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이 한울을 먹는다”라는 말입니다. 해월 선생님 말씀입니다. 동학에서는 모든 만물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거룩한 존재라는 것이지요.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더 나아가서는 생물이 아닌 모든 물건들도 거룩한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고 말합니다.
<식물의 사생활>과 같은 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기뻐도 하고 슬퍼도 하고 고통을 느끼기도 합니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살아 있다는 사실이 현대과학으로 증명되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동학에서는 더 나아가서 생물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과 물건, 무생물조차 살아 있으며, 한울님을 모신 거룩한 존재라고 합니다.
요즘 채식이 붐을 이루면서, 육식을 하는 것을 보고 동물의 분노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현대과학의 성과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의 분노도 먹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우리에게는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해월 선생님의 “以天食天”이라는 이 말씀은 모든 만물이 한울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한울이 한울을 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르면, 먹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먹느냐, 그리고 자신을 먹고 살게 해준 세상, 천지만물, 천지부모의 은혜를 어떻게 되갚을 수 있을까(反哺之敎)가 문제가 됩니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약육강식의 논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거룩한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세계사상사에서 이런 예리한 통찰은 전에 없었습니다. 생태주의에서도 또한 물질 순환이나 공생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지만, 물질순환의 종교적 차원, 생명세계의 성화(聖化)까지는 언급된 바가 없었습니다. 과학과 종교의 통일이라고나 할까요. 동학사상이 세계사상사적 의미를 갖는 것도 이 이천식천의 생각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