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 운영중인 청년다양성포럼 미담(미래를 위한 담론)에서는 2021년, 미담에 참여하는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바탕으로 함께 나누고싶은 이야기 주제를 선정하여 5회동안 돌아가며 작은 담소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1회 함께 나눈 이야기를 요약하여 공유하고, 이후 발행할 미담 2기 무크지에 함께 나눈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소리의 담소 모임(21.09.19) 나의 ‘일 ’에 대하여 말하기
(소리) 살아가면서 정말 많은 시간 동안 일을 하잖아요. 여기서 ‘일’이 임금노동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요. 각자 생각하는 ‘일’하면 떠오르는 생각을 오늘 함께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1. 내가 생각하는 ‘일’은?
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말해보자.
소리: 저의 임금노동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자면, 사회적경제 특구 거점 공간이라고 해서 골목 경제를 살리는 일을 해요. 거리를 중심으로 소상공인들의 콘텐츠를 발굴하고 협업 상품을 만드는 등의 일을 하고 있어요. 일이 프로젝트로 구성되어 있고요. 정해진 방향이 전혀 없었는데, 저와 동료가 이 회사에 들어오면서 함께 프로젝트 기획부터 시작했어요. 저는 이전에 공간 기획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해서 기획서를 완성은 했고 그게 받아들여졌어요. 그래서 제가 ‘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개척’이에요. 뭔가 없는 상태에서 일을 만들어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고요. 그 지역에서 우리가 평상시에는 무심코 지나쳐왔던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초반에는 막막하다는 불안감이 컸고,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또 반대로 임금노동이 아닌 일은 집안‘일’인데요. 집에 가면 너무 일이 많아요. 혼자 사니까,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어질러진 방을 치우면 시간이 다 가요. 바닥에 머리카락도 좀 줍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잡념이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런 의미로써는 긍정적이지만 아무도 그 일을 알아주진 않는다는 양면적인 감정이 들 때가 있어요.
진진: 일을 하면서 제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단어는 ‘팀워크와 연대감’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일을 하면서 가장 느끼고 싶은 게 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운동선수(농구선수)를 했었어요. 그때 같이 뛰는 친구들이랑 눈만 마주쳐도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아는 느낌이 좋았어요. 그런 경험을 일에 적용해 봤을 때 팀워크와 연대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제게 연대감은 같이 소속되어 있는 사람을 존중할 수 있음을 뜻하고, 저는 그런 의미의 일을 찾는 것 같아요.
제가 대체로 하는 일들은 임금노동이 아니고요. 임금노동의 경우에는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를 찾는 느낌이긴 합니다. 작년에 저도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곳에서 일을 맡았는데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하지만 성과는 있어야 했고요. 그래서 소리 님이 말한 개척이라는 단어에 너무 공감했어요. 개척이라는 단어는 좋은 의미지만 오히려 제가 겪었던 것은 ‘맨땅에 헤딩’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개척이라는 단어가 실현되려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진아: 저는 일이라고 했을 때 ‘활동’이 생각나요. 저는 일과 생활의 경계가 잘 없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요. 사람들을 만나서 그 사람들이랑 어떤 이야기를 하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일을 하는데, 이걸 업무라고 생각하면 결과를 빨리 도출해 내야하니까 조바심이 생기곤 하거든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제가 하는 일이 지금 당장 명확히 보여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기기도 해요.
저는 저도 모르게 사무실에서 다소 기계적인 사무업무들을 할 때는 ‘업무’를 한다고 표현하고 활동을 할 때는 ‘일’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무의식적으로요. 제가 일이라는 걸 떠올렸을 때 사무적인 업무랑은 분리되는 어떤 것을 떠올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직 그 어떤 것이 무엇인지 방향은 잘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 자체로도 즐거운데 ‘앞으로’를 생각하면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저도 일이 개척과 헤딩 같네요.
