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아니아 프리타운 입구, 빨간 바탕에 노란색 세 개의 동그라미가 크리스티아니아의 상징이다.
흔히 북유럽을 복지강국이라고 표현한다. 북유럽은 복지뿐 아니라 금융위기로 세계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도 튼튼한 경제를 보여줬기에 또 다른 경제강국이라고도 불린다. 또한 일각에서는 한국 복지정책의 방향을 북유럽 사회보장제도와 유사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만큼 이제는 미국식 경제와 다른 경제·사회 제도에도 눈을 돌리는 추세이다.
북유럽은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를 일컫는 지리적인 용어이다. 그중 눈에 띄는 국가는 덴마크이다. 그 이유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작은 땅(남한의 절반가량)에 자원도 상대적으로 적지만 세계대전이 있을 당시에는 농업협동조합으로 위기를 극복했고, 이후에도 핵발전소 반대운동으로 전 세계에서 풍력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또한 행복지수, 사회신뢰도가 가장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덴마크 사회는 구성원과 국가의 합의로 육아, 교육, 노동, 노후보장 등 사회제도가 잘 구축되어 있기에 외부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덴마크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덴마크에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고 제도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도 많다. 그중 하나가 자유의 문제이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한복판에는 조금 더 자유롭고,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기를 원하는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 바로 크리스티아니아 프리타운이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곳
크리스티아니아는 녹지가 풍부한 지역을 끼고 형성되어 있다.
크리스티아니아는 코펜하겐에 있는 프리타운(자유지구)이다. 이곳은 건물 한 채 정도의 공동체가 아니다. 크리스티아니아의 면적은 85에이커(약 10만 평)로 넓다. 상상해보라. 서울 명동 한복판에 자치적인 규율과 자체 국기를 만들어 1000명 이상의 사람이 공동체를 만들어 살고 있다면 어떨까. 크리스티아니아가 위치한 지역은 녹지뿐 아니라 강도 끼고 있기에 개발에 적합한 곳이다. 서울에 비유한다면 한강을 끼고 있는 금싸라기 땅 같은 곳이다. 하지만 개발하기에 딱 알맞은 이곳은 높은 빌딩 하나 없이 고요하다.
이곳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무려 40년이 넘었다. 1968년 경 크리스티아니아가 위치한 곳은 버려진 군대 기지였다. 그리고 당시는 청년운동 등 문화운동으로 스쾃(건물이나 공간 무단점거)이나 대안적인 움직임이 활기차게 있었다. 당시 공동체적 삶과 또 다른 자유를 추구한 많은 이들에게는 그들의 꿈을 실현시켜줄 공간이 필요했다. 이때 한 진보적인 매체에서 “버스 8번을 타고 (이곳으로) 이주하자”라는 글이 실렸다. 이후 젊은이들은 크리스티아니아로 대규모 이동을 시작했고 버려진 공간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이것이 크리스티아니아의 탄생이다.
크리스티아니아로 이주한 사람들의 구성은 다양했다. 집이 없는 노숙인부터 시작해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 이주민, 싱글맘, 동성애자, 그린란드에서 온 부랑민 등 사회적으로 소수자에 속한 이들이 크리스티아니아로 들어왔다. 이때부터 크리스티아니아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자치공동체로 가는 힘든 여정
넓은 땅에 마음대로 들어와 삶의 터전을 이룬 사람들이었기에 정부와 거듭된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70년대 후반 이들에게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섰을 때는 수도세, 전기세 등을 시에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지역을 유지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어서 들어선 정권은 크리스티아니아를 없애고 싶어 했다. 또한 크리스티아니아를 받아들이지 않는 정권일 경우 갈등은 더욱 커져 이곳을 불법으로 무단점유했다는 명목으로 폐쇄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80년대에는 크리스티아니아 내에서 마약 거래가 문제되기도 했다. 이때 보수적인 정권인 경우는 크리스티아니아를 ‘악의 소굴’로 칭하기도 했다.
크리스티아니아 건물 곳곳에 그려진 페인팅
2000년대에 들어서도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보수 정권이 집권한 후에는 크리스티아니아를 재개발하기 위해 법적인 문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결국 2011년 2월에 크리스티아니아가 차지하고 있는 토지 소유권이 덴마크 정부에 있다는 판결이 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즉 이곳에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정부의 땅을 불법점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강제 이주도 일어날 수 있었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평일에도 크리스티아니아에 와서 휴식을 취한다.
저렴한 음식과 맥주, 끊이지 않는 공연과 녹지대 그리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인기 요인이다.
크리스티아니아는 정부와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티아니아가 차지하고 있는 땅을 시정부로부터 7500만 크로네(약 135억 원)에 매입하기로 합의를 한 것이다. 그들은 이만큼의 돈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기금을 모으는 여러 가지 방법을 구상하고 크리스티아니아를 코펜하겐의 독특한 명소로 만들었다.
