시 질문을 챙겨서 그 질문을 기준으로 현재 하는 사업이 어떤지를 계속 보는 거고.

 

 

아픈 사람을 중심에 두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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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의료복자사회적협동조합의 다양한 프로그램 _ 사진 김이경

 

모심: 이런 일들을 해가시는 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 같은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김성훈: 민들레는 10원칙이 있어요. 협동조합 7원칙에다가 ‘적정진료와 적정서비스의 원칙’, ‘노동자 주권의 원칙’, ‘약자 우선의 원칙’이라고 하는 세 가지. 이 세 가지가 같이 있기 때문에 자주관리를 실현하는 거예요. 여기는 현재 사회적협동조합이어서 우리 이해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동 의사결정을 하지만 실제 사업장에서는 자기실현의 보람 있는 일터가 되어야 하죠. 그리고 우리 민들레 미션이 여러 가지 버전이 많은데 최근에 정리하게 된 거는 ‘지역주민의 건강 자치력을 높이는 것’이예요. 일반의료기관도 많고 공공의료하는 보건소도 많고 다 있어도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지역주민이 스스로의 건강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을 갖도록 스스로 생활습관을 잘 하고, 보건의료 정책에도 개입해서 정치적인 것이 필요하면 그런 것들도 바꿔낼 줄 알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을 다 포함하는 것을 자치력이라고 본다면 결국 지역 주민이 건강의 주인공이 되어서 지역의 건강 자치력을 높여나갈 수 있도록 협동하는 조직인 거죠. 그게 핵심 미션이에요.

그리고 우리 슬로건은 ‘나부터 시작하는 건강나눔’이에요. 그게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그 말이 저희한테 굉장히 중요한 게 우리가 원래 출발이 한밭레츠로부터 출발했잖아요. 우리가 그 한밭레츠에서 서로 나누고 연대하고 협동하면서 같이 살자. 지역통화를 매개로 해가지고 지역에 어떤 순환경제 같은 것도 만들어가고 이런 걸 하자 하는 것에서 출발을 했지만 실제 딱 보니까 나눔과 연대와 협동이 일어나는 근본 원리를 배운 거예요. 그리고 왜 안 되는지도 보게된 거예요. 어떤 거냐 하면 그게 이 사회의 논린데, 계약 관계죠. 다르게 표현하면 ‘니가 하는 거 봐서 내가 하겠다’는 거죠, 항상. 근데 연대나 나눔이나 협동은 ‘니가 하든 말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내놓겠다’ 이거에요. 그게 나부터 시작한다는 말뜻이에요. 니가 그래야지만 내가 움직인다는 것은 내 운명이 너한테 달려있는 거지 나한테 달려있는 게 아니잖아요. 니가 하든 말든 내가 하겠다 이게 있어야지 그게 주인공이지. 그러니까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공이 돼야 그 다음에 비로소 그게 독립적인 인간이고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어야 남과 더불어 주인이 될 수가 있는 거예요.

 

모심: 나의 건강과 사회의 건강을 함께 연결해서 다루는게 흥미롭네요.

 

김성훈: 우리 의료사협의 건강관이 아픔을 중심에 두고 자기를 극복하는 힘 뭐 이렇게 정리를 하는 건데 그게 이제 한 개인에게도 아픔이라는 계기를 통해서 자기 삶을 되짚어 보면서 그거를 극복해가는 과정, 그 힘을 건강이라고 보듯이 지역사회 차원에서도 제일 아픈 사람들이 어디 있냐 이걸 보는 거예요. 그래서 사회가 그분들을 중심에 두고 보고 사회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그런 과정에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문제나 아픔이나 이런 부분들을 살펴보고 그걸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도로는 어떻게 놔야 하는지, 생활주택은 어떻게 건설해야 되는지 복지제도는 어떻게 돼야 되는지 이걸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과정 중에 하나를 이번에 우리가 만들어 보려고 하는 거예요.

 

모심: 마지막으로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데 그 중에 상당수는 노인가구에요. 이런 추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더 깊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요.

 

김성훈: 최근에는 독거노인 명부를 확보하고 심지어는 소방서까지 연결이 다 돼있어요. 그래서 위급한 일이 발생하면 비상벨을 딱 누르면 바로 갈 수 있도록 되어 있죠. 근데 지금 지자체 예산은 대부분 다 복지 예산이고 앞으로 고령사회가 되면 이 비용이 엄청날 거라고 보는데 지금 방식으로는 감당 불가능 할 거라고 보는 게 주류 경제 전문가들의 시각이죠. 일할 젊은이가 있고 돈을 벌어야 그걸 가지고 시장을 돌려서 기업이 돌아가는 이 구조인데 이게 안 될 상황이 뻔히 예상되니까요. 그쪽 사람들은 보는 해결책 중에 하나가 통일이죠.

지금까지는 돌봄의 기본단위가 가족이었지만 핵가족은 스스로 돌봄을 할 수가 없어요. 대가족이어야 가능하죠. 아이들 돌봄부터 어르신 돌봄까지. 그래야 역할 분담이 있으면서 되는데 앞으로는 1인 가구가 더 많아질텐데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젊은 사람들도 돌봄이 필요한데 돌봐줄 사람이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 것이냐. 주거형태부터 먹을거리, 여가, 노동의 문제까지 그 전반을 우리가 좀 심각하게 준비하고 대비를 해야할 것 같아요. 이미 다양한 모색들이 있잖아요. 공동주택이나 공동식탁 이런 방식을 실험하고 그러는데 그 시간이 얼마 안 남았죠.

 

모심: 그런 거 생각하면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 영역이 너무 무력해보이기도 하는데…

 

김성훈: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할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만큼 먼저 준비를 해야겠죠. 그게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을 쓴 스티븐 코비가 이론적으로 잘 설명해요. 원이 두 가지가 있는데 관심의 원과 영향력의 원이라는 게 있어요. 관심의 원은 가운데에 점이 하나 있고 밖에 이렇게 큰 동그라미가 있죠. 영향력의 원은 가운데 원이 크고 그 다음에 둘러싸고 있는 원이 있죠. 이 가운데에 있는 원이 나를 의미하는 거예요. 관심의 원에서는 이 세상이 너무나 복잡하고 크지만 나는 먼지만도 못한 작은 한 사람이죠. 이런 내가 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이 세계를 어떻게 해야 돼? 이렇게 보면 나는 무기력에 빠질 수밖에 없고 정말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외부가 어떻게 하는 지에 관심을 갖는 게 내 일이죠. 왜냐하면 쟤네가 내 운명을 결정하니까. 근데 영향력의 원의 관점이 적용되면 가운데 원이 커졌잖아요. 그건 바깥에 원이 상대적으로 작아졌다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내가 움직이거나 행동하면 내 세계의 구성이 변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전체가 돌아가는 걸 안 본다는 게 아니라. 그거를 의미 있게 보면서 그러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항상 물어보고 얘기하고 움직이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되어야하는 거예요. 그렇게 의존성의 단계에서 독립성의 단계로 나아가는 거죠.

 

모심: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일자 : 2016년 10월 6일

인터뷰 장소 : 대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사무실

면담자 : 김이경(모심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원), 하만조(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구술자 : 나준식(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원장), 김성훈(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부이사장)

정리 : 하만조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나준식. 2016. “죽음의 자율성과 생명에 대한 고찰” 『모심과살림』 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