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공유 운동

시장(market)은 오랜 옛날부터 인류와 함께 존속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시장, 즉 자본주의 시장은 과거의 시장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의 시장들은 대개 인간이 노동을 통해 생산한 생산물들을 사고팔거나 교환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시장은 유사 이래 최초로 인간이 노동으로 생산하지 못하는 ‘인간의 노동력’, ‘토지’, ‘신용이라는 인간관계’를 상품화시킵니다. 이 세 가지는 인간의 노동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산업문명이 가져온 인류의 위기에서도 다루었지만, 노동력의 상품화는 인간 존엄성의 위기, 인간 소외 등을 초래하고, 토지의 상품화는 환경·생태 위기로, 또한 신용의 상품화는 공동체의 해체로 나타납니다. 

 

노동력과 신용의 상품화는 자본주의의 근간, 더 나아가서는 현재 인류 문명의 뿌리이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제기를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토지의 상품화는 민주주의 원칙의 하나인 기회 균등을 심대하게 저해하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물론이고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도 강한 문제제기를 받고 있습니다.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건국 초기에 경자유전(耕者有田)의 토지개혁을 단행한 것도, 민주화 과정에서 ‘토지공개념’이 계속 거론되고 입법화 시도가 끊이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불로소득에 의한 사회적 불평등은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헨리 조지 같은 학자는 지대(地貸)를 모든 불평등의 뿌리로 보면서 지대 폐지를 주장합니다. 토지공개념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대개 이 헨리 조지의 말을 따릅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뿌리인 사유 재산을 부정하며 토지를 국유화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로 인해 생기는 불로소득을 세금으로 거둬들이자는 것이 토지공개념의 핵심 주장입니다. 토지의 소유는 인정하되, 토지로 인한 불로소득을 없애고 필요한 사람이 별다른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도 문민정부에서 토지공개념을 받아들여 토지초과이득세, 개발부담금, 택지소유상한제 등을 채택했으나 IMF 위기로 인해 이 제도들이 폐지되거나 유야무야되어 버렸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토목·건축 등 대규모 개발을 토대로 산업화, 근대화를 이루어왔고, 또한 그것을 발전의 근간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모든 토지를 개발 예정지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태적 가치가 큰 지역이나 문화유산이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까지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개발하려고 합니다. 고속전철 공사를 강행한 경주나 도롱뇽의 천성산, 북한산 관통도로, 새만금 갯벌 매립 등이 이런 문제를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인류의 역사적 문화유산이나 빼어난 자연경관, 생태적 가치가 큰 지역을 신탁해서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을 추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홍수조절, 지하수량 유지, 토양유실 방지, 대기 정화 등 생태적이며 또한 여러 가지 문화적, 교육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농지는 무차별한 개발로부터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민간운동으로 내셔널트러스트와 유사한 농지 신탁 운동을 하는 곳도 있습니다. 농지를 내셔널트러스트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토지를 공공의 소유로 만들어 보호하자는 것이지요. 

 

토지 문제의 중요성은 우리나라 농산물 가격 중에 지대가 반 정도를 차지한다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지대가 없어지고 다른 요인들이 조금만 보완된다면 우리 농산물도 외국 농산물에 가격경쟁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토지 문제의 해결 노력은 앞으로 대안운동, 생명운동의 핵심 사안이 될 것입니다. 

 

– 이정우 외, <헨리 조지, 100년만에 다시 보다>, 경북대출판부, 2002 

– 천규석, <땅 사랑 당신 사랑>, 명경, 1996 

– 요코가와 세쯔코, <토토로의 숲을 찾다>, 이후, 2000 

– 안상준, <국가에서 공동체로>, 환경운동연합출판부,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