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 운영중인 청년다양성포럼 미담(미래를 위한 담론)에서는 2021년, 미담에 참여하는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바탕으로 함께 나누고싶은 이야기 주제를 선정하여 5회동안 돌아가며 작은 담소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1회 함께 나눈 이야기를 요약하여 공유하고, 이후 발행할 미담 2기 무크지에 함께 나눈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진아의 담소 모임(2021.09.07.) 두려움에 대하여
(진아) 저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감정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인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순간 내가 두려운 이유가 개인의 책임이기 보다는 사회적 맥락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한 발짝을 내딛기가 두려운 것에는 사회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함께 나눈 기사 링크 : http://okeesalon.org/archives/3096
“대중적 노년기의 ‘불안’은 두 개의 기본 축을 중심으로 번식한다. 폐휴지를 주우며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하는 빈곤한 노년과, 치매에 걸린 채 요양시설의 고립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노년.” –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진아) 이 구절에서 충격을 받았어요. 노후대비는 굉장히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인터뷰에서의 불안이 저의 두려움과도 연결된다는 느낌이 있어요. 늘 미래에 어떻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을 희생해야한다,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살아왔거든요. 내가 두려운 이유는 미래의 삶이 안정적이지 못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되더라고요. 우리는 모두 고물과 폐지를 줍는 노후를 두려워하고 있으니까요.
(진아) 우리나라가 초고령화사회에 접어들면서 노인 돌봄을 위한 정부의 지역사회통합돌봄이 활성화 되었잖아요. 거기서 중요시하는 것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나이들기(Aging In Place) 개념인데, 생각해보면 그것도 돈 있는 사람들 이야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터뷰에서는 홈리스의 삶에 대해서 다루고 있어요. 이런 정책들에는 홈리스의 삶은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홈리스의 평균 연령이 50대라고 하는데, 빈곤으로 인한 질환과 그로 인해 앞당겨질 힘겨운 노년기가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두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의 두려움에 대한 사회적 맥락 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일상의 불안함.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소리) 확실히 일자리를 구할 때에도 가장 걱정되는 것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생각해요. 공무원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는 ‘연금’과 ‘평생 직장’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연금의 경우에는 늙어서도 자기 밥벌이를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평생 직장의 경우에는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이렇게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서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확률이 적다보니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이제 저희 부모님 세대가 정년 퇴직을 많이 하시는데, 진짜 급한 일이 생겨도 이제 너를 도와줄 수 없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압박을 받을 때가 많아요. 이러다 갑자기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우리 집이 많이 힘들어지겠다, 이런 두려움이 많죠. 그래서 직장도 빨리 구하고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들어요. 가정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싶죠 아무래도. 최근에는 이렇게 두려움에 살바에야, 가족에게 짐이 될바에야 죽음을 일찍 선택한다는 이야기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자살이라는 표현이 아닌 ‘자기 선택권, 결정권’이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무서웠어요.
(진아)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자기 결정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폭력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적 맥락을 가리고 자신의 책임을 부각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쓸모없는 사람(상품성 없는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이는 능력주의와도 연결되지 않을까요?
(소리) 취업 준비 단계에서도 그렇지만, 취업에 성공을 한다고 하더라도 회사에서도 그래요. 내가 회사에 쓸모없는 사람이면 어떡하나 고민이 많이 드는데,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일은 없긴하죠. 휴가 다녀오니까 저 없이도 잘 돌아가고, 그런걸 보면 나란 존재가 특별하진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일 자체도 저의 주도성 보다는 정해진대로 하다보니까.
(예림) 사실 회사가 운영될 때 누군가가 잠시 쉴 때 대체로 다른 사람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건데, 내가 없어도 된다는 것에 불안함이 앞선다는 것은 결국 그정도로 나의 고용 자체가 불안한게 아닐까 해요.
(진아)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되게 하는 구조가 문제 같아요. 언제든 집주인에 의해 방을 빼야하는 것이 두려운 것처럼, 고용주에 의해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도 무섭죠.
(소리) 자기가 사는 곳에 일자리가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다들 일이 없다고 하니까, 일자리가 많아 보이는 서울에 있으려고 하는거죠. 그러니까 일자리가 더 없어지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확실히 서울로 상경하는 것의 큰 이유는 ‘비전’보다는 ‘두려움’인 것 같아요.
무사히 안정적인 노후를 맞이할 수 있을까?
