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운동

<한살림선언>이 발표되면서 생명운동이라는 용어가 환경운동과 또 다른 의미로 사회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살림’이 세상에 나온 1986년 이전부터 김지하 시인은 <밥>이나 <남녘땅 뱃노래>에서 이미 이 말을 쓰고 있습니다. 장일순 선생님, 김지하 시인, 박재일 선생님 같은 분들이 새로운 운동의 방향을 논의하면서 이 말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생명운동은 환경운동과 분명히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오염원을 제거하거나 그것을 유발하는 정책이나 제도를 변경하는 집단적이고 의식적인 움직임을 가리킵니다. 어느 정도 민주화된 체제 안에서 기존의 사회시스템을 인정하면서 비판과 견제를 통해 더 많은 참여와 올바른 사회적 규칙(rule)이나 공공정책의 형성을 지향하는 시민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환경운동이 체제 변혁의 재야 운동에서 시작되어 진보적 성향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아 이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운동은 생태·환경 파괴의 현장이 치유되고 일부의 제도·정책이 바뀐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인류에게 이런 위기가 닥친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바로 그것이 자본주의·사회주의를 포괄하는 ‘산업문명’이라고 규정합니다. 산업문명이 생태환경 위기뿐만 아니라 인간성 상실, 공동체의 붕괴 등 인간의 삶과 전지구적 생명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생태환경 문제는 사람들에게 산업문명의 한계를 드러내 주는 좋은 소재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운동은 오염원의 제거나 정책, 제도의 부분적인 수정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 시스템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산업문명을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생명운동의 첫 번째 특징은 바로 문명 전환의 운동이라는 것이죠. 문명 전환은 두 가지 양상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는 새로운 세계관 운동이요, 다른 하나는 새로운 생활양식(생활양식은 생산양식, 소비양식 등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 시스템을 포괄합니다)의 창조 운동입니다. 그것을 <한살림선언>에서는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이에 입각한 새로운 생활양식의 창조”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