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의학 서적이었던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서문에는 “기후 풍토와 생활 풍습은 같다”, <동의보감>에는 “사람의 살은 땅의 흙과 같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신토불이란 표현이 있는 그대로 등장한 것은 중국 원나라 때 보도(普度) 법사가 펴낸 <노산연종보감>입니다. 법사는 ‘신토불이’란 제목의 게송에서 “몸과 흙은 본래 두 가지 모습이 아니다(身土本來無二像)”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하느님이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들었다는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이 태어난 땅과 그 사람의 몸은 둘이 아니다”라는 사고방식은 인간들에게 보편적인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철, 제 지역에서 난 먹을거리를 먹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입니다. 세계 각 지역마다 땅으로 상징되는 그 지역의 생태 지리적 특성에 맞게 민속 문화나 먹을거리가 발전한 것도 지당한 일인 것이지요.
풀이 나지 않는 극지방의 에스키모들은 육식을 위주로 식생활을 합니다. 게다가 몸이 썩지 않는 지방의 특성에 맞게 죽을 때가 되면 제 발로 백곰을 찾아가 잡아먹히는 풍습(그레고리 펙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에 이 장면이 나온다)도 있습니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극단적인 문화 풍습이 생긴 것이지요. 더운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이슬람 문화에서 돼지고기를 못 먹게 했던 것도 신토불이적인 사고방식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유럽인들이 육식 위주의 식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유럽의 땅은 워낙 척박해 거기서 자란 거친 풀을 그대로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탓할 것은 이런 자연스러운 식생활이 아니라 유럽인의 탐욕일 것입니다. 육식의 세계화는 그 탐욕의 세계화, 보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우리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워낙 땅이 비옥해서 여기서 나는 무엇이든 사람들이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곡채식 위주의 식생활이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던 것이지요.
문제는 유사 이래 곡채식 위주의 식생활이 문화로 정착된 곳에서 식생활의 서구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해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정착된 식생활의 자연스러움이 깨지게 됩니다. 문화는 단순히 정신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몸으로도 유전됩니다. 이것은, 곡채식 위주의 식생활 문화가 정착된 동아시아 사람들의 장이 유럽인의 그것보다 길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옥한 땅 – 부드러운 풀들 – 곡채식 – 몸속 장의 길이, 이처럼 흙과 사람의 몸은 둘이 아닙니다. 곡채식에 길들여진 몸을 가진 사람들이 육식을 하면서 각종 암, 심장질환 등 성인병이 만연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땅에서 난 것이 우리 몸에 가장 맞습니다.
문화의 교류라는 측면에서는, 음식문화의 세계화, 퓨전 음식의 등장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본주의 세계시장 일원화라는 악마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냉정하게 살펴야 할 것입니다(따라서 문화의 교류라는 차원의 문제와 물질 순환의 문제를 정확하게 분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구 생태론의 한 분파인 생물지역주의(bio-regionalism)에서 식생활뿐만 아니라 옷의 재료(의생활), 집의 재료(주생활)도 그 지역에서 난 것을 활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 신토불이의 서구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천도교중앙총부 편, <신사성사법설>, 1988
– 김종철 편, <녹색평론선집1>, 녹색평론사, 1992
– 박현, <나를 다시 하는 동양학>, 바나리, 1999
– 김욱동, <한국의 녹색문화>, 문예출판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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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 <동학이야기>, 솔,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