슬기: 작년까지는 워라밸을 중시하고 그걸 추구하는 삶 그러니까 제가 원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요새는 정시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있는데도 피곤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9시부터 18시까지 주 40시간 일을 하는데 그 자체가 너무 긴 것 같아요. 그래서 주 4일이 요새 저의 주요 키워드입니다. 주 4일 하고 싶어요. 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주4일’!
소리: 워라밸이 지켜졌는데도 왜 피곤하다고 느껴졌는지 궁금해요.
슬기: 작년에는 피곤해도 효능감이 있었어요. 몰두해서 일을 열심히 했고요. 사람들이 날 힘들게 하지만 재미있고 할만하다고 느꼈어요. 내가 이만큼 해냈다는 뿌듯함 같은 것들이 있었어요. 올해 지금 다니고 있는 곳의 경우에는 처음에 일을 안 줘서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있어요. 일이 잘 없다 보니 원래 공공기관이 다 이런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또, 일이 많을 땐 후다닥 끝내놓으면 위에서 일이 막혀서 진행되지 않기도 해요. 그럴 때는 일의 진척을 기다리면서 책 읽고 논문 자료도 찾아보고 인터넷 서핑도 하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재미없고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졌어요. 그런 날은 집에 와서 체력은 남는데, 정신적으로는 너무 힘들고 피곤해요. 계약직이라서 일을 안 주는 건가 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니까 차라리 너무 바빠서 정신없이 일하다가 퇴근하는 삶이 훨씬 제게 맞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예림: 저는 일이라고 하면 임금이 제일 먼저 생각납니다. 돈을 받는 일만 하는 건 아니지만 뭔가 일이라는 걸 처음 시작한 게 아르바이트라서 그렇게 생각되는 것도 있어요. 어쨌든 무슨 일이든 시간과 내 노력이 들어가는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돈을 바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요. 어떠한 일이든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대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어요.
소리: 대가가 없는 일은 괴로운 것 같아요. 꼭 돈이 아니더라도 보람이라든지 그런 것들이요. 어떤 일이든 확실하게 그런 게 없다면 괴롭겠죠.
진아: 대가는 당연히 너무 기본적이라고 생각해서,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이 조직 안에서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고 있는지 그뿐만 아니라 내가 실제로 이 일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지 이런 생각들이 일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기제인 것 같아요. 단순히 ‘돈 받으면 됐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사람 한명 한명이 그곳에서 효능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고요.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리더들의 역할인 것 같기도 해요.
소리: 효능감(?)에 대해서 복합적인 생각이 드는 게, 한번은 직장상사가 너 일하는 모습이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것도 압박이 되더라고요. 일을 재미있게 하지 않는 것이 근로자만의 탓은 아니에요. 관리자의 몫일 수도 있고 관리자도 어쩌지 못하는 부분도 있겠지만요. 즐겁게 일하는 것까지 요구한다면 노동자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요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근무시간도 지켜야 하고, 장소도 지켜야 하고, 일에서의 효능감까지 느껴야 한다면…. 사람들이 일에 대해서 그만큼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그것들도 일종의 워너비(?) 부담이 되는 듯해요.
2.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자유롭게 자신이 요즘 하는 일에 대해 말해봐요!
슬기: 저는 경영지원팀에서 보통 자산 관리, 회계, 재무, 세무 등 조직을 굴러가게 하기 위한 그런 일들을 맡아요. 매달 나가는 지출을 처리하고, 지출결의서를 대조하고 정리하고…. 조직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지만, 재미가 없어서 자존감이 떨어질 때가 있어요.
실제로 직급이 높으신 분이 제가 하는 ‘하찮은 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어요. 저를 기분 나쁘게 하려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내 일이 하찮은 일로 치부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이 조직에서 이렇게 효능감을 못 느끼는 것도 당연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리: 저는 이게 계약직의 일과도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 게 계약직이 하는 일도 회사에서는 그 일이 필요하기에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뽑아서 임금을 주는 거잖아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이고 손이 가는 일이란 걸 알고요. 어쨌든 일할 사람은 필요로 하면서 그 일을 맡는 사람과 그 일은 가볍게 보는 것 같아요.