그들은 민중의 주식(people's share)라는 이름으로 수익금을 모았다. 그리고 크리스티아니아는 자치공동체이기 때문에 국기와 같은 독특한 상징이 있는데 이를 후드티, 각종 기념품으로 만들어 판매해 기금을 모으고 있다.
EU가 아닌 자치 지역을 실현하다
크리스티아니아와 코펜하겐의 구분. “당신의 지금 EU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아니아 입구에는 큰 상징물이 있다. 그 위를 안쪽에서 바라보면 “당신은 지금 EU로 들어가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즉 자신들의 영역은 EU가 아니라는 뜻이다. 크리스티아니아는 EU의 규칙이 아닌 자신들만의 법(rule)을 만들어 40여 년간 살고 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이들은 이주민, 퇴직자, 싱글맘, 노숙자, 청년, 부랑자 및 좀 더 자율적인 공동체를 꿈꾸는 1000여 명이 이곳을 피난처로 여기며 살고 있다. 그들은 이곳을 패배자의 천국(the losers' Paradise)라 칭하는 반면 크리스티아니아를 그 어떤 곳보다도 더 창의적이고 재창조의 가치를 추구하는 곳이라 자신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히피촌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군데군데 칠해진 페인팅과 마리화나의 탁한 연기가 자욱하다. 하지만 이곳에는 프리타운 자치구역이기에 자신들만의 법도 있고 국기도 버젓이 걸려 있다. 이곳에서 지켜야 할 규율은 간단하다. 오토바이나 자동차가 금지되어 있고 마음대로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 마약이나 무기 등도 금지되어 있다. 또한 언론 및 정부와 소통하는 대변인도 있으며 회계업무나 관광객 안내 등과 같이 업무가 나뉘어져 있다.
크리스티아니아는 직접 집을 짓는 경우도 많다. 나무 위에 지은 간이집(트리하우스)부터 빨간 지붕이 인상적인 2층 집 등
다양한 형태와 디자인의 집을 볼 수 있다. 단 집을 짓더라도 자신의 소유는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직접민주주의가 진행되고 있는 점이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들 중 1/3은 프리타운 내에서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1/3은 프리타운 외부인 코펜하겐에서 일을 한다. 나머지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이곳에서 머물고 있다. 각자 하는 일은 다르지만 크리스티아니아 공동체 일원으로 요구되는 것들을 수행해야 한다. 이 중 한 가지가 총회(community meeting) 참여이다. 총회는 크리스티아니아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 자리로 거주자 모두 참석해야 한다. 또한 결정은 만장일치로 진행되기 때문에 모두의 동의를 얻기 위한 설득의 과정이 요구된다. 총회가 열리기 전에는 일상적으로 자치회의를 열어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을 판단한다.
자치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공동체를 위한 시설 및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크리스티아니아 자전거이다.(자세히 보기) 크리스티아니아는 생태 중심적인 공동체를 꾸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이 지역에 들어오면 도보나 자전거로만 이동할 수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자연스레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도 크리스티아니아 내에 만들어졌는데 아이들과 이동하기 위해서 독특한 자전거가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공동체 구성원들을 위한 병원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크리스티아니아가 유지될 수 있는 재정적 배경은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이곳에 머무는 이들은 거주비와 세금으로 매달 5000크로네(약 90만 원)를 내고, 공동체 내에 있는 상점과 협동조합도 분담금을 지불한다. 참고로 공동자금으로 모으는 머니박스는 1년 예산이 58억에 이를 정도로 늘었다고 한다. (한겨레 993호 2014.1월호 참고) 또한 크리스티아니아를 자유를 즐길 수 있는 독특한 명소로 생각하는 이들이 이곳에 와서 지불하는 관광비용이 있다. 1년에 약 100만 명가량의 방문객이 이곳을 방문한다. 이렇게 모은 돈은 세금으로 쓰기도 하고 공동시설(유치원, 병원 등 Common Purse)에 투자하기도 한다.
‘공동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제각각일 것이다. 크리스티아니아를 방문하기 전에는 히피 문화가 강하게 와 닿고 지저분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는데 직접 방문해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들이 직접 손으로 만들고 있는 마을의 모습이 더 눈에 띄였다. 더불어 정성껏 만든 집이라도 이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법을 정해둔 점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덴마크 정부에서 이러한 자치구역을 인정하고 무조건 없애려 하지 않았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다름을 얼마만큼 인정하지 못하는지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양한 사례가 거듭 나올 때 개발보다 다양함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정리·사진 김이경 객원연구원
참고
크리스티아니아 홈페이지 http://www.christiania.org/
히피 공동체 크리스티아니아의 주민 토마스(퍼슨웹)
http://www.personweb.com/articles/292
자유가 별처럼 반짝여라(한겨레21) http://h21.hani.co.kr/arti/PRINT/36117.html
‘자유도시’ 크리스티아니아(시사인)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3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