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 생명살림의 길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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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 생명살림의 길을 다시 생각한다

 

정규호(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

 

 

 

우리에게 4월은 이제 모순이자 역설이 되었다. 만개하는 꽃, 물오른 나뭇가지, 새롭게 돋는 초록 잎새, 그래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이라고 한 4월 한가운데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라는 끔찍한 ‘죽임’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했고, 그때부터 ‘생명’이 안전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시대적 소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세월호 참사는 과연 우리가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지, 국가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이 충격과 분노의 마음을 삭히면서 우리나라가 완전히 탈바꿈하기를 소망했다.

 

벌써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지난 1년은 그냥 멈춰버린 시간이었고, 그래서 다시 맞은 그날의 아픔은 더욱 생생하고 절절하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밝혀진 게 없는 현실과 진실에 대한 접근을 집요하면서도 치밀하게 가로막고 있는 권력자들의 은밀한 움직임만 확인했다.

 

참사의 원인과 책임은 탐욕에 눈먼 선박회사와 책임을 방기한 선장과 선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채 거짓으로 일관해 온 정부, ‘성역 없는 진실 규명’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없던 일로 해버리는 대통령과 정치인들, 진실보도의 사명을 망각한 언론 모두가 공범자다. ‘돈 보다 생명’이라는 간절한 외침의 한편에서 ‘설마 또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나는 괜찮을 거야’, ‘별 뾰족한 수가 있어?’, ‘그만하면 됐어’, ‘뭔가 숨은 의도가 있어’라는 목소리를 스멀스멀 내고 있는 사람들, 형언할 수 없는 비통함을 가슴에 품은 채 더 이상 이런 참사가 우리 사회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유족들의 간절한 바램조차 ‘인양비용’, ‘보상비’ 같은 돈 문제로 돌려서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외면하려는 사람들 모두가 세월호 참사의 공모자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는 결코 우발적 사고가 아니다. 돈을 앞세워 우주의 무게와도 같은 생명을 가벼이 해온 우리 사회의 가치와 제도, 시스템 전반의 문제가 총합되어 만들어낸 죽임이자 ‘타살’이다.

 

안타까운 희생을 잊지 않는 것, 참사의 근본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찾아 처벌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제2, 제3의 참사 가능성을 막아낼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빌리자면 돈 중독에 빠져 ‘영적 치매’ 상태에서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삶의 모습 자체가 바로 또 다른 ‘세월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인양해야 할 진실은 깊은 바다 속에 침몰한 선박에만 있지 않다. 바다보다 더 깊이 익숙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 속에 자리하고 있는 가치와 생활습관, 문화와 제도 속에 숨겨진 무거운 진실을 찾아내고 드러낼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는 1년 전에 일어난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자 가까운 미래의 예견된 재난이다. 지난 1년의 과정을 되돌아보면 앞으로 또 어떤 끔찍한 재앙이 우리의 생명을 무참히 앗아갈지 두렵기만 하다. 그렇다고 ‘오늘도 무사히’라는 불안한 심정으로 살아가는 삶을 우리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는 없는 일이다.

 

사고 가능성이 높은 ‘낡은 배’는 그냥 둔 채 ‘선장’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듯이, 말장난에 그친 ‘국가 대개조’가 아니라 생명이 온전히 꽃피우는 사회를 향한 ‘새로운 나라 만들기’에 온 사회의 지혜와 역량이 모아져야 한다.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무궁화를 심고 애국가를 부른다고 해서 좋은 나라가 되지는 않는다. 특히 ‘스캔들’이라 부르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권력형 비리가 반복되는 가운데, 문제의 당사자들이 뻔뻔하게 국민들을 계도하겠다고 나서는 참담한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

 

농사짓는 일에서 밥 짓는 일까지 생명살림과 관련된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적정 시기를 놓쳐버리면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또 다른 문제가 잉태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사회 전체가 ‘임계 상태(critical state)’에 와 있다. 그동안 우리가 익숙한 채 살아온 사회와 문명의 시스템과 체질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내야 하는 ‘마지막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저성장의 고착화와 양극화 확대, 부채의 증가 등으로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지고, 특히 극심한 노인 빈곤과 청년실업 등으로 부모와 자녀 세대가 동반 추락하는 상황을 맞게 되면, 사활을 건 경쟁과 갈등의 통해 돈의 위력은 더욱 커질 것이고,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생존주의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결국 ‘파국’과 ‘전환’ 사이에서 생명이 생명답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시대 어른들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진실로 잊지 않는 길은 아픈 기억의 보존이나 회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매 순간의 삶 속에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던져준 ‘생명’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의 삶과 연결시켜 내는 것이다. 그래서 잊지 않는 일이 ‘되살려내는 것’이 되고 ‘부활’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아야 한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변화 시킬 수 없는 현실을 자각한 사람들이 먼저 생명살림의 일에 나서야 한다. 이 일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생명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과 높은 책임감을 가진 양식 있는 시민들이 나서서 분노와 망각을 넘어서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일에 나서야 할 때다.

 

경쟁과 속도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생명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틈과 여백, 쉼과 치유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획득한 생존의 비결인 공감과 협동의 능력을 회복하고, 생활에 밀착된 작은 변화의 거점들을 만들어냄으로써, 결국에는 생명을 죽임으로 몰아가는 돈과 권력, 정보와 자원의 흐름과 방향을 바꿔내야 한다. 이 점에서 최근 우리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는 ‘마을’, ‘공동체’, ‘협동’, ‘살림’의 가치들도 새로운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찍이 우리사회에 생명운동의 지향을 밝힌 ‘한살림선언’에서 문명 전환의 비결을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새로운 생활양식의 창조에서 찾은 것도 같은 이치다.

 

해마다 다가오는 4월을 더 이상 허망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맞을 수는 없다. 세월호 참사 1년이 되는 날, 세월호의 아이들이 다시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날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요?’, ‘달라지기 위해 정말 어떤 노력을 했나요?’ 생명이 안전한 사회를 미래 세대에 물려주는 일이야말로 세월호 아이들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자 유족들의 진실된 마음을 이어가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