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근대는 신적(神的)인 영역, 즉 성(聖)의 세속화를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재발견을 특징으로 하는 르네상스 시절부터 시작된 서구 근대의 계몽주의는 교회 없는 사회, 종교 없는 도덕, 신학 없는 학문, 신 없는 인간을 목표로 진행되었습니다. 인간의 삶 속에 신적인 영역을 배제하고 인간 독자의 세계를 구축해 왔던 것입니다. 신이 창조한 자연의 신비를 거둬내는 과학기술의 진보는 계몽주의의 지향점을 정확히 반영하면서 인간에게 풍요로운 미래를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의 실현이 기계론와 요소론을 기본으로 하는 산업문명으로 드러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동학(東學) 사상이나 운동은 서구 근대의 계몽주의와는 정반대의 운동방향, 즉 세속과 일상을 성화(聖化)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사람을 하늘처럼 여기라 하고(事人如天), 밥 먹고 똥 싸고 잠자고 일하는 일상 속에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다(日用行事 莫非侍天主也) 하고, 모든 일, 모든 물건이 한울님(物物天 事事天)이라 합니다. 천지만물 속에 거룩한 신성(神性)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렇기 때문에 천지만물 모두를 공경해야 한다고 합니다. 생명운동은 동학의 문제의식과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아 일상의 성화를 운동의 지향으로 삼습니다.
서구 근대 계몽주의가 인간의 물질적 풍요를 위해 만물을 도구화했다면, 생명운동은 만물이 가진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서 공경함으로써 인간 자신의 삶을 성화시킵니다. 그리하여 인간과 자연, 만물이 조화로운 삶을 실현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