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9일,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교육관에서 있었던 생명평화모임에서 나눈 발제와 논의를 공유합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촛불 정국 속에서 생명평 활동가들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메시지를 발신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자리였습니다.
<발제> 유정길 (요약)
진보보수가 이번처럼 극명하게 전면화된 적이 없었다. 최근 집회 모습만 보더라도, 어버이연합을 필두로, 탈북자들을 조직화고 돈을 동원하면서. 하지만 단순히 돈만이 아니라 개신교 보수세력들이 결합하면서, 보수라고 하기도 어려운, 과격한 그룹들이 세력화되고 있다. 거의 전투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지금 상황에서 다양성을 유지하거나 애매한 스탠스를 취할 경우 비판받을 가능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취해야 할 입장과 태도는 무엇일까.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는.
박근혜로 대변되는 그룹들에 대해 많은 분노와 증오를 투사시켜가는 것이 이후 개혁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후 정권에게 요구되는 바가 많아지게 되고, 그럴 경우 촛불시민들이 개혁의 주체가 되고 동참하기보다 비판 내지 비방하는 입장을 취하게 될 수 있고, 사회가 건전한 개혁 방향으로 가기보다 갈등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우리가 견지해야 할 관점, 분노와 증오를 승화시키는 관점이 무엇일까. 대립과 대립이 이어질 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대립하는 양쪽 다가 지향하는 새로운 지점을 설정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나가는 방식이 있다. 지금 국면에서 지향해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생명운동은 관계와 과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탄핵 인용 이후 곧바로 대선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이는데, 과거 4.19나 87년 경우처럼 개혁을 했지만 수구반동 세력이 득세하게 되는, ‘죽 쒀서 개 주는’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 체제교체와 시스템 교체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 개헌을 주장하는 쪽에서 그런 얘기를 해왔는데, 운동진영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보수쪽과 운동 진영에서 말한 개헌은 물론 달랐다.
지난 3월 1일, 6.10항쟁 30주년 기념사업 쪽에서 개헌을 강하게 얘기했고, 종교인 중심으로 개헌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운동적 파장이 크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복과 갈등 국면을 요구하는데, 이 자체가 명확하게 어떤 걸 타도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승화되지 않을 경우 역사 속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없겠다는 우려가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운동의 내용이 뭘까. 저항과 반대의 운동만이 아니라 원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 탄핵과 정권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시스템과 체제를 만드는 게 목표인데, 생명평화운동이 어떤 변별력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적폐청산, 단죄 혹은 통합이 중요하다는 관점에 따라 지지가 나뉠 것 같은데, 이 국면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 대선을 바라보는 시가도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이후의 과제를 어떻게 세팅하고, 그 내용을 만들어갈 것인가 –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가, 다른 전망과 내용적 비전, 가치가 스며들 수 있도록.
세월호 전후해서 국민들의 정서가 극단적으로 치닫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경제적 불안정성도 높아지고, 정치적 문화적 박탈감,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다음 정권은 인수위가 만들어지는 정권이 아니기 때문에 불안정성이 높다. 정치적인 불안정성과 국민들의 심리적 요구들이 많아지면서 불안감이 크게 조성될 것 같다. 사회적 과제가 일부 이뤄지긴 하겠지만 성에 차지 않는 수준일 가능성이 있다.
생명운동이 여기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풀뿌리자치와 분권이 강조되고, 지역마다 의미 있는, 결정권과 권위를 갖고 있는 민회운동이 조직돼서 지역운동을 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생명평화운동이 변별력을 드러내면서 사회화할 수 있을 것인가.
국민행동 내에서도 앞으로의 방향이 명확하지 않고 우려가 있다. 체제화하는 것이 관건. 지역 민회를 통한 바닥의 조직화, 분권운동이 중요하다.