(슬기) 함께 읽은 인터뷰 글에서 ‘고물과 폐휴지를 줍는 삶을 왜 두려워 하는가?“이 말이 너무 무서웠어요. 내가 늙으면? 잘 늙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이 들어요.
(진아) 사실 결혼과 출산을 이야기할 때에도, 별로 아직 생각이 없다고 하면 ’다 늙어서 어떻게 하려고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요. 배우자와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건가? 그러면 결혼과 출산도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게 과연 좋은 삶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리) 결혼과 출산을 선택이라고 하기는 너무 어려워요. 혼자 살 때는 안전망이라는게 별로 없잖아요. 대부분의 생활 지원도 다 정상 가족들을 대상으로 하니까.
(진아) 코로나 때문에 고립되었을 때 우리 모두 코로나로 인한 우울감을 겪었잖아요. 어쨌든 우리는 연결되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인 것 같은데, 왜 가족이라는 제도를 통해서만 연결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어요. 가끔 어른들은 그런 연결을 원하면 농촌에 가라고 하는데, 농촌 가면 더 고립될 것 같은데..
(예림) 우리는 기존 논리에 휘말려서 똑같이 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굳이 정해진대로 살아야하나? 내가 그냥 하고싶은대로 사는거죠. 결혼 안 하고 친한 사람들 모여 살고 그런 미래를 상상해요. 그런 다양한 삶의 방식이 나타날 때 안전망이 마련되면 좋겠고요.
(슬기) 확실히 그런 안전망이 필요한 것 같아요.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고 한창 이슈일 때, 서구의 실버타운 다큐멘터리를 많이 방영했어요. 공유 주방도 있고, 방은 따로 쓰지만 함께 사는. 그런데 우리나라는 실버타운 들어가려면 엄청 비싸요. 그런 공간들이 저렴해지고, 또 어쩌면 공공 영역으로 개방되어서 더 많은 분들과 함께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홈리스 분들과도 함께요.
나의 두려움에 대한 사회적 맥락 ② 여성으로서의 두려움, 생명과 존재의 위협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예림) 최근에 20대 여성들이 죽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자살이든 타살이든. 왜 죽을까? 그런 것들이 두려워요. 사람을 만나기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고요.
(슬기) 그런데 점점 여성에 대한 보호가 ‘공정’이라는 문제제기로 인해 많이 약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는 아직 여성에게 안전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죠. 제가 최근에 1인 가구 여성 안심 물품 세트 지원을 받았는데요. 여성 청년 대상으로 연초에 지급을 했는데 남성들이 차별이라고 반발해서, 성별 관계없이 물품이 지급되었어요. 이후에 조금 단촐해졌다고 해야하나? 예전에는 보호 카메라도 있고, 집에 갈 때 귀가길 동행 서비스도 있었는데 최근에는 CCTV가 다 인 것 같아요.
(소리) 제가 듣기 싫은 말 중에 하나가 ‘여성이 살기 위험한 세상이니까’라는 거예요. 그게 왜 당연한 명제가 되죠? 세상이 흉흉하다면 그렇지 않게 만들어야지 왜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의아하죠. 그런 것에 대한 거부감이 들어요. 지금은 정작 여성을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한 여러 범죄들이 별로 대가도 잘 안 치르는 것 같은데 말이죠. 고 해요. 그런걸 보다보니 세상이 흉흉해 라는 말을 안 쓰도록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슬기) 그런 말을 해 놓고 뒤에 따라오는 말이 없으니까 답답해요. 사회를 그렇게 규정해놓고 뒤에 따라오는 말이 ‘그러니까 조심해’라니.
(예림) 우리는 충분히 두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제일 조심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니까요. 연애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죠. 데이트 폭력, 안전 이별, 가스라이팅 최근에 굉장히 많은 사례들이 나오고 있잖아요. ‘왜 우리가 이런 위험을 겪어야 하는거지?’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아요.
(진아) 사회에서 이야기되는 여러 대안들이 여성에게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대안들이다보니 더 어려워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부당함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소리) 얼마전에 발생한 노래방도우미 살인사건이 생각나요. 그 직업이 불법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을 근절하는 것부터 하는게 아니라 그 사람들에 대한 안전망을 만들어야죠.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죽고 나서도 사망 신고 같은 것이 안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직업 자체가 음지화 되어 있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없었던 거예요.
