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남기는 음식자국을 줄일 수만 있다면
– 버리기엔 너무 괜찮아. 함께 나누는 독일 푸드셰어링과 공정나눔냉장고
글 김미수 (생태 순환의 삶을 사는 실천가·에코 저널리스트, my-ecolife.net)
내가 먹는 음식이 바로 나 자신이요, 먹지 않고 버리는 음식이 내가 세상에 남기는 ‘음식자국(Foodprint)’이다. 하루 세 끼를 먹고 살면 적어도 하루에 세 번은 선택하게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머지 없이 행복하게 – 음식구조원(Restlos Glücklich – die Lebensmittelretter)>에서 부퍼탈 푸드셰어링의 다니엘라 씨가 한 말처럼 “과연 내가 이제는 지속가능한 소비와 식사를 하고 싶은지, 아니면 지금처럼 넘치는 사회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계속 이대로 소비하고 먹을 것인지”를.
먹는 데 아무 문제없는 식료품을 쉽게 버리는 사람 vs. 싸게 사 먹는 사람
2015년 발표된 세계자연보호기금(WWF) 연구논문에 따르면 해마다 세계에서 연간 13억, 유럽에서 1억 톤, 독일에서 1천850만 톤의 음식물(독일 국민 연간 총식품소비량 중 1/3 )이 버려지고 있다. 이 중 42%는 생산에서 유통까지의 과정에서, 나머지 58%는 소비 과정에서(일반 가정과 대형소비단체-요식업∙숙박업∙단체급식 등을 모두 포함) 버려진다. 소비 과정에서 버려지는 양 중 39%에 이르는 723만 톤이 일반 가정에서 나오는데, 이를 환산하면 독일인 한 명당 해마다 87.7㎏의 음식물을 버리는 것과 같다(2012년). 2012년 슈투트가르트 대학 연구논문에서 제시한 네덜란드 73㎏(2010년), 영국 71㎏(2009년)과 비교해 봐도 많은 양이다.
아마도 서유럽 국가 중 독일의 식료품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축에 속한 탓일까? 확실히 독일에서 멀쩡한 음식물을 버리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그동안 쓰레기 수거통을 이웃과 함께 쓰는 경우가 많았던 탓에, 이웃이 먹을 만한 식료품을 쉽게 버리는 모습을 여러 번 보게 됐다.
이용할 수 있는 식품이 버려지는 곳은 비단 일반 가정뿐만이 아니다. 유통업체의 기준에 맞지 않는 농작물은 아예 수확하지 않고 밭에 그냥 버리고, 수확 후에도 크기나 모양이 규격 외인 작물은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또 버린다. 일부 식료품은 유통과 판매과정에서 변질되거나 유통기한에 걸려 버려진다.
그런데 WWF논문의 생산에서 소비까지 아우르는 ‘유럽연합 국가별 인구당 총 식품의 부패와 낭비량’을 보면 네델란드(1위)나 영국(6위)과 달리 독일은 오히려EU평균 이하로, 앞서 언급한‘인구당 일반가정의 음식물쓰레기량’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는 그나마 독일이 식품생산에서 판매까지의 과정에서는 낭비를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반증일까? 어쨌든 내 경험에 의하면 많은 농가나 상점에서는 여러 이유로 식품을 폐기처분하지만 그래도 몇몇은 다른 방식으로 판로를 개척하기도 한다.
남편이 대학을 다녔던 작은 도시 에베르스발데에는 독일 전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규모가 큰 유기농 공동체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알이 작은 감자나 부러진 당근 등 일반적인 경로로 판매가 불가능한 채소들을 수확 철에 잠깐씩 염가에 ‘가축사료용’으로 판매했다. 우리 부부는 크기와 모양만 좀 다르지 먹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유기농으로 생산된 이 채소들을 사다가 우리 스스로를 먹여 키웠다.
또 딸기처럼 물러지기 쉬운 과일을 생산하거나 농작물 크기가 아주 들쑥날쑥해 수확해 봤자 별 벌이가 없겠다 싶은 농장 중에는 소비자가 직접 방문해서 수확해 가는 이벤트성 특별 판매를 하는 곳도 있다.
지난해 시댁 어른들이 이런 감자 농장을 발견해 20㎏ 자루당 단돈 5유로(약 6천580원)만 주고 감자를 직접 캐 사왔다. 그 양이 집집마다 겨우내 먹고도 남을 정도여서 몇 자루는 우리 집에도 나눠 줬다.
유통기한이 임박했거나 신선도가 떨어진 식료품을 정기적으로 반값에 떨이로 판매하거나 아예 공짜로 주는 경우도 있다. 내가 단골로 가는 유기농 가게와 마트 한 곳에서 이런 정책을 펴는데, 며칠 지난 빵이나 과일·채소, 때로는 유통기한이 짧게 남은 가공식품까지 폐기하는 대신 싸게 팔아 소비자들을 사로잡기도 한다. 에베르스발데에 살던 지인 중 하나는 지역 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폐장시간에 맞춰 매대를 돌며 팔고 남았거나 판매 중 손상을 입은 채소 등을 공짜로 얻어 와 부엌살림에 보태곤 했는데, 양이 많을 때는 내게 나눠 주기도 했다.