<토론>
임진철
과학기술이나 경제 쪽 심포지엄을 가보면 4차산업혁명하에서의 먹거리, 노동 등이 주요 쟁점인데, 사회운동이나 인문학 쪽에서는 직접민주주의, 사회적경제, 기본소득 등이 주로 얘기되는 것 같다. 그런 문제들을 통합적으로 봐야 하지 않나 한다. 구글 번역 앱 등이 나오면서, 이제는 언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앱을 다루는 능력을 배우는 시대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뇌를 대신하고 로봇이 근육을 대신, 20%가 노동하고 80%가 노는 상황, 노조가 무의미해지는 시대, 이런 상황을 내다보면서 생명평화운동의 전망을 세워야 하지 않는가. 기본소득, 평생교육, 도시농촌상생,융합, 전환도시, 이런 얘기들 속에서 미래를 끌고 가야 한다. 탄핵 정국에서 옛날 방식으로 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4차산업혁명이 도래하는 시점을 보면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양극화가 극심화됐을 때의 디스토피아가 우려되는데, 생명평화진영에서는 생태마을, 전환도시운동, 기본소득 등 근본적인 것을 물고 늘어지면서 농민기본소득을 먼저 치고 나간다든지, 민회운동을 함께 펼치는 등의 방향이 있을 것 같다.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규호
최근 상황이 혼란스럽긴 하지만 매주 촛불광장에 참여하는 개개인 시민들은 거기에서 해방감과 희망을 느끼기도 한다. 노동, 인권, 시민운동 등 촛불 기획 단위들이 모인 자리가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일반 시민에 비해 상당히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상황의 변화, (운동을) 기획하고 조직, 동원하고 의도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데 익숙했던 사람들은 지금 현재의 상황변화가 감당 불가능한,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기존 관성과 경험을 가지고 뭔가를 해야 한다면 부담감이 과도할 수밖에 없다. 이점에서 현재의 급격한 상황변화와 기존의 운동 방식 사이 상당한 괴리가 있어 보인다. 생명평화운동 쪽에 대해서도 같은 상황을 다양하게 진단할 텐데, 왜 내가 답답해 할까의 질문도 같이 해봐야 하지 않을까.
김용우
근대적 개념의 광장과 우리가 해야 할 얘기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옛날과 다른 것은, 경제적 불만이나 정치권력에 대한 불만, 분노, 미움을 가지고 모이지 않고 상당히 이성적이었다. 모임 단위도 꼬뮤니티 복원에 가까웠다. 동호회 모임, 계모임 등, 우리 안에 꼬뮤니티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고 본다. 87년 항쟁은 그런 개념이 아니었다. 광장을 권력 문제로 치환한 것은 보수 권력이다. 광장을 꼬뮤니티 개념으로 재환원해서 생각하면 광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한다. 네트워크 얘기를 해야 한다.
노동해방 과제가 노조 강화가 아니지 않나. 노동이 줄어가는 상황에서 꼬뮤니티에 대한 새로운 네트워크. 그것으로의 사회적 대체로 가야 한다. 근대적 개념 안에서의 진보/보수 얘기는 맞지 않다. 사람이 어떠해야 되는가의 방향에 대한 얘기가 있어야 한다. 평화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진화하는 사람, 성숙한 사람… 반자본주의적 과제가 아니라 탈자본주의적 얘기를 해야 한다. 꼬뮤니티의 복원 혹은 새로운 창조. 소통, 공감 개념에서 봐야 하고 오프라인의 소통과 공감과 온라인의 소통과 공감이 어떻게 미래 사회의 에너지 자원으로 재조직화될 수 있는지의 가능성을 검토해가는 차원에서..
인공지능은 중요한 문제이다. 초기 근대과학과 광장의 민주주의가 근대 문명을 열었다면 탈근대 문명은 정보과학과 네트워크가 열 수밖에 없지 않는가. 4차산업혁명도 과학이 어떻게 인류를 성숙, 진화시키는가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4차산업혁명이라고 얘기하는 순간 경제, 자본의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과학이 자본의 토대가 될 것인지, 인류 진화와 성숙의 토대가 될 것인지 중요하게 봐야 한다.
현재 한반도는 미국, 일본 옛날식 제국주의, 민족주의 시선이 아니라 남북문제가 동아시아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고 그런 측면에서 문제를 새롭게 봐야 한다.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한 분석이 빠진 정세분석은 의미가 없다. 동아시아 전반에 대한 시선이 정리되지 않은 미일 중심의 분석은 생명평화운동과는 거리가 있지 않나 한다.
이무열
긴 로드맵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하는 자리이기보다는, 내외적 혼란과 위기라고 느끼는 속에서 이 시기를 우리가 갖고 있는 장기적 방향에서 좀 더 촉발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까. 방법론적인 이야기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복원’이라고 하신 데 동의한다.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건가. 늘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추상적이고 당위론적인 얘기는 시대문화에 맞지 않다. 이런 방법들의 다양성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낼 때가 아닌가. 생명운동이 10가지 얼굴은 가져야 한다고 본다. 복원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사상과 삶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내용들을 정리해준다면, 한편으로 피해갈 수 없는 대선 국면에 대선 주자들에게 우리가 원하는 방향에 대해서 사인을 주는 것도 어느 단위에서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로 포괄하는 것은 지금 시대에 맞지 않고, 다양한 방법들을 각각 성격과 위치에 맞게 펼치는 네트워크가 필요하지 않은가.
