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살림이야기> 2014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4.16의 물음표
주요섭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
4.16 이전과 4.16 이후, 우리의 마음과 삶이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것 같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마음이9.11 테러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지고, 일본 사람들의 삶이 3.11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지듯이 말입니다.
아이들이 사라졌습니다. 희망과 미래를 앗아가 버렸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바다가 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하릴없이 눈물이 맺히고 또 흐릅니다.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엄마 사랑해” 딸이 보낸 마지막 문자가 아프고, 구명조끼를 입고 나란히 서있는 아이들 사진이 아프고, 질식과 밀폐의 공포에 떨고 있을 목숨들이 아프고, 아내를 두고 혼자만 살아남은 남편이 아픕니다. 사선에 선 아이들이 보낸 생명신호에 응답하지 못해 너무 아픕니다. 아들딸의 침몰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이 너무 아픕니다.
이런저런 소란 속에서도 순항하는 듯했던 한국사회가 침몰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나라의 맨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500여 명의 목숨을 버려두고 홀로 배를 빠져나온 선장, 300여 생명의 수몰을 무책임하게 관망하는 당국자, 그리고 단죄와 남 탓으로 책임을 면하려는 행정과 정치의 최고지도자까지 분칠로 겨우 숨겨온 거짓세상이 백일하에 드러나 버렸습니다. 세월호도 대한민국도 이미 공동운명체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세상은 4.16 이후와 이전으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희생자 가족들뿐만이 아닙니다. 단죄당할 사람들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짜 바뀐 것은 이것입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네가 살아 있어서 너무 고마워.”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대학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픈 곳이 중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의 어느 한 곳이 아프면 자연스럽게 온 신경이 그곳에 집중됩니다. 통증을 느끼는 곳에서부터 새로운 자각과 성찰이 일어납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질서는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생겨난다.” ‘전일성과학’의 오랜 경구가 떠오릅니다.
어쩌면 ‘세월호 세대’가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2014년 4월 한국사회 모든 청소년들이 집단적, 세대적 트라우마에 빠져 있습니다. 거짓세상에 살고 있는 어른들의 세계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1997년 IMF 전후에 태어난 사회경제적 불안세대들이 4.16을 겪고 생명의 위기, 존재의 위기를 체감하면서 전혀 새로운 세대로 다시 태어날지도 모릅니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마저 사라져가고 있는 지금, 물음표가 필요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문제를 나열하기만 할 때가 아니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때입니다. 3.11 후쿠시마가 자본주의 산업문명에 물었듯이, 4.16 세월호가 한국사회에 묻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응답을 기다려야 할 때입니다.
생명가치인가 경제가치인가? ‘돈의 길’인가 ‘삶의 길’인가? 거짓세상인가 참세상인가? ‘전복’당할 것인가 ‘전환’할 것인가?