작년 가을 이웃집에서 멀쩡해 보이는 감자를 봉지째 버린 것을 따로 챙겨 뒀다가 올봄 우리 집 텃밭에 씨감자로 썼다. (ⓒ 김미수)
2020년까지 음식물 낭비를 절반으로 줄이는 게 목표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대형 슈퍼마켓에서 팔다가 남은 재고 식품을 폐기하는 대신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섭취불가능한 상태의 것은 동물 먹이 또는 퇴비로 사용하도록 하는 ‘대형마트 재고 식품 폐기 금지법’이 통과되었다.
독일에는 아직 이와 같은 법적 제재 조치는 없지만, ‘2020년까지 음식물 낭비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나름의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독일 식량농업부는 2012년부터 ‘추 구트 퓌르 디 톤네(쓰레기통에 넣기에는 너무 괜찮은)’라는 사업을 시작해, 여러 시민단체들과 협력하여 음식물 폐기와 낭비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교육 및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 차원의 노력 외에도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는 음식물 낭비를 줄이는 사회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들이 있다.
기부받은 식품을 저소득층에게 무상으로 나눠 주는 타펠
올해로 창립 20년이 되는 시민단체 ‘타펠(밥상)’은 마트와 식품업체 등에서 식료품을 기부 받아 저소득층에게 무상으로 나눠 준다. 기부 받는 식품들은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살짝 지난 가공식품, 신선도가 떨어진 빵·채소·과일, 표준 유통규격에 맞지 않는 농산품 등으로 사람이 먹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들이다.
독일 전역에 900개 이상의 지부와 3천 개 이상의 나눔센터가 있고, 6만 명가량의 자원활동가가 일하고 있다. 이를 통해 타펠은 150만 명의 가난한 이들을 정기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나눔센터에서 식품을 직접 나눠 주거나 식재료로 식사를 만들어 제공하는 등 지원 형태는 각 지부의 역량에 맡긴다.
기본적으로 타펠은 자신의 소득상태를 문서로 증명 가능한(예를 들어 실업급여나 정부지원금을 받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렇지만 부모의 지원도, 학자금 대출도 받지 못하는 일부 대학생이나 갑자기 생겨난 난민들처럼 문서 증명은 불가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빈곤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도 열려 있다.
타펠의 자원활동가가 기증받은 음식을 차에 싣고 있다. 저소득층은 무상으로 음식을 받을 수 있다.
[사진 출처: 다그마르 슈벨레(Dagmar Schwelle), 독일 타펠(Bundesverband Deutsche Tafel e.V.)]
누구든지 함께할 수 있는 푸드셰어링과 공정나눔냉장고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독일에서 인근 국가로 퍼져 나가고 있는 ‘푸드셰어링(음식나눔)’은 독일 내에서만 현재까지 3천868톤에 이르는 버려질 뻔한 음식물을 구해 냈다. 푸드셰어링은 타펠과 달리 수혜 계층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단지 남은 식품을 누구라도 필요한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에 중점을 둔다.
개인이나 가정은 잔치하고 남았거나 휴가를 떠나느라 집에 남겨질 여분의 음식을 푸드셰어링 홈페이지에 등록해 인근의 필요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 또 활동가들이 협력단체나 요식업체 등에서 대량의 식품을 기증받아 필요한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일례로 내가 사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푸드셰어링 할레’는 지역 농부에게 상추 수백 통을 기증받아 시내 중심가에서 무상 배포하는 이벤트를 벌인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는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한 초창기라 운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지, 상추를 받아가면서도 공짜라는 말을 믿지 못하고 계속 가격을 묻는 시민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공정나눔냉장고’가 있다. 보통 24시간 접근이 가능한 곳에 위치한 이 냉장고는 시민들이나 활동가들이 남은 음식을 넣어 두고 필요한 이라면 누구나 와서 원하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 가져갈 수 있는 구조이다. 베를린(17곳)이나 함부르크(11곳)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알고 보니 내가 사는 지역에도 벌써 세 곳에 공정나눔냉장고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 중 2곳은 주변의 제약으로 냉장은 하지 않고 선반처럼 이용하고 있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 보였다. 사실 생태적인 부엌살림을 위해 우리 집에서는 2005년부터 냉장고 사용을 멈췄는데, 음식 낭비를 막기 위해 독일 곳곳에서는 냉장고가 돌아가고 있다니 어쩐지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미있는 상황이란 생각이 든다.
푸드셰어링 할레에서 운영하는 공정나눔냉장고 중 하나. 누구나 원하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 가져가거나 넣어둘 수 있다.(ⓒ 김미수)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 가난한 이도 부유한 이도 음식물 버리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남기는 음식자국은 단순히 쓰레기를 버린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음식물쓰레기 속에는 공들여 키워낸 농부의 땀과 마음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쓰인 다양한 에너지 자원과 이로 생겨난 여러 환경 자국들이, 내 가족을 위한 식량생산을 포기하고 수출용 사료생산으로 전환해야 했던 제 3세계 생산자의 눈물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 세 번 어떤 선택을 하고, 살면서 얼마만큼의 음식자국을 남길지,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고 후세에 남겨줄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는 온전히 우리 스스로의 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