진아: 맞아요, 그리고 직접적인 성과로 바로 보여지기 어려운 일들도 있는 것 같아요. 예를들어 네트워킹과 같은 기획이 주 업무인 경우, 특히 미담을 운영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할 때 고민이 되는 것들이 많아요. 진진 님이 예전에 미담에서 어려운 숙제 같은 게 아니라 재밌는 걸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거기에 너무 동의해요. 흔히 어려운 숙제처럼 간담회라든지 이런 차원의 행사들이 네트워킹을 잘 수행한다고 성과로 평가받는 측면이 있잖아요. 그런데 행사에 참여하다 보면 청년들이 대상화되는 때도 있어서 정말 네트워킹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고요.
소리: 저도 공감되는 측면이 있어요. 실질적으로 변화를 만드는 게 한 번의 간담회나 행사로 이루어지지 않잖아요. 계속 맨 땅에 헤딩해나가야 하니 조직에서는 좀 더 즉각적이고 바로 사진 등의 결과가 나오는 행사에 집중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00을 하고 있다’가 명확히 보이는 그 정도의 것을 요구한다는 느낌이 들고요. 진아 님의 말에 많이 공감이 가네요.
진진: 헤딩이 뜨거운 감자 같은데요(웃음). 저는 어떤 일을 하고 있냐면, 일단 소셜 벤처 창업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어요. 몬드라곤 팀 아카데미라고, 몬드라곤 협동조합에서 온 교육 방법론을 활용해서 진행되는 창업프로그램이에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개개인의 일이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악의 없이 하찮아 보일 수 있어도 개인이 맡은 일 하나하나가 중요하다고 하는 조직 구성원들의 이해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없으면 사실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거고, 구성 하나 자체가 없으면 굴러가지 않으니까요. 그 일들이 조직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추구하는 비전, 미션이 팀워크를 통해 분류되는 거죠. 코치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까 그런 문화가 확산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도 많이 하세요. 대기업에서도 이런 문화는 도입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사회적경제에서는 이런 걸 바라기가 힘든 것 같아요.
우리는 이런 문화를 확산해 나가야 한다고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단법인 설립 프로젝트 안에서 소셜 살롱을 만들어서 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 친구들을 모아서 이야기해보는 자리를 만들어보자는 논의를 해요. 미담처럼요. 좋은 마음에서 모여서 해도 되지만 지속가능성 있게 운영해보자는 마음도 있고요. 어떻게 보면 비즈니스 모델을 지적 호기심에서 찾고 있는 거죠. 이렇게 팀워크, 좋은 일 문화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이 조직 안에서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성장하고 실패하는 일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일이면서 돈 받을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 같아요. 취업 시장에서 경쟁하듯 석사나 박사 과정을 밟고 스펙을 만드는 것보다 이런 일의 경험들이 시장에서도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 사회적경제 쪽에서 이런 일을 하면 시장이 아니라 권위적으로만 다뤄져서 가치가 절하되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작년에 일을 해보고 안 하게 되더라고요.
청년이 ‘일’할 때 요구되는 것
진진: 사회적경제 쪽에서 일을 진행했을 때, 신선하고 ‘청년’스러운 걸 원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모습을 봤어요. 예컨대 저희는 사무공간이 없어서 공간 내에 취업카페가 있었는데, 그곳을 약간 편법으로(?) 사용했거든요. 1평 남짓 공간에 2명이 들어가서 일했어요. 어쨌든 그건 참고 일할 수 있는데 공간이 분리되어 있으니까 저희를 못 믿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이 잘 진행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정확한 지적이 없는 수정을 계속한다든지요. 공간적인 분리가 있으면 더 명확하게 일의 방향이 정해져야 하는데…. 현직에서는 협업 툴을 낯설어하시면서도 젊은 애니까 컴퓨터도 잘 다루고, 유튜브 편집도 하고, 인스타그램도 관리하고 등등. 젊은 감각을 갖추고 있기를 요구해요. 제 업무가 아니어도 알려드리지만 정작 제가 기존 업무를 어려워할 때는 도와주시지 않는 경험도 있고요.
