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vision)에 대해

우리는 기분이 좋을 때, 흥이 날 때 신나다, 신명이 난다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 신난다. 신명이 난다는 말의 원뜻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요. 이 말이 중국에 도 없고, 일본에도 없다는 말도 있고 보면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와 관련 이 있는게 틀림없지요. 그런데 영어에서의 vision이란 말은 신이나 다른 영험한 존재와 영적으로 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도 꿈을 꾸듯 신을 마주보며…. 이런 vision의 체험은 북미 인디언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지요. 특히 대평 원의 인디언들은 성년식 때는 물론이고 인생에 중요한 순간마다 vision quest를 해 서 신의 가르침을 구합니다. 

 

대개 산이나 들판의 조용한 곳에 혼자 남아서 단식하며 기도하는 형태로 vision quest가 이루어지는데, 이따금 정화움막에서 정화할 때 이 vision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북미 인디언들의 이 vision quest와 관련해서 주목할 점은 그 신명의 내용을 날을 잡아 사람들한테 공개하는 절차가 있는데, 그때 신명의 내용을 춤이나 노래로 표현 한다는 것입니다. 대개는 vision 자체에 그러한 춤이나 노래의 단초가 들어있는게 보통입니다만, 어쨌든 신과의 영적인 대화는 춤과 노래와 뗄레야 뗄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주술사의 치료도 그의 춤과 노래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약초는 보조적인 물질에 불과하지요. 

 

그리고 인디언들은 어떤 의례가 있거나 축제가 있을 때면 자신의 vision에서 본 춤이나 노래를 부릅니다. 절대로 아무의미없이 몸을 흔들거나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춤과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모든 존재와 하나가 되고 무아의 경지로 들어가는 거지요. 저는 이 vision을 신명이라는 말로 옮깁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신난다, 신명이 난다는 말이 본래 무당들이 사용하는 말인데다, 신이 오른다는 말에서 보듯 신내림, 곧 신과의 만남을 그 안에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런 신명의 순간 무당들은 으레 춤과 노래를 춥니다. 요즈음은 이 신명이라는 말이 타력에 의존한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물질 생활에 젖었다는 것도 되고, 우리들 내면의 영적인 감수성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되겠지요. 

 

고대 우리조상들의 풍류는, 그렇게 모든 존재와 더불어 하나가 되는 내면의 영적인 감수성에 바탕한 문화입니다. 결코 흥청망청하는 그런 것이 아니지요. 오히려 그것은 갈등과 경쟁을 넘어서 평화를 위한 조용한 기도에 가깝습니다. 신명은 거룩한 것이지요. 자연농 짓는 한 아우님이 자신을 들판에 심어달라고 외치는 씨앗들을 심으며 신명에 젖어 춤과 노래를 부르듯…. 

 

* 이 글은 인디언의 가르침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배우고자 하는 다움카페 <바람이 꽃이 되어>에서 검은 호수 서정록 님이 쓰신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