윤호창
광명에서는 22개 단체가 함께 운영위원회를 꾸리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 강화, 민회 조직 얘기가 나왔는데, 거기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가 있는 것 같다. 직접 나서지 않으면, 큰 의제들 같으면 할 일이 별로 없는데, 이런 계기로, 직접 민주주의 강화 쪽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 있다. 이슈를 만들고 한 지역의 모델을 못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생명운동 그룹에서 구체적인 모델,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 네트워크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지역 안에서는 합의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이끌어줄 수 있는 그룹이 있다면 네트워킹, 정책화시키는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규호
촛불에서 희망적으로 본 것은 광장을 통해서 사람들의 의식이 진화됐다고 믿고 싶다. 광장에서 탄핵 이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언제든지 광장에 다시 모일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모순된 실체를 적나라하게 바라보게 된. 지금 우리 사회를 크게 바꿔나가는 것은 과학기술의 진화 같다. 분명 변화는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과학기술이 만들어내는 진화의 속도를 사람의 의식의 진화의 속도가 따라갈 수 있는가 인데, 이것은 인류문명의 미래와 직결된 부분이 아닐까. 생명운동 쪽에서 사람의 의식의 진화를 위해서 우리는 어떤 경험과 노하우가 있고, 어떻게 대중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가, 거기에 집중해야 할 때가 아닌가. 기술이 발달하고 온라인 광장이 열리고 온갖 정보가 쏟아지는데, 사람들의 의식을 퇴화시킬 수 있겠다고 느꼈던 게, 엄청나게 쏟아지는 정보 속에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더 강화시키는 경향도 나타난다. 그런 집단주의랄까 편향된 의식을 강화시키는 속에 성숙사회, 의식의 진화, 이런 부분을 어떻게 만들어낼까. 출구는 뭘까. 사회제도 개혁은..
황선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하나의 생명체로서 해야 할 일이 있을 텐데, 각각 사고하는 게 있을 것 같다. 생명평화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또 어쩔 수 없이 속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일, 그게 분리되지 않고 혼합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언제쯤 국가주의로부터 벗어날까. 정권교체, 체제교체.. 이런 얘기들 속에서 우리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국가 중심 담론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생명평화 운동에서는 누군가로 대표되는 구심이 없는데, 전국적으로 순회하면서 씨눈이 되어서 순행하면 어떨까.
전희식
분석, 해석하고 함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이 궁극적으로 내 존재의 진보, 차원 상승에 궁극적인 지향이 가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내가 더욱 다른 존재로 다가가는 것. 이런 국가주의적 분석과 대응이 거기에 굉장히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고 본다. 그 관계성이. 눈을 뭉치자고 하셨는데, 떼를 지어보자. 얼룩말 무늬처럼 군데군데. 생명평화 문화 만들기. 개입할 수 있는, 관여할 수 있는 게 또 다른 단체를 만들어서 하는 것이기보다는 자신이 불쏘시개가 되어 보는 역할들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김용우
광화문의 촛불 구성원들은 어떻게 모였는가. 중소도시는 거의 운동권 중심이었다. 그들이 원하고 소통했던 게 무엇이었을까. 앞으로 우리 운동에서도 중요한 지점이라고 본다.
유정길
분노가 촉발된 건 사실이지만, 광장을 유지하게 만든 것은 일종의 아나키적 축제, 페스티벌 의식 같은 게 작용했다고 본다. 축제성, 역사적 의식, 정치적 정당성으로 인해 주저함이 없었던 점. 주체성도 있지만 그런 요소들이 편하게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고 본다.
김용우
분노나 미움으로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었다.
임진철
이래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있다.
유정길
중요한 측면이라고 보고 있지만, 이후에 다른 국면을 만드는 데, 광장 자체를 다양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이후 동력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서도. 생명운동이 국가주의적이지 않은 요소를 강조하고 있는데, 세월호, 탈핵 등 결정적으로 국가가 결정권을 갖고 있는 문제다. 생명운동은 그런 영역들은 건드릴 필요가 없는 것인지.
