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이 꿈꾸는 ‘지역살림’, 그 의미와 가능성

한살림이 꿈꾸는 '지역살림', 그 의미와 가능성

 

정규호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실장)

 

 

 

인구 1천만의 거대도시 서울에서 요즘 들어 ‘마을’, ‘동네’, ‘공동체’, ‘협동’이라는 말들이 자주 오가고 시의 주요 정책으로도 자리잡아가고 있다. 도시 생활의 삭막함을 거두고 이웃 간에 정을 나눌 수 있는 살 맛 나는 삶의 터전을 만들려는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서울의 이런 움직임들은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놀라운 변화인데, 사실 한살림으로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희망해 왔던 바이기도 하다.

 

한살림은 생명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촌 생산자와 이들의 수고와 가치를 이해하고 책임 소비에 힘쓰는 도시 소비자들이 협동의 원리로 ‘한집 살림’ 하듯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자 시작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한살림은 생산과 소비, 농촌과 도시 사이를 ‘서로 살림’의 관계로 다시 잇고, 공동구입 조합원을 중심으로 한 생활공동체 복원 노력에서부터 마을모임, 소모임을 통한 조합원 기초조직과 다양한 지부 활동 등을 통해 조합원과 이웃이 함께 하는 생활실천 활동들을 열심히 해 왔다. 이 과정에서 매장 또한 단순히 물품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한살림이 지역사회와 보다 폭넓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살림 터’로서 역할을 새롭게 더해가고 있다.

 

하지만 한살림의 이런 노력과는 다르게 우리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환경과 삶의 조건들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 ‘경쟁을 통한 홀로 살아남기’가 아니라 ‘협력을 통해 함께 살아가기’가 삶의 지혜로 더욱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살림은 지역에 밀착해서 생산과 소비, 생활 영역을 조직해 온 경험들을 바탕으로 하여 ‘지역살림’을 새로운 운동의 비전이자 실천 과제로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지역살림 운동은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삶의 장소이자 생활공간인 지역사회를 보다 안전하고 쾌적하고 활력이 넘치는 살 맛 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말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한 한살림 활동의 축적된 경험과 역량들을 가지고 조합원의 관심과 참여를 바탕으로 해서 이웃과 폭넓게 관계를 맺어 나가면서 지역사회 전체를 살림의 그물망으로 촘촘하게 짜나가는 데 있다 할 것이다.

 

한살림이 이처럼 지역살림을 주요 실천 과제로 제안하게 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선 웰빙 바람과 각종 식품오염 사고로 친환경농산물 시장과 생협의 사업규모가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유기농, 직거래, 생협운동의 길을 앞장서 열어 온 한살림이 운동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을 더욱 분명히 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 되었다. 여기에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삶의 위기 문제들을 협동의 힘으로 극복해 내는데 있어 한살림의 책임 있는 역할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요구도 커졌고, 먹을거리라는 생활의 기본 필요를 책임 있게 해결해 온 한살림에 대한 조합원들의 기대 또한 더욱 다양해졌다. 뿐만 아니라 지난 27년의 역사를 통해 폭넓은 대중조직과 자립 기반을 갖춘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협동운동 단체로서 한살림의 조직적 역량이 그만큼 커진 점도 큰 이유가 된다.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는 마을공동체와 협동경제 사업들에 있어 한살림이 축적해 온 경험들이 중요하게 요청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지역살림’은 ‘밥상살림’, ‘농업살림’, ‘생명살림’의 가치와 함께 ‘조합원과 더불어, 사회와 함께 하는 한살림’의 주요 가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한살림서울에서도 지역살림과 관련한 조합원 의식조사와 모범사례 발굴, 시범사업 실시 등을 통해 지역살림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들을 준비를 해오고 있다.

 

지역살림은 생명의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나누는 활동을 통해 축적된 한살림의 경험과 역량을 조합원의 삶의 터전인 지역에서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한살림운동의 새로운 확장이다. 이것은 한살림서울 조합원에 대한 2009년 의식조사에서도 확인되는데, 당시 조사에서 79.8%의 조합원들이 ‘안전한 먹을거리 나눔’을 중심으로 해 온 한살림의 활동 영역을 복지, 환경, 문화, 교육 등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가장 큰 이유로 이것이 ‘한살림이 추구하는 본래 정신과 잘 맞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이제 조합원과 지역사회가 당면한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을 가지고 지역살림의 구체적인 실천 영역들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 관련해서 양극화 시대를 반영하듯 ‘돌봄’이 지역살림의 주요 과제로 확인되고 있는데, 한살림서울 조합원의 2012년 의식조사를 보면, ‘한살림이 돌봄과 관련한 사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한 조합원이 86%로 매우 높게 나타났고, ‘한살림이 하는 돌봄사업 서비스와 상품을 이용 하겠다’고 밝힌 조합원도 80%에 달했다. 중요한 점은 이런 높은 응답률의 가장 큰 이유로 조합원들이 ‘한살림이 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고 밝힌 점이다. 이것은 밥상과 농업, 생명살림을 위해 노력해 온 한살림에 대한 조합원의 신뢰가 지역살림을 위한 돌봄 영역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희망적인 점은, 지역살림을 실천하는 힘이 결국 조합원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많은 조합원들이 한살림이 펼치는 지역살림 운동에 자원봉사나 활동가로 참여하거나 물품이나 기부금으로 후원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할 뜻이 있음을 의식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적극 참여’ 의사를 밝힌 조합원도 5%가 넘는데, 한살림서울 조합원의 전체 규모를 고려하면 수 천 명의 조합원들이 지역살림 운동의 든든한 일꾼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이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말이 있듯이, 협동의 원리와 공동체 정신으로 서울을 살 맛 나는 삶의 터전으로 탈바꿈시켜 내는 데 한살림의 멋진 역할을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한살림서울 소식지 2013년 10월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