소리: 요즘 청년에게 요구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진아: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신박하고 신선한 때론 패기넘치는 아이디어를 낼 거라고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기존에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낸 아이디어만 받아들여지니 어려운 것 같아요.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사실 청년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이 기성세대의 잘못이나 문제들을 짚어가는 부분도 당연히 있잖아요. 그들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조직의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할 때 그걸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계속 패기로운 아이디어를 요청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진: 동의해요. 저도 매일 매일 싸웠고요. 기존에서 벗어나고자 하면서 기존 것 안에 있고자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걸 요구받아서 실험이나 시도를 제안하면,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지 않냐는 답변으로 돌아오기도 하고요. 결과적으로는 홍보 성과를 잘 냈는데, 이렇게 함께 맞춰가면서 일하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저랑 이야기를 안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을 때도 있었고요. 오히려 멘땅에 헤딩하려고 하면서 왜 이렇게 편하게 일하려고 하지? 그런 생각들이 많이 들죠.
3. 나의 일, 만족스러운가요?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 이유가 뭘까요?
소리: 미담 1기할 때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 문제인데요. 알바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일의 경중을 따지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많이 느껴져요. 그럼 제가 알바를 뽑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했었던 게 기억이 나요(웃음).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책이 있는데 알바도 노동자라고 이야기하는 책이에요. 배달노동자 조합 운동을 하시는 분이 쓰셨더라고요. 알바도 그 사업장에서 여건이 안 되어서 정규적으로 고용을 할 순 없어도 그럼에도 그들이 필요하고, 그들이 꾸준히 일하는 상황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정규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필요할 때만 쓰고, 근무 조건이나 환경이 개선되지도 않고 노동자도 개선을 요구하지도 않는다는 말도 들었고요. 사람을 일회용품처럼 쓰는 느낌도 있어요. 저조차도 그런 인식이 쌓이는 것 같아서 무서워요. 알바도 직업이라고 여겨주고, 사회 인식이 바뀌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정식적인 ‘일’은 아니라는 듯한 대화들, 안정성을 가지는 직업을 가져야 ‘일하는 상태’라고 여기는 압박들이 아직은 많은 것 같아요. 기성세대의 그런 인식에 대해 이해는 하고 있어요. 하지만 고용 형태가 전부 정규직으로 바뀌는 게 어려울 테니 현재 상태를 생각하는 제도들이 많이 나와야 하고 그게 이상향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진아: 비슷한 고민인데요. 최근에 시대가 바뀌었다고 많이 이야기해요. 그런데 시대가 변했다고 말하기보다 잘못된 게 제대로 되고 있다는 주장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차이를 그냥 시대 차이라고만 이야기를 해버리고, 우리사회의 갈등을 다 세대갈등으로 환원해버리니까 근본적인 문제를 덮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페미니즘을 대하는 세대 간의 갈등을 보면서도 그런걸 많이 느껴요. 최근에 유기농업에 기술을 도입하는 문제에 대해 세대갈등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있어서 고민이 많아졌어요. 청년들이 농사를 짓지 않는 이유를 농사가 힘들기 때문만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기술적으로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자연스럽게 청년들이 올 거라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청년들이 농촌에 가지 않는 이유는 다양할텐데, 단순히 기술을 도입하면 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나 싶어요. 실제 요구에 기반한 논의들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기술을 도입하고자 하는 청년들과 기술을 도입하지 않고 싶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의 세대갈등으로 이야기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복잡한 기분이 들었어요. 어떤 문제를 보면서 세대 간의 갈등으로 치부하거나, 시대가 많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인식하는 틀에 머물러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슬기: 저의 경우에는 부당한 일을 당하면 도망치듯 보여도 그 조직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부모님 세대는 장기근속이 답이라고, 한 곳에 많이 머물러야 이기는 거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자주 직장을 옮기면 끈기없는 것이라고 여기시더라고요. 