임진철
장기적 방향으로 탈국가적 마을주의가 맞다고 생각한다. 허나 세상은 여전히 국가주의적 앙샹레짐이 강고하다.마을(마을공화국)-지방자치단체-단위국가-지역블럭공동체-세계와 같이 수직계열화된 글로벌체제가 복잡하게 엉켜 있다. 국제관계, 동아시아 쪽을 가위바위보 게임으로 가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서로 긴장관계, 견제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일 동맹체제에 종속되지 않고. 나는 생명평화운동은 만 개의 마을과 천 개의 마을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한두 가지 요인으로 되는 게 아니라 수만 가지 복잡계가 상호작용하면서 진화적 발전을 해나가기 때문에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을 인정하면서 가야 하지 않는가. 나도 기본적으로 탈국가마을주의 입장이다. 하지만 날로 점증해가는 국가의 폭력적 야만성을 놔둘 수가 없기에 탈국가 마을주의를 건설하는 일에 초점을 두면서도 지방자치분권을 강화하는 일을 하는 사람과 국가를 혁신적으로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야하고 동아시아 평화체제도 당연히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탈국가 마을주의를 건설하는 일에 초점을 두면서도 동시에 각기의 층위에서 혁신하는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면서 복잡계적 진화발전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규호
촛불을 평가할 때 귀에 들어왔던 부분은, 누군가는 집회 끝나면 청소를 하고 누군가는 경찰차에 스티커를 붙이고 누군가는 떼고, 이것은 관객이나 손님이 아니라 주인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운동의 에너지는 스스로 주체가 되고 주인으로서 각성하고 그런 쪽으로 의식이 진화하는 부분이 있다고 보는데, 4대강이나 탈핵이 다 정치와 제도를 바꿔야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최근에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대선, 개헌 등 숨가쁜 정치일정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시민들이 아닌 대선후보자가 주인공이 되고 다시 시민들은 관객이 되고, 지지하는 편에 줄을 서거나 지지자가 되는 것이다. 모든 여론이 정당의 유력후보, 인물 중심으로 시선을 끌어모으면서 거기에 시민들의 판단을 강요할 거다. 촛불 이후 새로운 운동을 기획하는 분들이라면 시민들이 주인으로서 스스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광장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광장은 계급, 성별, 나이를 떠나서 다 뒤섞이고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용광로 같다고 생각된다. 태극기 쪽도 마찬가지다. 그들 나름대로 각자 주인의식, 발언하고 싶은 마음 들이 있는 거다.
이무열
광장에서 나오는 이야기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심리적 기제도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 일상의 상황이 광장으로 오고 있다. 그 안에서 찾고 있다. (꼬뮨이거나 등등) 광장이 끝나고 나서 그 경험을 잊혀지지 않게 받아줄 수 있을까. 그게 큰 숙제 같다. 그 경험을, 일상에서와 다른 자기를 찾을 수 있는, 주인이 될 수 있는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줄 건가.
생명운동도 시간과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주체적 사고를 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사안에 대해서 접근할 건가 말 건가가 아니라 방법에 대한 얘기가 되어야 한다. 이건 접근해선 안 되는 문제라고 한다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토대나 환경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대선이라는 객관적 상황을 바꿔낼 힘이 있는가. 없다고 생각한다. 주체적으로 생명운동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나와야 하는데, 단지 대선 문제 하나만 가지고 우리가 얘기할 게 맞다 아니다를 논할 수는 없다. 생명운동이 시공간 속에서 탄력적으로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김용우
속도감에 대한 얘기를 안 하고 있다. 국가에 대한 문제를 어떤 로드맵과 흐름 속에 정리해야 하는지. 새로운 사회운동을 얘기하는데 정작 이미 현존하는 과제에 대한 얘기를 안 하고 있다. 근대 국가 문제, 근대 가치(자유 평등 우애), 근대 사회경제체제 등에 대해, 동의하는가. 기존 담론 구도 안에서 되는 건 맞지 않다.
임진철
제 경우 탈국가마을주의 전략을 중심에 놓고 볼 때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다층적 국가리모델링 전략을 한달지, 그런 것들을 합의해낸 상황에서 국가를 연방제, 지방분권제로 한달지 등. 그런 목표가 없이 하다 보니 자꾸 삼투압 현상에 의해서 국가주의전략에 넘어가게 된다. 마을공동체론에서 아예 마을공화국 논쟁으로 차원을 높이면서 치고나가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 든다. 아니면 국가주의프레임에 계속 포섭되고 빨려들어가게 된다.
유정길
구체적으로 국가주의적이지 않은 접근방식, 이 국면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의 문제다.
