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심과살림연구소 미담 워크숍 소개④]
우리에게 노동이란?
작성: 유리
지난 9월 미담의 워크숍 노동팀의 첫 번째 주제, <노동의 의미>을 소개합니다.
노동팀의 첫 발제 <노동의 의미>를 시작하기에 앞서, 참여자 모두가 감정 카드를 이용해 현재와 미래의 노동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의 노동과 앞으로의 노동을 떠올렸을 때 모두 불안하거나 막막하다는 참여자도 있었던 반면, 지금은 두렵지만 미래는 기대된다는 참여자도 있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잠시 가진 후 노동의 의미에 대한 발제를 시작했습니다.
<노동의 의미>를 통해 노동에 대한 고민과 상상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했습니다. 삶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노동”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우리가 충분히 생각을 해보았을까요? 노동의 의미에 대해 사유하기 위해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으로 발제를 진행했습니다.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해봤을 질문들이지만 타인과는 쉽사리 공유하지 않았던 답변들을 들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노동에 대해 당연하게 혹은 익숙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생각의 경계선에서 나아가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세 개의 주요 주제인 나에게 있어서 “일을 한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현재 노동 사회의 문제점과 나의 노동이 고통스럽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어떤 노동을 꿈꾸는지에 대해 워크시트에 적힌 상세 질문들을 통해 위 내용을 알아보았습니다.
일을 한다?
여러분에게 “일은 한다”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친구에게서 일을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일”을 무엇으로 받아들이고 있나요? 각자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 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일이란 가치를 만드는 행위, 스스로 꼭 해야만 한다고 여기는 일, 먹고 살기 위한 행위, 임금을 받지 않더라도 의미를 담고 있는 행위, 돈을 받는 대가로 하는 행위라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생존과 자기 실현을 위한 가치가 노동의 중심 키워드로 나타났습니다.
일하는지 안 하는지에 대해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 기준으로는 임금의 유무, 깨어져서는 안 되는 주기적인 약속인지,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인지, 타인의 인정이 있는 나의 역할 혹은 자리가 있는 상태에서 돈을 벌고 있는지 등이 있었습니다. 일을 한다는 기준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 것 또한 임금과 가치 유무가 적용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저 또한 미담을 통해서 관심 있는 가치에 대해 탐구하는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일이라고 부를 수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지금의 사회에서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돈을 벌고 있을 때만이 타인에게 “나 일하기 시작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동시에 듣는 사람도 ‘일을 하는구나’라고 납득하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위의 두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어본 후, 일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견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참여자들의 이야기 속에는 위의 답변들과 비슷한 키워드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우리는 일하지 않는 것이 어색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데 이는 현재로서는 삶을 꾸려나갈 방법이 임금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해야 먹고 살 수 있고 그것은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 예를 들면 속하고 싶은 공동체가 있다든지, 실현하고 싶은 가치가 있든지, 이를 이루는 방법은 노동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고령화가 진행되는 세계에서는 노동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일/노동이 고통스러울까요?
이어서 노동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서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생활과 생존에 있어서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기 위해 등 결국은 자신을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서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은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참여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현재의 노동 사회에 대한 비판점을 공유했습니다.