어딜 가나 그런 사람은 있으니까 너가 참아라, 하고 이야기하시고요. 아무리 힘들다고 말해도 이해하시지 못할 것 같아서 이야기를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 실제로 부당한 경험을 당했을 때 그걸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어릴 때부터 많이 되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노동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 사회로 내던져지다시피 하잖아요. 심지어 저는 근로계약서조차도 어떻게 보는지, 부당한 계약서를 써도 효력이 없는 것도 몰랐고 일단 계약서를 썼으니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부당한 일을 계속 당했을 때, 알아보는 것도 내가 혼자 알아봐야 하고 싸울 때도 노무사를 찾아가 비용을 내야만 겨우 싸워볼 수 있었고요. 이런 부분들을 교육받았다면 노동청에 직접 신고하는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리: 동감해요. 일이 가지는 의미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관련된 교육을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일에 대해서 청년과 청소년에게 교육하지 않는 사회가 유지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걸 몰라서 부당함을 당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요. 청년들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림: 제 알바썰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서빙이 첫 알바였는데요. 각자 홀에서 담당하는 테이블들이 있는데 저는 막내니까 제일 빡센 곳을 담당했고요! 누가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손에 익지도 않았는데 빨리하라고 하니까 사고를 자주 치게 되더라고요. 그때 매일같이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친구한테 했었어요. 두 번째는 동물병원에서 일했는데 작은 동네에 있는 동물병원이라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이 있었어요. 애초에 경력직을 뽑는 자리인데 제가 올려둔 공개 이력서를 보고 병원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여기도 인수인계라든지 알려주는 거 없이 일을 계속했는데, 그러니 제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원장님이 답답해하셨어요. 6개월쯤 되어 가는데 갑자기 원장이 불러서 불같이 화를 내더라고요. 이번 달까지만 하고 관두라고 하길래 알겠다고 하고, 그만뒀어요.
소리: 이런 일이 너무 비일비재해요. 알바에게 잘 알려주지도 않고 일 못 한다고 하거나, 사회 초년생들에게 있는 일들과도 너무 겹치는 것 같아요. 특히 업무를 여러 군데 옮기는 사람일수록 이런 일을 많이 겪는 것 같고요. 적응의 기간도 업무의 연장으로 보지 않고, 경력만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진아: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업무처리 하는 기계나 컴퓨터의 느낌으로 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컴퓨터는 말을 잘 듣겠지만, 사람은 기계적으로 하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감정과 고민을 동반하잖아요. 예를 들어 컴퓨터는 명령을 입력하면 그거대로 하지만 사람들은 거기 안에서 자기가 가지는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면서 그 일을 해내니까요. 어떻게 보면 내용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측면인데, 사람을 소모품처럼 생각하니 그런 행동들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화가 나네요.
4. 만족스러운 일을 위해 필요한 건 뭘까?
소리: 만족스러운 일을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내가 생각하기에 이건 갖춰져야 한다든지 등을 이야기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저는 일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많이 이야기할수록 좋은 사회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것이 있다면 나를 계속 일하게 하는 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진아: 예림님은 앞서 말한 일의 경험을 통해 이런 일들을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예림: 특히 알바의 경우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이것도 못해?’라는 태도가 많은 것 같아요. 알바도 이력서를 보고 뽑고 다른 알바를 한 적 있는 사람, 경력직 신입을 요구하고요. 저는 일단 신입을 위한 체계가 너무 너무 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좀 더 계약서 쓰는 것도 당연해지고 처음 배우는 기간에 수습급여를 주는 등 그런 인식들이 생겼지만, 여전히 일을 빨리 못 배우면 관용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면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악순환의 구도를 만드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또 나가고, 또 더 빨리 배울 사람을 찾고요.