임진철
촛불의 에너지를 어떻게 전환시킬 것인가 고민을 하는시기에, 민주화운동30주년추진위원회 관계자와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가졌다. 민주화운동30주년추진위원회에서 민회운동을 하겠다고 하면서, “서울시 단위에서 지역민회를 하겠다. 1년 행사를 하겠다”라며 내 생각을 묻기에, “시군구 단위의 민회운동을 전개하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다. 6월항쟁때에도 당시의 주역들은 시군구단위로 조직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민주화운동을 해나가려고 시도했다.그러나 운동의 열기가 식고 나니 운동의 에너지는 정치권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도 촛불의 에네르기를 시군구단위의 민회운동으로 가자고 했는데 다시 대선국면으로 가면 블랙홀처럼 정치권으로 빨려갈 수도 있다. 만약에 정치적 의미의 민회운동만으로 가게 되면 어떤 정치세력들에 의해 또 적절히 활용되고 없어질 가능성이 많다.그러므로 우리 같은 생명평화운동 입장에선 전환마을, 전환도시운동으로, 지역 단위에서 공동체적, 영성문화적 차원, 지속가능한 경제 전환 운동으로 가면서 정치적 민회운동과는 ‘서로 따로 또 같이’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평화운동이 정치적 의미의 민회운동과 협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얘기를 나눈적이 있다. 제가 생태마을을 네트워킹하는 일을 하는 이유는, 대안학교운동이 왕성하게 벌어지다가 일정단계에서 주춤하게되고 공교육혁신운동이 거세게 일면서 함께 투트랙으로 가는것에서 인사이트를 얻었기 때문이다.독립 생태마을 운동도 일정부분 발전하게되면 기존 마을과 기존도시를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으로 전환(탈바꿈과 재도약)시키는 전환마을(도시)운동과 함께 투트랙으로 가야한다고 보기 때문에 그러한 준비를 해야하고 함께 시너지를 내야한다고 보기때문이다.
정규호
사람들의 관심은 광장에 모였던 에너지가 어떻게 마을이나 생활권 단위로 이어지게 할까인데.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생활로 가까이 갈수록 익명성이 사라지면서 조심스러워진다. 운동가들이 하는 기획적 발상이 아니라 섬세하게 다가가야 한다.
민회와 관련해서, 직접민주주의도 물음표를 가질 필요가 있다. 생명평화 가치를 지향한다고 할 때 시민 개개인이 갖는 요구를 왜곡되지 않게 실현되도록 제도를 만들면 그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자본주의에서 탐욕과 이기심, 경쟁에 다 노출되어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참여의 장이 열렸다면 어떻게 갈까. 장담할 수 없다. 지방자치제가 다시 시작되면서 열린 공간을 지역의 기득권 유지들이 장악해 왜곡하는 모습을 많이 봐 왔다. 직접민주주의가 원리상으로는 좋지만 우리나라 현실 속에서 민회를 만들거나 할 때 지금보다 앞선 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의식의 진화, 마음의 준비, 실력이 되지 않고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민회와 직접민주주의가 바로 답인가? 물음표를 가질 필요가 있다.
김용우
촛불집회 중에 시민의회 세우자고 하다 실패했다. 민회는 근대화 과정에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도구이지 탈근대적 주제는 아니라고 본다. 민회가 독립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촛불집회가 끝났는데 원주에서는 서울 와서 모였던 사람들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있다. 정치 얘기 아닌 소소한 얘기. 꼬뮤니티에 대한 열망이 있다고 저는 본다. 지금 외롭고 힘든 문제가 꼬뮤니티에 대한 열망과 연동돼 있다고 본다.
운동은 무언가를 제시해야 하는데, 예전처럼 계몽적 제시, 리딩은 아니다. 남는 것은 매개와 매체일 수밖에 없다. 문화운동으로서. 사회적 담론으로, 무엇을 제시할 거냐. 어떻게 하는 것이 인간이 성숙하고, 잘 사는 건지. 우리가 제시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이런 얘기들을 어떻게 매개와 매체를 통해서 정리할 것인가. 앞으로 남는 운동일 거란 생각이 든다. 광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없다. 정치적으로 하기 시작하면 그 길밖에 없다. 권력을 바꿔야 하고 대선 프로그램.. 지방자치.. 이런 프로그램. 그게 아니라면, 광장을 꼬뮤니티, 새로운 문명운동의 현상으로 본다면 그것에 대한 대응 방식으로 새로운 비전을 찾아가는 방식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