우선, 개인의 시간과 노력을 필요 이상으로 투자해야 지속이 가능한 노동 환경, 착취로 느껴질 만큼의 적은 임금, 안전하지 않은 노동 현장, 비정규직, 여성의 경력단절, 한정된 안정적인 일자리 등을 그 요인으로 뽑았습니다. 능력 중심 사회가 문제임을 짚어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돈이 들어간 만큼 자식이 그에 따른 능력치를 키우기를 기대하지만, 부모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순간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 또한 한 사람을 능력에 따라 평가를 하니 경쟁이 불가피해지고,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은 수직적인 구조에서 우위를 차지합니다. 무엇보다 우위를 차지하지 않는 그 외의 사람들은 자신의 임금과 처우가 갑의 결정에 의해 쉽게 좌우되는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지적해주었습니다. 스스로가 일을 선택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고통의 시작된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노동이 그 가치를 온전하고 정당하게 인정받고 있지 못하며, 합당한 사회적 인식을 받지 않는 현실을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 자체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노동자 개인에 대한 존중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나의 노동을 상상하기
세 번째 주제인 노동을 상상해보는 시간에서는 현재 노동시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이런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 긍정적인 면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노동은 어떤 노동인지 상상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노동시장의 변화로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 등장, 플랫폼 노동의 증가, 변화된 채용방식, 일과 놀이 사이 경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노동 자체보다는 채용방식이 바뀌고 있는데 공무원을 제외하고 공채채용이 사라지면서 수시채용이 생기고 있어 경력이 없는 사회 초년생의 진입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긍정적인 변화로는 취미나 놀이로 여겼던 것들이 일로 인식이 되면서 일과 놀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거나 노동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예로 자신의 일상을 영상으로 편집한 브이로그나 실시간 먹방(먹는 방송)을 통해 수입을 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유튜브에는 눈에 띄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각종 영상을 올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19년도 기준으로 초등학생 희망직종 3위가 유튜버 크리에이터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¹ 그러나 긍정적인 변화보다는 문제점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특수고용자들이 많아지고 있으나 산재를 책임지는 주체가 없는 경우가 여전히 많아 안전한 노동 환경과 체계적인 사회보험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또한, 돌봄 노동과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세 번째 주제를 마무리하며 각자의 노동을 상상해보고 돌아가며 공유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의 노동은 어떤 모습일지, 노동의 환경은 어떤지, 원하는 노동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공동체 구성원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른 만큼 아래와 같은 다양한 답변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출퇴근이 확실하고, 주말과 휴식이 보장된 노동 환경, 구성원과의 에너지가 중요하다. 노동 환경을 이루는 규칙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이길 바란다.”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기. 재택근무가 획일화된 노동 구조를 원하지만 외롭지 않은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노동자로서 상품화되는 것이 사라진 미래를 원한다. 시험, 자격증 등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 상품화되는 과정을 멈추고 싶다.”
“6시간만 일하고 싶다. 일터 근처에 산책할 수 있는 뒷산이 있었으면 좋겠고 구성원들과 산책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한다.”
농가에서 정해진 시간만큼의 일을 하고 숙식을 제공 받는 우프(wwoof)라는 활동을 경험한 분은 계절을 잘 느낄 수 있는 노동을 하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드는, 어떻게 보면 매일이 단순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그런 시간이 쌓여갔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벅차고 경이롭다는 참여자의 말에 노동이 삶을 이루는 중요한 하나의 부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콘텐츠 메이커 씨리얼에서 제작한 <백수들은 정말 돈도 안 벌고 집에만 은둔하는 사람들일까?>을 함께 시청하며 발제를 마무리했습니다.² <노동의 의미>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통해 여러 시선에서 노동을 바라보았습니다. 같은 시대를 함께 사는 구성원들로서 공감되는 순간들이 많았고 서로의 이야기에 힘입어 경험담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이전과 같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근본적인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상기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워크숍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서로 다른 경험의 공유 덕분에 “노동”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다양한 윤곽을 갖고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사회에 나가면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에서 형태가 조금 바뀐,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자리였습니다. 앞으로도 노동에 관한 혼자만의 고민이 아닌 모두의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길 기대해봅니다.
1) 남윤서(2019), "초등생 장래희망 유튜버가 3위, 의사 제쳤다", 중앙일보, 2019.12.11, https://mnews.joins.com/article/23653857 (2020.11.14 방문)
2) 씨리얼. (2020, 09 15). 백수들은 정말 돈도 안 벌고 집에만 은둔하는 사람들일까? [비디오 파일]. 검색경로 https://www.youtube.com/watch?v=Khq0gnpc6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