5. 당신에게 일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소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일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맨날 하는 가사노동이라든지 임금노동, 짜투리 일, 사회활동에 이르기까지 ‘일의 경험’이 사람을 많이 바꾸잖아요. 사람의 성격부터 앞으로 어떤 삶을 선택할까도 영향을 주는데 우리가 어떻게 일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함께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소리: 저는 만족스러운 일이라고 한다면 그 일에 대한 대가가 있어야 하고 그래서 임금노동뿐만 아니라 돌봄 노동도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요. 만약에 임금노동을 취급해주지 않을 거라면 그 대가를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정말로 다 깔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을 중시하는 우리나라가 돌봄 노동을 평가절하하지 않게 된다면 좋겠어요. “아 왜 정 없이 그래. 당연히 도와줘야지.”라고 하는 식의 말이 많이 나오니까 그런 것들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 일로써 자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한데요. 일로써 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생각하게 되는데, 정당한 대가가 있으면 더 많은 사람이 활동에 참여할 것 같아요. 만족스러운 노동을 위해서는 정당한 대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아: 지금 사회에서 말하는 대가라는 게 화폐, 돈으로 귀결되는 건 너무 당연한 것 같아요. 어쨌든 노동자가 대가를 이야기할 때는 돈을 이야기하는 거고. 아까 말씀드렸지만, 리더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돈에 플러스알파가 되는 뭔가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꼭 팀장뿐만 아니라 조직의 전체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노동자들의 고민이나 상황을 반영하는 결정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가치 지향적 조직에서는 돈 받으려고 일을 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그런데 저는 일의 대가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노동의 속성상 사람은 노동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요. 지금 우리 사회에는 내가 실제 삶을 살아갈 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거는 화폐밖에 없고 그렇게 만들어져 있잖아요. 그거를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임금을 결정하는 구조처럼 숫자만 두고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사람이 살기위해 필요한 금액, (기본소득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하는데) 그런 거를 포함해서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슬기: 공감하는 게 제가 2019년에 입사할 때 계약서 쓸 때 130만 원이었어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12시간 동안 일하는, 말이 안 되는 계약이었는데, 그때 당시 저는 ‘돈은 조금 덜 받아도 내가 활동을 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게 한 달 두 달 계속되다 보니까 내 삶이 진짜 망가지고 실제로 내가 살아가면서 드는 돈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완전히 무너지는 경험을 했어요. 사실 활동 판에서 되게 많은 사람이 돈 받으려고 일하는 거 아니라고, 활동 중심적으로 이야기를 하잖아요. 진짜 박봉이거나 아예 임금이 없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게 너무 잘못된 문화라고 생각해요. 돈줄 여유가 없으면, 이렇게 말하면 안타깝지만요, 그럼 그렇게 사람을 부리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해요.
진진: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을 빼고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어요. 활동할 때 돈 받으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 라고 이야기를 하려면 나에게 집이 있고 차가 있고 내가 용돈만 받아서 생활할 수 있는 정도가 전제되어야 내가 130만 원 한 달에 받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납득이 되죠. 저도 사실 지금 아빠 집에서 살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 주거가 안정되는 상황이다 보니까 소득에 대한 걱정 없이 내가 낼 거 다 내면서 살 수 있는 거고요. 그런 전제들이 없이 ‘그 활동 돈 보고 하는 거 아니잖아’ 하는 말은 성립할 수 없죠. 전제가 있다면 몰라도 없으니까 전혀 성립될 수 없죠. 그 사람들이 잘못된 거예요.
나에게 일이란?