(예림) 성 노동자의 이야기가 생각나는데요, 사람들은 그들이 선택한 것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폭력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선택의 과정에는 사회적 맥락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아예 음지화 되어 있어서 위협에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문제도 있고, 사회적 인식 때문에 낙인 찍히는 두려움이 커서 드러나지 않으려고 하니까 더 음지화 되는 것도 있고요.
(진아) 최근에 성매매집결지 폐쇄를 이야기할 때 가장 반대하는 사람들이 성 노동자 당사자가 아닌 주변 술집 상권 종사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너무 충격이었죠. 성 노동자의 삶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우리 사회가 개인의 빈곤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서 얼만큼 폭력적이고 잔인한 일들을 묵인하고 있는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본적으로 여성의 삶을 착취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 했어요.
(슬기) 성 노동자가 먹여살리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포주, 화장품 판매업자, 의류 판매업자 등. 이번에 영등포역 앞에 성매매 집결지를 없앤다고 하던데, 그 여성들이 더 구석진, 더 위험한 곳으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예림) 그나마 집결지가 있어서 드러났던 것이 아닐까요. 매일 단속을 하지만 그래도 더 안으로 들어가면 그들의 존재조차 보이지 않을 것 같아요. 이런 모든 것들이 쌓여서 두려움을 형성하는 것 같습니다.
(진아) 미래에 대한 불확실, 사회 안전망에 대한 불신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너무 막막해요. 두려움으로 인한 나의 선택이, 또 다른 두려움을 만들어 낼텐데 한 번 극복하고 나면 무뎌지는 것이 당연해지는 것도 무서워요. 자본주의 사회니까, 모든게 납득되어 버리니까요.
나의 두려움에 대한 사회적 맥락 ③ 여성으로서의 두려움, 노동시장에서의 소외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진아) 여성에게는 생명의 위협을 드끼는 두려움도 있지만, 회사에서의 두려움도 있는 것 같아요. 기회가 잘 돌아오지 않는다거나 출산을 하게 되더라도 다시 돌아왔을 때의 두려움도 있고요.
(진아) 또 최근에는 돌봄 노동을 여성에게만 전가하는 것들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해요. 예전에 <채식주의자 뱀파이어>라는 책에서 본 내용이 충격적이었는데요. 여성들은 모성애를 강요받으면서, 재생산 노동만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었는데 재생산 능력까지 떨어진 여성 노인이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돌봄’이고 그래서 돌봄 노동을 그들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지점이 있더라고요. ‘어차피 집에서 놀거, 이런 일이라도 하면 좋지 않겠어?’라고 생각하는거죠. 자신들이 그걸 함으로써 인정받는 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고요.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잘 한다는 정체성들이 내가 능력이 없어지는 상황에서도 그것만큼은 내 능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마음이 아닐까요? 그 맥락에는 나이듦으로써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어진다는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서 당연하게 여성 노인들에게 돌봄 노동을 다 전가하는 사회적 맥락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진아) 여성 청년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직업을 선택할 때에 여성 청년들에게 주어지는 고정된 일들이 있는 것 같아요. 흔히 말하는 '여성스러운 직업'들인 것이죠. 이런 것들도 저는 반발감이 들어요. 그 직업 자체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청년이 취업 준비할 때 그런 제안을 받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성 역할을 구분해서 직업을 강요하는 것도 별로예요.
(진아) 오늘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우리 사회에 많은 부분을 드러내고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이 가진 두려움이 개인의 책임이 아닌 공공의 책임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예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사람들이 그래서 종교에 의지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나의 두려움을 공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니까, 종교 커뮤니티에 의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진아) 오늘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가 앞으로의 삶에서 ‘나는 무사히 ~를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을 주제로 에세이를 써봤으면 좋겠어요. 미래를 상상해봅시다. 막연하더라도 상상하는 일은 좋은 것 같아요.
※ 에세이의 내용과 의제별로 더욱 세분화된 논의 내용은 무크지로 제작됩니다.
예림의 ‘나는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까?’ – 다양한 활동과 직업 사이에서의 고민
진아의 ‘나는 무사히 적응할 수 있을까?’ – 직업활동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소리의 ‘나는 무사히 탈서울할 수 있을까?’ – 나의 삶을 불안하게 하는 서울살이에 대한 고민
슬기의 ‘나는 무사히 탈서울할 수 있을까?’ – 새로운 지역에서의 삶에 대한 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