소리: 우리가 오늘 일을 이야기해 봤는데, 그래서 나에게 일은 무엇인지 말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나에게 일은? 헤딩? 대가? (웃음)
진아: 저에게 일이란 삶의 반인 것 같아요. 일하는데 시간을 많이 쓰고 있기도 하고요. 정말 내 삶을 구성하는 거의 반 이상을 구성하는 게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왜 힘들고 그게 왜 문제인지 계속 이야기해온 것 같아요(웃음).
진진: 저에게 일이란 제 삶인 것 같아요. 일이 없이 제 삶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요. 자기실현을 어떤 수단으로 할 수 있을까 물었을 때 저에게는 일 외에 그렇게 뭐가 막 존재하는 것 같진 않아요. 사실 일이라는 정의를 넓게 쓰기도 하고요.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잘 지켜져야 하고, 타협을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 일이란 삶이다?
예림: 저에게 일은 동력인 것 같아요! 저는 계속해서 이것저것 일들을 벌여놓고 있는 상황인데 (웃음) 이게 없으면 오히려 저는 더 무기력해지고 우울한 악순환의 고리에 갇히게 되더라고요. 일 하나를 시작하면 또 다른 일들도 도전해 보고 싶어지고요. 그래서 돈을 받고 싶어요.
소리: 저에게 일이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고 그래서 ‘시킬 거라면 제대로 주고 시켜라’인 것 같아요. 인정을 해주던, 대가를 주던지요. 일이 돈으로써만 기능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돈으로만 평가된다면 찝찝한 기분이 들지만! 기본이라고 생각되는 돈도 제대로 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슬기: 나에게 일이란, 하고 싶은 걸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앞서 말한 필요충분조건이 전제된 상황에서 이직을 여러 번 하면서 느낀 건,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할 때 만족감을 느끼는지에 대해서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번에 계약이 끝나면 이직을 하겠지만 굉장히 많이 고민하겠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하고 싶은지 그런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7.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진아: 미담 이야기는 늘 가볍게 시작해도 화나는 포인트들이 너무 많아서 좋습니다.
진진: 올 때마다 분노 버튼을 꾹 누르고 있는 느낌이에요.
소리: 담소 모임을 하고 나면 해볼 수 있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부 다 해결할 수는 없어도. 친구가 카페에서 일하다가 임금체불을 당해서 노무사를 만나서 신고하는데, 생각보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해서 놀라고 있습니다.
진진: 대부분 우리가 겪는 일상적 부당함들조차도 왜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서비스 취급을 받아야 할까요? 혼자 해결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돈을 지불해야 하고. 부당함이 너무 많은데 혼자 해결해야 하는 느낌이 들어요. 법조문 찾아보고 어디 가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많이 없네요.
진아: 인간답게 살려면 자본주의 사회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묘연하고, 부모 잘 만나야 하고. 그게 너무 화가 나요. 최근에 공정 관련해서 원래 두 분(슬기 님, 진진 님) 오시기 전에 이야기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계속 생각하게 되어요. 정말 많은 것이랑 연결되는 것 같아요. 공정한 과정이라는 걸 강조하는 것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 같아요. 그 과정이라고 하는 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불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 능력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는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게 답답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소리: 돈으로 지불되지 않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돈으로써 인정을 받지 않아도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있는 공동체를 우리가 구성할 수 있다면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거를 어떻게 만들어가지, 하는 생각은 계속 고민되겠지만요.
진아: 우리가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데 기존에 있는 공동체를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현재 사회의 대안 공동체들이 있지만 지금 전혀 청년들에게는 대안이 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청년들의 어떤 파이를 계속 키우고 이거를 우리 생활에 필요한 공동체로 만들어내는 일들도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에요. 실제로 한살림이라는 공동체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필요에 맞는 주장도 해보고, 필요한 것들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소리: 오늘 즐거웠고 시간이 정말 빨리 갔네요. 일이라는 게 우리가 항상 하는 것이니까 지금 자본주의가 말하는 ‘일’ 말고도 다른 ‘일’들을 떠올릴 수 있는 공동체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